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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무료
무릎이 까져서 약국에 간다. 약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대일밴드 하나 주세요. 약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선반에서 상자를 하나 꺼낸다. 그런데 그 상자에 대일이라는 글자가 없어도 아무도 따지지 않는다. 다른 회사 제품을 받아 들고도 우리는 대일밴드를 샀다고 생각한다. 약사도 마찬가지다. 종이를 붙일 때는 딱풀을 찾는다. 상자를 묶을 때는 스카치테이프를 찾는다
발 없는 평판이 천리 간다
연재중
한창 이력서를 넣느라 바빴던 어느 날. 언젠가 함께 일했던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요즘에 이력서 돌려?” 혹시 내 연차를 구하면 알려주십사 주위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구직 활동을 하던 터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이 바닥이 좁아도 정말 좁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아서다. 최근 일부 외국계 기업에서 활용하던 레퍼런스
잉크가 마르기 전에 한 잔 더!
연재중
돈을 많이 쓰지 않고도 제법 괜찮은 와인을 고르고 싶다면 호주를 기억해 두시라. 특히 묵직한 레드 와인을 좋아한다면 더 그렇다. 프랑스가 포도밭의 역사와 가문의 전통을 설명하는 동안 호주는 조금 다른 문제에 몰두했다. 좋은 와인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더 안정적으로, 더 싸게 만들 수 있을까. 물론 호주 와인도 역사가 깊다. 19세기부터 포도를 재배했으
할머니 뿔났다!
연재중
“자기야, 오늘은 자기가 강아지 산바카라시켜 주면 안 될까?" 어릴 때부터 걷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던 나는 지금도 산바카라을 즐기지 않는데 아시는 분 강아지를 맡아 주는 바람에 요즘 아침마다 강아지와 산바카라을 한다. 나도 강아지를 좋아해 어릴 때도 키워 봤지만 사실 귀여워하기만 했지 실질적으로 귀찮은 일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꼭 실외 배변을 하는 강아지라 꼭
행복을 배우는 학교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아간다면 그날이 오늘일 순 없는 걸까. 오늘은 수많은 내일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 도착한 시간인데 말이다. 오늘 누려야 할 행복마저 내일로 미룬 채 오늘을 희생양 삼지는 않았던가. 거창한 행복을 계획하고 있다면 그 행복은 영영 오지 않을 내일이 될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행복의 정의와 기준은 다 다르다. 마음 그릇의 모양과
휴대폰 배터리는 억울하다
연재중
나는 휴대폰 배터리다. 인간들은 나를 소모품이라고 부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소모되는 건 나니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나보다 더 빨리 닳는 것들이 있다. 인간들의 기억력과 인내심이다. 전화번호는 나에게 맡겼고, 길 찾기는 내비게이션에 맡겼고, 생각은 AI에게 맡겼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른다. 참으로 자신감 하나는 충전이 필요 없다.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가을은 충분했다
10월 11일 북한산 백운대 방향으로 가을 산행을 했다. 붉게 물든 단풍 사이로 펼쳐진 파란 하늘은 눈이 시릴 만큼 맑았고, 햇살을 머금은 잎들은 저마다 다른 빛깔로 빛났다. 그 풍경을 바라보다 알베르 카뮈의 희곡 <오해>에 나오는 가을에 관한 문장이 떠올랐다. 가을을 두 번째 봄에 비유하며 모든 잎이 꽃과 같다고 말하는 대사다. 봄에는 피어나는 꽃이 아름
토란을 캐는 법도 모르면서
연재중
토란을 캤다. 그동안 텃밭에서 여러 가지 채소를 길러 보았지만 토란은 처음이었다. 사실 토란이 땅속에서 어떻게 자라는지도 몰랐다. 누군가 토란 캐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토란 농사를 배워 본 적도 없다. 그저 내가 토란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심었다. 봄에 심어 놓은 토란은 여름 내내 커다란 잎을 펼치며 자랐다. 빗방울이 떨어지면 잎 위에서 또르르 굴러
미술관 한가운데 런웨이가 놓였을 때
연재중
관객보다 먼저 도착한 런웨이 2026년 5월 27일, 아직 일반에 문을 열지 않은 서울의 한 미술관에 첫 관객들이 들어섰다. 그들은 작품을 보러 온 관람객이 아니라 샤넬 공방 컬렉션 쇼에 초대받은 손님들이었다. 이 미술관은 퐁피두센터가 서울에 처음 여는 분관, 퐁피두센터 한화. 미술관은 시민보다 런웨이에 먼저 문을 열어 준 셈이다. 쇼가 끝난 다음 날, S
그곳에선 이상하게 집중이 잘되는 이유가 있었다
어릴 적 성당에 가면 느껴지는 고요함이 좋았다. 미사에 참여하는 건 귀찮은 일이었지만, 그래서인지 여행지에 가면 성당에 들어가 보곤 했다. 어떤 곳에 가면 유독 마음이 편해진다던가, 어떤 장소에 가면 갑자기 글이 잘 써지는 경우가 있다. 장소가 주는 힘이 있는 걸까? 그런 분위기는 것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조도의 차이, 들려오는 소리의 차이, 향기의 차이
풍경은 절경, 내 몸은 비상
연재중
밤새 따뜻한 물주머니를 품에 안고 잤다. 하지만 밤이 지나고 눈을 뜨자마자 밀려온 것은 지독한 추위였다. 나는 두꺼운 이불 몇 겹을 애벌레처럼 둘둘 감은 채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될 참이었다. 오늘은 새로운 팀원들과 함께 투어를 떠나는 날이기도 했다. 긴장 반, 추위 반.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지친 몸을 이끌고 식당으로 향했다. 역
X세대의 갱년기 사용설명서
세상에나, 내가 벌써 갱년기라니. 엄마는 네 나이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X세대였다. 자본주의의 세례를 가장 오롯이 받고 소비의 맛에 일찍이 눈을 뜬 첫 세대였지. 체제에 반항하던 80년대 학생운동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개인의 욕망에 비로소 눈뜨기 시작했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한 손에 들고, 카페에 앉아 ‘
엄마가 된 친구들
친구는 처음 친구가 되기로 했던 그 나이로 나를 데려간다. 우리가 모여 있으면 도대체 우리는 몇 살 쯤인지 모르겠다. 우리만의 강력한 관성이 그때로 자꾸만 끌어당기는 것 같다. 돌아오라고, 너희가 가장 맑았던 때로. 그때의 우리들은 서로의 가장 진솔했던 것을 주고받았다. 우리가 자꾸 그때에 머무를 수 있는 이유도 서로에게 넘겨준 진심들 때문인 것 같다.
