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밴드, 딱풀, 포클레인의 진짜 이름
무릎이 까져서 약국에 간다. 약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대일밴드 하나 주세요.
약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선반에서 상자를 하나 꺼낸다. 그런데 그 상자에 대일이라는 글자가 없어도 아무도 따지지 않는다. 다른 회사 제품을 받아 들고도 우리는 대일밴드를 샀다고 생각한다. 약사도 마찬가지다.
종이를 붙일 때는 딱풀을 찾는다. 상자를 묶을 때는 스카치테이프를 찾는다. 공사장에서 흙을 퍼내는 커다란 기계는 포클레인이라고 부른다. 이 이름들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원래 이름이 따로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찾아보면 끝이 없다. 승합차는 회사와 상관없이 봉고차가 되고, 조미료를 넣었느냐고 물을 때는 미원 넣었냐고 묻는다. 물티슈, 셀카처럼 처음부터 일반명사로 태어난 말들 사이에 이런 상표 출신 단어들이 섞여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회사 이름을 매일 부르면서 산다. 광고비 한 푼 받지 않고.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별명이다. 정확히 말하면, 한 회사의 상품 이름이 그 물건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커져버린 경우다. 법률 용어로는 상표의 보통명칭화라고 부른다. 조금 더 극적인 영어 표현도 있다. 상표가 일반명사가 되어 죽는다는 뜻의 제너리사이드, 이름하여 상표 살해다.
오늘은 이 별명들의 본명을 하나씩 찾아가 보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상한 질문 하나와 마주치게 될 것이다. 이름이 유명해지는 것은 성공일까, 실패일까.
먼저 대일밴드. 이 물건의 본명은 일회용 반창고다. 대일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일회용 반창고가 워낙 널리 팔리다 보니 회사 이름이 물건 이름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겹이 하나 더 있다. 대일밴드의 밴드는 어디서 왔을까. 일회용 반창고를 세상에 처음 퍼뜨린 것은 미국 존슨앤드존슨의 밴드에이드다. 1920년대 초, 이 회사 직원이 부엌일을 하다 자주 손을 다치는 아내를 위해 거즈를 테이프에 미리 붙여둔 것이 시작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밴드에이드는 일회용 반창고 전체를 부르는 말이 되었다.
그러니까 대일밴드는 별명 위에 지은 별명이다. 미국 회사의 상표에서 한 조각을 빌려오고, 거기에 한국 회사 이름을 얹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다시 한국에서 일반명사가 되었다. 상표의 세계에도 족보가 있다면 꽤 복잡한 가계도가 나올 것이다.
밴드에이드를 만든 회사는 이 상황을 그냥 두지 않았다. 한동안 광고 노래 가사를 바꿔 밴드에이드 뒤에 굳이 브랜드라는 단어를 붙여 불렀다. 밴드에이드는 반창고가 아니라 우리 회사 상표라는 것을 소비자 