좋은 엄마, 나쁜 엄마, 이상한 엄마
연재중
20대 후반에 자주 만났던 친구는 형제가 다섯인 대가족이었다. 대화를 나누던 중에,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애의 엄마는 가족들의 밥상을 차릴 때 사람 수에 맞게 밥을 새로 짓는다고 했다. 가족 중 누군가 아무리 늦게 들어오더라도 밥 한 그릇 분량의 밥을 해서 상을 차린다고 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해서 전기밥솥에 항상 밥이 있는, 우리 집과는
귀마개는 왜 주머니에 있을까
현장을 한 바퀴 돌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다. 귀마개 줄이 작업복 가슴 주머니 밖으로 삐죽 나와 있는 모습이다. 귀에는 없고 주머니에 있다. 설비는 한창 돌아가는 중인데. 장갑도 비슷하다. 한 짝은 손에 끼고 한 짝은 허리춤에 꽂아 둔 채 일한다. 안전화는 뒤꿈치를 구겨 신어 슬리퍼처럼 끌고 다닌다. 보안경은 이마 위에 얹혀 있다. 이마를 지켜
우리 회사는 각티슈로 계급을 나눕니다
4부. 근데 거길 왜 나왔어? "제가 전형적인 한국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어서요. 정말 몰라서 실수할 수 있으니, 그때마다 바로 말씀해 주세요.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두 달의 휴식 끝에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첫날부터 내가 한 말이었다. 그날 내 자리에는 전화기가 없었다. 옆자리 동료가 요청하는 법을 알려줬는데, 제목은 이렇게 쓰면 된다고 했다. '전
스승은 꼭 훌륭해야 할까
연재중
스승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는가.인품이 훌륭하고 실력이 뛰어나며 삶 자체가 본보기가 되는 사람.나 역시 그런 사람이 좋은 스승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참여한 요가 수업에서 그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원장님은 연세가 제법 있으셨다. 직접 동작을 보여주시기보다는 말로 설명하고 수련생들의 자세를 교정해 주셨다.그런데 맨 앞에서
부정적인 감정은 하나도 없는 게 정말 좋을까요?
연재중
부정적인 감정은 하나도 없는 게 정말 좋을까요? “좋은 생각만 하세요.” “나는 왜 또 이렇게 부정적일까?” “마음 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나?” “행복한 사람은 이런 기분을 잘 느끼지 않을 텐데.” 행복한 삶이라면 기쁨과 즐거움은 최대한 많고, 슬픔, 불안, 분노는 적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삶이 우리가 원하는 가
가을이 머무는 증평
충청북도 증평군은 이러한 가을의 풍경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도시다. 다른 지역에 비해 면적이 크지 않지만 자연과 도시의 생활공간이 가까이 연결되어 있으며 주민들이 일상에서 문화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설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그 중심에는 증평읍을 가로지르는 보강천과 오랫동안 지역의 쉼터로 사랑받아 온 보강천 미루나무숲이 있다. 10월 중순에
새우는 100유로였고, 피자는 2유로였다
연재중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랴 전에 기술한 바와 같이 나는 해외여행을 가면 마트에 들르는 걸 좋아한다. 유명 관광지도 좋고, 현지 맛집도 좋다. 하지만 그 나라 사람들이 평소에 뭘 먹고 사는지 궁금할 때는 마트만 한 곳이 없다. 물론 오전에 산타 카타리나 시장에 들러 여러 가지를 봤지만 그러면 어때... 또 보면 좋은 거지... 처음 보는 식재료도 볼 수
나도 하고 싶은 말 잘하고 싶어
연재중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것도 어렵지만, 나에겐 하고 싶은 말 하면서 사는 것도 어려웠다. 나는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감정을 많이 살피기 때문이다. 일부러 그러려고 그러는 게 아니고 그냥 내 성향이 그렇다. 그래서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상대가 기분 나쁠 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 그 말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성향이 과할 때는 나에게 부당한 일
빠르기
연재중
피아노 두드리기. 내 시간 한편에 당당히 자리한다. 특별하되 평범한 시간. 그날은 신기하다. 특별함이 조금 더 우위를 점했으니. 거북이처럼, 자그마한 숫자를 쳐다본다. 평범하다. 그 모가지를 붙든 채, 오른손 각 부위를 하나씩 더듬는다. 평범하다. 왼손도 합세시킨 다음, 하나하나 박자를 맞춰본다. 평범하다. 반복을 통해, 4마디 정도를 지그시 이어본다. 역
마라샹궈와 가죽지갑으로 처음 만난 피렌체
연재중
피렌체로 가는 길 나흘 간 머물렀던 로마를 떠나, 이제 피렌체로 떠납니다. 사실 '로마' 앞에 '정들었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려다가 멈칫했습니다. 스물셋의 저는 로마에 정까지 들지는 않았던 것 같아서요. 물론 지금까지도, 유럽의 첫 도시로서 유독 애정어리게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흘은 정까지 들기에는 조금 짧은 시간이지요. 대신, 그 나흘의 기록을
행복하여라, 오늘의 끝에 다다른 이들.
연재중
뭐 하나에 미치는 거, 좋아 보이네 뭐 하나에 미치는 건 아름답다 새벽. 골목에 나섰는데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새벽의 도시에서 기대되는, 숨소리 하나도 조심스러운 고요함이 아니었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취객들의 노랫소리와 웃음소리, 볼륨 조절기가 고장 난 대화소리였다. 어제저녁에 축구 경기가 있었다더니 밤새 잔치가 벌어졌나 보았다. 먼 길을 나서는 우리
모든 분야에 AI를 적용해야 할까?
"기존 업무에 억지로라도 AI를 붙이라는데 진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어." 오늘 근심걱정이 한 가득인 동료와 같이 점심을 먹었습니다. 몇 날 며칠, 아니 몇 달째 끝없는 회의를 거듭하며 아이디어를 짜내다 결국 도움을 구하러 찾아온 것입니다. 동료가 맡은 일은 콘텐츠 기획과 제작이었습니다. 지금 이 업무에 정말 필요한 것은 고도의 AI 기술이
의무로부터의 졸업
2006년 12월 어느 월요일, 무궁화호를 타고 논산으로 향했다. 입대하러 가는 날이었다. 바리깡으로 짧게 밀린 머리는 적응이 안 되고 아침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조차 분간이 안 되었다. 마치 꿈꾸는 기분이기도 했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논산역에 도착해서는 초행길이라 택시를 타고 입소대대로 향했다. 지금 생각하니 택시 기사가 제대로 바가지
우체국이 새로운 시선이 될 때
00 역을 마주한 흰 얼굴 도쿄역 마루노우치 광장의 남쪽 모서리, 붉은 벽돌 역사를 비스듬히 마주한 자리에 흰 건물 하나가 모서리를 둥글게 굽히고 서 있다. 그 뒤로는 유리 타워가 솟아 있다. 옛 도쿄중앙우체국(東京中央郵便局), 지금의 KITTE다. 세 번째 편에서 도쿄역 마루노우치 역사를 다루며 광장 한가운데서 역을 올려다봤다. 이번에는 역을 등지고,
가우디가 누구니 도대체 어떻게 이걸 이렇게 지으셨니?
연재중
거리 위 웅장한 화장터 바르셀로나에서 맞는 두 번째 아침이었다. 우리는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러 갔다. 아! 참고로 어제저녁에 자기 전에 가우디라는 사람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였으니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가우디는 카사바트요, 카사밀라, 사그라다파밀리아, 구엘 공원 등 여러 건축 유적?을 남긴 건축가였다. 또한, 자연을 표방한 건축을 하였다. 높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연재중
약속이 없는 날, 날씨가 좋으면 이불 빨래를 한다. 오늘은 아이 이불이 당첨이다. 우리 집 이불 중 가장 해지고 낡은 이불이 찢어질까 봐 세탁기에서 탈수 강도가 낮은 코스를 선택했다. 적도의 뜨거운 태양 아래 바싹 구워진 이불을 걷을 때면, 습관처럼 이불에 코끝을 파묻는다. 따끈하고 바스락거리는 이불속에는 섬유유연제로는 흉내 낼 수 없는 달콤한 향이 배
축구와 치사하게
"7번, 7번을 막아! 막으라고" 남편의 절규에 축구장 사이드라인에 모여 선 어른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공휴일인 월요일, 동네 축구팀 아이들이 토너먼트에 참가했다. 남편은 5년 전부터 봄과 가을마다 동네 유소년 축구팀 코치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 동네에 새로 이사 들어와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온 가족이 사교적으로 무능하게
이미 이기고 있는 사람이 더 크게 이기는 시대
2021년에 'AI는 프로그래머를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글을 썼다. 그 글의 마지막에 “개발자들은 한동안은 안전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적었다. 코드를 작성하는 행위는 AI가 대신하더라도, 무엇을 만들 것인지 정하는 일은 사람의 몫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구분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동안'이라는 말에 예전만큼 안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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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카라에 실린 이야기들은 어긋남에 관한 이야기다. 누군가는 눈을 피했고, 누군가는 손을 감췄고, 누군가는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사람은 그것을 읽었다. 대개는 틀리게.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남의 마음을 잘못 읽는다. 침묵을 무관심으로, 망설임을 거절로, 익숙함을 진심으로. 그래서 이 이야기들 속 진실은 늘 한 박자 늦게 도착한다. 반년 뒤의 방송 화면으로, 몇 년 뒤의 호텔 로비에서, 혹은 이미 손도장을 찍고 난 뒤에. 어떤 늦음은 웃음이 되고, 어떤 늦음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이 바카라을 덮을 때쯤, 당신에게도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쯤 있기를 바란다. 그때 그 사람은 무엇을 말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듣고 있었을까.
선이 있다. 누구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다. 넘다가 죽을 수도 있는 선이다. 넘지 않아도 죽었다. 이쪽에는 죽음이 있었고, 선 너머에는 삶이 있다. 우리는 그 말 하나를 믿고 선을 넘었다. 선 너머에서 우리를 맞은 것은 삶이 아니었다. 값이었다. 넘어온 몸에는 값이 붙었다. 우리가 매기지도, 원하지도 않은 그 값은 우리 것이 아니었다. 살자고 넘은 선이 죽기보다 못한 삶을 주었다. 인간답게 살려면 또 다른 선을 넘어야 했다. 그 선은 더 멀고 더 무서운, 살아서 닿을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선이다. 그래도 넘어야만 했다. 몇이 그 선을 넘었고 몇이 남았는지는 아무도 세지 않았다. 이제부터 세어 보겠다.

열여섯의 계순은 스물아홉의 아저씨를 만나 열일곱에 엄마가 된다. 네 명의 자녀를 낳아 가정을 꾸렸다. 어린 엄마와, 그 자녀들의 엄마가 되고 싶었던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계순의 삶 속에 어느새 폭력처럼 다가온다.
버스도 들어오지 않던 산골 마을, 설이의 등에는 늘 동생이 업혀 있었습니다. 엄마의 호통을 피해 설이가 숨어드는 곳은 큰집 사랑방. 집에서는 아무도 불러 주지 않는 그 이름을, 서울 사는 큰집 오빠만은 "설이야" 하고 불러 줍니다. 오빠가 두고 간 바카라 속에서 설이는 처음으로 다른 세상을 만납니다. 그런데 자두가 익어 가던 어느 여름, 그 오빠가 이상해져서 돌아옵니다. 그날 이후 어린 설이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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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래피와 에세이시로 그리는 일상적인 삶의 고백입니다. 붓끝에서 피어난 글씨의 곡선과 여백 속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하루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을 때, 따뜻한 글씨와 한편의 시로 이 공간에 머물다 가세요. 시의 조용함과 시각 예술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연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매주 월요일(가족 에세이시) 수요일, 금요일(일반에세이시), 당신의 마음에 먹향처럼 은은하게 번지는 아날로그 감성 한 스푼을 더해줄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ditor
pick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있지만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근로자의 권리를 구제한다고는 하지만 우리도 애환을 가지고 사는 많은 근로자 중 하나일 뿐입니다. 현직 감독관의 시선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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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잡한 내면으로 너무나 쉽게 헝클어지는 우리는, 지금 단지 청춘을 건너고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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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으로의 시간여행 시즌1, 2,3의 후속작입니다. 진혜와 광팔과 함께하는 본격적인 시간여행입니다. 1980년대 초의 연예게와 정치 스포츠가 벌어지는 사건에서 정훈과 친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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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미월동도 겉으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골목을 뛰어다니고, 평상에서는 웃음이 이어지고, 열린 창문 사이로 라디오와 매미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평상에서 끊긴 대화가 있고, 닫힌 문 안에서 낮아지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알지 못한 채 어른들의 마음을 조금씩 눈치채기 시작합니다. 《미월동 다락방 - 여름의 소리》는 그렇게 조금 더 뜨겁고, 조금 더 시끄럽고, 조금 더 복잡해진 미월동의 두 번째 계절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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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도, 전문지식도 없지만 세상에서 '들어주기' 하나는 제일 잘합니다." 8년 다닌 일터가 문을 닫고 백수가 된 66년생 미순 여사. 실업급여마저 끊기고 찾아온 인생의 모퉁이에서, 아파트 입주민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복숭아마을 아파트 상담사'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저마다의 외로움과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아파트 주민들, 그리고 그들의 쫑알거림을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다정하게 들어주는 미순 여사. 소소하지만 가슴 뭉클한 좌충우돌 K-아파트 힐링 소설!
사람 때문에 아프면서도 사람을 쉽게 놓지 못한다. 미움받을까 참았고, 혼자가 될까 붙잡았고, 관계를 지키느라 정작 나를 잃어버렸다. 이해하려 애쓰는 것과 나를 버리는 것은다른 일이다. 어디까지 견디고, 어디서부터 멈춰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을 뿐. 관계의 끝에서 비로소 나를 다시 만난다. 타인을 사랑하면서도 나를 잃지 않는 법. 어떤 관계는 붙잡아야 내가 살고, 어떤 관계는 놓아야 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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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잘 지내고 계시죠? 가끔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웃던 날들이 생각나요. 그럴 때면 혼자서 얼마나 웃는지 몰라요. 그때 우리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과 언젠가는 꼭 이루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매일을 빼곡히 채워갔잖아요. 그러면서도 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런 시간을 꿈꿨었죠. 저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도시를 떠났어요. 그런데 여기 제주는 또 다른 세계를 마주하는 것 같아요. 조금은 엉뚱하고 이상하기도 한 이곳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드릴게요. 어쩌면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어요. 순전히 제 생각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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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잡으려 했고 때로는 놓아주었던 마음들. 갈래갈래 마음을 열어놓고 술래가 된 기분으로 시야를 넓혀 보아요. 갈래갈래 흩어져있는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마음을 찾아다니는 술래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늘 늦게 떠오릅니다. 사랑해서 하지 못한 말, 미안해서 하지 못한 말, 괜찮은 척하느라 혼자 삼킨 말, 그리고 너무 늦어버린 말들. 이미 돌아선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이미 끝난 대화를 곱씹으며, 이미 지나간 관계를 붙잡고 혼자 중얼거립니다.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찔리고, 때로는 내 이야기 같아서 뜨끔해지는, 사람 때문에 울고 웃고 후회하면서도 또 사람을 그리워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타인의 기대와 시선 속에서 마음은 조금씩 지쳐간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다가 정작 나에게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 때로는 거절해도 된다. 때로는 내려놓아도 된다. 때로는 거리를 두어도 관계는 무너지지 않는다. 나를 지키는 일은 누군가를 밀어내는 일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고 곁에 두는 일이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진짜 관계이고 나를 버리지 않아도 되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다.
하지 못한 말들을 수첩에 묻어둔 광부 박덕수. 사십 년 뒤 폐광에서 그 수첩을 발견한 사업가 민석. 시대는 다르지만 같은 어둠을 지나온 두 가장이 마침내 깨닫는다. 마음에 품은 것은, 꺼내어 전하지 않으면 끝내 상대의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전하지 못한 말들을 찾아가는 이야기.
한 사람의 변화와 그 곁을 지키려 했던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본능과 사랑, 그리고 평범함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 과연 무엇 때문에 평범함을 잃어가는지,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질문이 마음속에 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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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여름, 서연은 2년전 남편과 함께 갔던 오디오 박물관, 오디움에서 오래된 스피커 앞에 오래 서 있고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닦는 프랑스 청년 레오를 만난다.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마다, 다른 삶이 시작된다. 면접을 위해 오래된 별관을 찾은 연우는 낡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상한 문구를 마주한다. **“당신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입니까.”** 그리고 문이 열릴 때마다 그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노인,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기사, 아이를 기다리는 사람, 그리고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새, 고양이처럼 자신이 한 번도 되어 보지 못했던 존재들. 그들의 하루를 살아낸 뒤에도 연우에게 남는 것은 있다. 손끝의 감촉. 몸에 밴 냄새. 발밑의 진동. 누군가를 기다리던 마음. 층수가 내려갈수록 연우는 다른 생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으로 살아왔는지를 조금씩 마주하게 된다. 마지막 문이 다시 열리는 순간, 연우는 처음과 같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온 삶은 정말 우리 것일까. 그리고 아직 가 보지 않은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닫힌 문 너머의 겨울에게》 4막 ‘돌아오지 않는 계절‘에서는 아이와 함께 긴 마라톤을 시작한 진의 시간을 따라갑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길을 찾아 쉼 없이 달리는 동안, 진은 오래도록 놓지 못했던 K를 완전히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과 마주합니다.사랑은 끝났지만 마음까지 함께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K와 나눈 시간, 오래 기다려준 마음, 끝내 돌려주지 못한 사랑은 때로 진을 아프게 하고 때로는 살아가는 다정한 온기가 됩니다.진은 지나간 사랑을 되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이 남기고 간 마음을 품은 채 아이와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그리고 오래 지나서야 알게 됩니다.끝난 사랑도 한 사람 안에 오래 남아,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욕은 가장 오래된 언어다. 문명이 예의를 가르치기 전부터 사람은 아플 때소리부터 질렀다. 욕은 무례함이 아니라 때로는 가장 정직한 순간의 언어다. 참고 참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튀어나오는 한마디에는꾸미지 않은 진심이 담겨 있다. 욕을 하지 않는 사람도 욕을 삼키며 살아간다. 다만 소리 내지 않을 뿐 마음속에서는 똑같이 터지고 있다. 거친 말 속에도 사람의 온도가 있고. 투박한 말 속에도 사람의 역사가 있다. 욕의 인문학이란 결국 사람이 얼마나 날것으로 아파왔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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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함으로서 느끼게 되는 수많은 생각의 파편들을 글로 풀어내며, 여백의 시간에 나의 세계를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은 마음으로, 또한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내 마음의 변화도 보는. 지나고 보면 어떤 사물이던 그 때 그 마음은 존재치 않기에.
2
세자가 죽었다. 사인은 열병. 그러나 제령대군 이신은 동생 이현에게 형의 죽음을 조사해 달라 청한다. 황명을 받은 이현은 세자가 독살당했음을 밝혀내고, 범인은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사건은 종결되었고, 이신의 결백은 공식 기록으로 남았다. 그러나 모든 진실이 밝혀졌다고 믿었던 이현은 수사 기록에서 작은 모순을 발견한다. 자신이 찾아낸 증거는 과연 누구의 손에서 시작되었는가. 황좌를 향해 걸어가는 제령대군과 진실을 좇는 이안군. 한 사람은 동생의 올곧음을 이용하고, 다른 한 사람은 형의 그림자를 의심한다. <무심>은 진실마저 권력의 도구가 되는 궁에서, 서로 다른 길을 택한 형제의 이야기를 그린 정치 스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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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코너의 그 남자'는 하나의 사건에 대한 여러 장르의 소설로 구성된 시리즈 물이다. 재출간과는 조금 다르다. 이전의 소설을 다시 하나의 바카라으로 묶으려고 한다. 글은 변함 없다. 같은 블럭으로 다른 건축물을 짓는다. 미완의 상태를 편집하는 과정이다. 사람은 총합적 존재다.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도 그렇다. 삶은 여러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바카라이 어디까지 당도할지 알 수는 없다. 어쩌면 나선형의 계단을 내려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나간 일들은 어차피 완성도 끝도 없다. 사는 것이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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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혁신가이드 안병민 대표열린비즈랩[열린비즈랩] 대표|서울대 언론정보학과+HSE MBA|*저서 [마케팅 리스타트]+[경영일탈]+[그래서 캐주얼]+[숨은혁신찾기]+[사장을 위한 노자]+[주4일 혁명]+[질문인간]
정명훈아이디어가 사업이 되고 시장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연구합니다. 스타트업 사업계획서, 소상공인 유통전략, 상품기획과 비즈니스 모델 전략을 기록합니다.
멋쟁이사자처럼프로그래밍교육POSSIBILITY TO REALITY, 우리는 멋쟁이사자처럼입니다.
WorthWorks LEEWorthWorks공간과 브랜드, 그리고 삶의 구조를 설계합니다. 하이엔드 인테리어와 공간 비즈니스, 번아웃 이후의 재정렬 과정을 기록합니다. 지식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관점과 구조를 전합니다.
도요까와ABTわたしはめっちゃかわいい豊川民赫。/ 18세(고2), 키 197cm, 체중 34kg인 청소년입니다. / ihmihm.com
- 변희정문밖세상
문화예술 현장 21년, 서예하는 문화예술기획자이자 문밖세상 대표. 예술과 사람을 잇고, 새로운 기획으로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실천적 몽상가로 살아간다. 삶이 곧 예술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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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산에 가자는 친구에게by 트로츠뎀벌써 몇 번이나 너는 내게 주말에 함께 산이나 가자고 연락을 해 왔지. 연휴가 이어지는 때면 지리산 같은 조금 거리품을 팔아야 하는 먼 곳의 산에 가자고, 혹은 그냥 보통의 주말이면 인근의 산이라도 타러 가자고. 너의 무덤덤하지만 꽤 진지한 제안을 나는 경우 없게도 몇 차례나 그다지 급하지 않은 회사일 핑계도 대보고, 별안간 집안의 대소사가 생겼다는 연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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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들과 시간을 맞추어 고향집에 갔다. 고향집은 내가 태어난 곳이고,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다. 그곳에는 나의 기억이 있고 부모님의 체취가 묻어있는 곳. 그 옛날 밥 짓는 냄새가 골목으로 흘러나오고, 마당 한쪽에서는 엄마가 나물을 다듬고, 해가 기울면 식구들이 엄마품으로 돌아오던 곳이다. 이제는 부모님이 모두 안 계신다. 그러나 고향집은
우리 회사는 각티슈로 계급을 나눕니다by Giagraphy4부. 근데 거길 왜 나왔어? "제가 전형적인 한국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어서요. 정말 몰라서 실수할 수 있으니, 그때마다 바로 말씀해 주세요.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두 달의 휴식 끝에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첫날부터 내가 한 말이었다. 그날 내 자리에는 전화기가 없었다. 옆자리 동료가 요청하는 법을 알려줬는데, 제목은 이렇게 쓰면 된다고 했다. '전
고양이 밥 주러 갔다가by 은진모든 일은 그 녀석들 때문이다. 밥은 받아먹으면서도 끝내 사람 손은 타지 않는 녀석들. 아니,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지 못한 내 탓이 더 크다. 그 녀석들을 만나기 전까지, 대전에서의 날들은 달콤했다. 서른 해 넘게 출근 시간에 맞춰 살다가, 시계를 보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었다. 오로지 우리 두 사람의 하루만 챙기면 되었다. 느지막이 아침을 맞고, 식사
떠나야 알게 되는 것들by 영라내년 4월이면 한국을 떠나온 지도 어느덧 십 년이 된다. 십 년 전 어느 날, 남편이 '회사에서 싱가포르에 갈 기회가 생겼는데 가볼까?'라고 묻던 순간을 아직도 가끔 떠올리곤 한다. 그때 한국에 남기로 했다면 지금쯤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러니까 그 해는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복귀해 일 년쯤이 지났을 때였다. 경력은 십 년을 채워가고 있었고, 몇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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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공기가 아직 차가운 아침,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면 먼저 나온 친구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며 인사를 나누고, 오늘은 누가 오는지 서로의 얼굴을 살핀다. 그렇게 우리의 정기 산행이 시작된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은 무조건 비워두기. 우리들의 약속이다. 물론,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친구들이 더 많지만,
삼겹살과 소주는 반칙by 김민수주차장에서 캠핑장까지 올라가는 길은 예상보다 짧았다. 그보다 얼어붙은 길바닥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중심을 잡는 것이 힘들었다. 한낮에도 응달인 길은 눈이 녹지 않아 빙판길이 되었기 때문이다. 동계에는 필요하든 그렇지 않든 아이젠과 트레킹 폴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2026년 1월 1일 목요일, 신정인 날에 두 번째 백패킹에 나섰다. 금요일 연차를 내
당근을 안 먹던 딸이 당근라페를 부탁했다by 올리브맘우리 집 냉장고에는 오늘도 당근라페가 있다. 통을 꺼내 조금 덜어 먹고 다시 넣어둔다. 처음에는 당근라떼인 줄 알았다. 당근으로 라떼까지 만들어 먹나 싶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행이라는데, 나는 그런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레시피를 찾아보고서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당근을 길게 썰어 양념해 먹는 음식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더 뜻밖인
그게 부부인 것 같아 씁쓸하다by 서화전혀 예상 못한 소식이었다. 내가 아닌 셋째에게로 연락이 왔다. 실버타운에 계신 시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갈이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면회를 왔다 가면 좋겠다는 셋째 시누이의 말을 딸아이를 통해 듣고 잠을 설쳤다. 시어머니 시아버지와 나는 햇수로 5년을 같이 살았다. 그 세월 동안 내가 싱글이 되었고, 두 노인과는 법적으로는 효력이
깍두기 담그는 밤by 바카라읽는 헤드헌터저녁에 언니네 들렀다가 언니가 준 무와, 대파를 얻어왔다. 무와 대파조합이라면 생각할 것도 없이 생채를 만들면되는데, 연달아 서너번 이미 무생채를 해준터라 이번에는 처음해보는 깍두기에 도전하게 되었다. 무생채 채썰기보다 깍두기 깍뚝썰기가 훨씬 쉽기도 하고! 아이작은 신김치는 비각이라고 했다. 비각? 문득 '비각' 이라는 단어를 온라인카지노에 옮기려다 낯설
혼자 떠나도 되는 해외여행by 박계장해외여행을 생각하면 가 보고 싶은 곳보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의 난처함을 먼저 떠올렸다. 숙소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설명할까. 길을 물었는데 대답을 알아듣지 못하면 어쩌나.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낯선 곳에서 겪을 곤란부터 걱정했고, 자유여행은 외국어를 잘하거나 낯선 상황에서도 겁내지 않는 사람들의 몫으로만 여겼다. 지난 4월, 해외정바카라연수팀에 선정되면
프랑스는 왜 결혼보다 동거를 할까?by 파리이방인“결혼하기 전에 남자와 꼭 동거를 해보고 결혼해야 해. 알았지? 평생을 살 사람인데 어떻게 동거를 해보지 않고 덜컥 결혼을 할 수 있지?” 이십여 년 전, 한 프랑스남자가 인생조언처럼 내게 해 준 말이다. 그 인생조언을 해 준 사람은 지금 나의 남편이 되어 있지만 그때 그가 했던 말은 진심이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나는 심각한 얼굴로 이런 말을 충고랍시고
갈비, 그릇마다 담겼던 마음by 굳데이명절 무렵 마트에 가면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인 갈비 선물세트에 눈길이 간다. 그 앞에 잠시 서 있으면 온라인 게임 생활을 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는 명절을 앞두고 갈비를 선물하기도, 받기도 했다. 당시에는 부산에 계신 어머니가 차례를 모셨고, 명절이면 우리도 아이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모님께서 연로해지신 뒤에는 우리가 제사를 이어받아 서울에서 차례
아무도 나를 모르는 시골에서 조용히 살기by 상모솔새앞서 소개한 바 있듯이 한때 나에게는 입신양명이라는 꿈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도 공존했는데, 공공연히 사생활이 알려진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의 삶이 얼마나 피곤할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모 로맨스 소설가가 필명으로 글을 써서 작품이 아주 유명해졌지만, 본업이 따로 있으며 주변사람들도 그의 정체를 모른다는 소문이 있었다. 고향 마을에
- X세대의 갱년기 사용설명서by 선홍
세상에나, 내가 벌써 갱년기라니. 엄마는 네 나이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X세대였다. 자본주의의 세례를 가장 오롯이 받고 소비의 맛에 일찍이 눈을 뜬 첫 세대였지. 체제에 반항하던 80년대 학생운동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개인의 욕망에 비로소 눈뜨기 시작했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한 손에 들고, 카페에 앉아 ‘
싸우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는 멀어졌을까by 오로보이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언제 한번 보자.” 반가운 마음에 답장을 보낸다. “그러게. 진짜 오랜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약속은 잡히지 않는다. 서로 바쁘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화가 끝난다. 예전에는 별일 없어도 만났던 사이였다.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밥을 먹고, 특별한 일이 없어도 연락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연락할 이유가
오늘도 혼밥하는 리더의 점심시간by 수풀림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옆 부서 상무님을 만났다. "어, 상무님~~~어디 가세요?" 그냥 가볍게 물어본건데, 상무님 표정은 복잡미묘하게 변했다. "아, 점심을 먹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어서요..." 마침 점심시간이었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식당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반면 상무님은 딱 봐도 혼자였다. 나도 같은 혼밥 처지라 그분에게 같이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
떠날 날이 가까워질수록by 이민자의 부엌어느 날 밤, 남편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가 날짜를 세어보더니 말했다. “이제 이틀밖에 안 남았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쪽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편이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고 했을 때 나는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다며 웃었는데, 어느새 돌아갈 날이 바로 앞에 와 있었다. 영국으로 오기 전에는 열네 날이면 제법 긴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돈이 없어지자 시작된 진짜 돈 공부by 배짱이 데스크오랜만에 언니와 점심을 먹었다. 백수 기간이 1년이 넘어가고 있는 동생이 걱정되었는지 언니는 넌지시 돈은 있는지 물었다. 나는 정말로 괜찮다며 오히려 나의 절약 노하우를 늘어놓았다. 내가 얼마를 쓰고 있는지, 불필요한 돈을 줄이는 기쁨이 얼마나 좋은지 언니에게 나의 경험을 자랑했다. 신기하게 1년하고도 3개월이 지났지만 돈 때문에 불안하지 않다.(비정
부정적인 감정은 하나도 없는 게 정말 좋을까요?by 심리학자 이선경부정적인 감정은 하나도 없는 게 정말 좋을까요? “좋은 생각만 하세요.” “나는 왜 또 이렇게 부정적일까?” “마음 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나?” “행복한 사람은 이런 기분을 잘 느끼지 않을 텐데.” 행복한 삶이라면 기쁨과 즐거움은 최대한 많고, 슬픔, 불안, 분노는 적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삶이 우리가 원하는 가
퇴사했어도 네 성실함은 사라지지 않는다by 리더십마스터 조은지멘토기질적으로 참 부지런한 후배가 있다. 대학생 때도 아침 시간을 활용하고 싶다며 오전 7시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던 친구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할 일을 찾고, 생각한 것은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그런 후배가 최근 퇴사했다. 퇴사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집에 서재를 꾸리고, 앞으로 할 일을 찾느라 바쁘다. 그 모습이 참 그답다. 새로운
인연은 천리 밖에서도 만난다by 설읽은중국에는 예로부터 '유연천리래상회 무연대면불상봉'이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 인연이 있으면 천리 멀리 있어도 만날 것이고, 인연이 없다면 눈앞에 두고도 마주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오세브레이로에서 다음 마을로 가던 날 대만 아주머니를 거의 열흘 만에 다시 마주치고 이 문장이 딱 스쳤다. 레온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걸음이 빨라진 데다 마음의 여유가 생겨 더
말하지 않은 것들by 에티텔보르헤스가 이런 말을 했다. 남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이 이룬 업적을 보면서, 남이 나를 평가할 때는 내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정확한 문장은 아닐 것이다. 오래전에 읽은 거라 기억 속에서 조금씩 모양을 바꾸었을 것이고, 때로는 변형된 문장이 지금의 나에게 더 필요한 말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장
소란스러운 마음에 대하여by 하릴없이 하드보일드은퇴를 하고 유유자적 살고 있는 지금도, 때로 마음이 소란스러워질 때가 있다. 정도나 강도의 차이일 뿐, 이따금의 소란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는 없나 보다. 원인은 다양하다. 과거의 원인은 대부분 슬롯생활이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업무, 나를 미워하는 누군가, 나와 생각이 다른 상급자 그리고 구성원.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이제는 그것 때문
인간관계에 필요한 코어근육이라면by 눈설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정확히 말하면 친밀하게 지내거나 나와 잘 맞는 친구. 그런 친구가 거의 없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긴 한데, 그중에서도 자발적인 영향이 가장 크지 않나 싶다. 물론 어딘가에 있는데 아직 못 만났을 수도 있다. 대신 가까이 지내는 몇몇 사람들이 있다. 지금처럼만 같다면 이 사람들은 아마 나의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꽤 오래가지 않을까 예
쓰레기 단상, 상추by 흔적제로웨이스트는 0의 상태를 의미하는 ‘제로(zero)’와 낭비를 뜻하는 ‘웨이스트(waste)’가 합쳐져 탄생된 말이다. 사람들은 쓰레기를 전혀 만들지 않는 생활 방식이라고 여겨 부담을 갖지만, 사실 본질은 ‘쓰레기(trash)’가 아닌 ‘낭비(waste)’에 맞춰져 있다. 그게 아니었다면 ‘제로웨이스트’가 아닌 ‘제로트래쉬’가 되었어야 했겠지. 사실상
내 미국 온라인 게임은 모두 삼성역에 있었다by 예나빠"저희 왔어요!" 거의 해마다 여름이면 아이들 방학에 맞춰 한국을 찾는다. 미국에 자식들을 보내놓고 기다리시는 양가 부모님과 일가친척을 뵙기 위해서다. 아이들을 앞세워 오랜만에 집에 들어갈 때면 반가움과 함께 늘 죄송한 마음이 든다. 모처럼 한국까지 왔는데 여름휴가 1~2주만 보내고 돌아가기에는 아쉽다. 그래서 휴가 앞뒤로 1~2주 정도 원격근무를 붙여
그걸 꼭 말로 해야 압니다.by 첼라아니 아까 나 너무 화났잖아. 다음 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회의하자고 했으면 알아서 딱 회의실 예약 해놔야 하지 않아? 어후... 기획자가 저렇게 센스가 없어서야.... 한바탕 공격적인 회의가 끝나고 나와 팀장이 말했다. 그가 지적한 것은 막내 기획자였는데 이제 입사한 지 일 년이 막 될까 말까 한 친구였다. 연차도 1년이 안된 친구라 그런지 팀장은
먹는 재미는 알겠는데by 김민수캠핑은 언제나 내 예상보다 일찍 출발해야 한다는 걸 상기했다.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 짐꾸리기 시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또 뭘 하다 금세 시간이 흘렀더라. 아마 밥친구인 유튜브를 보다 그랬나 보다. 서운산은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곳이다. 별생각 없이 '인천에서 가깝겠네' 하고 출발했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요즘은 내 MBTI가 정말 J인지 의심
이제는 '착한 척' 버리고 독하게 성장하겠다는 브랜드by 조인후최근 뷰티 업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건을 하나 꼽자면, 단연 친환경 뷰티 브랜드 톤28(TOUN28)이 선보인 'TOUN28 2.0 UNPACK' 행사일 것이다. 그동안 고체 샴푸바, 종이 패키징, 무농약 자체 농장 등을 앞세워 '착하고 진정성 있는 브랜드'로 입지를 다져왔던 톤28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전까지의 톤28은 친환경이라는 가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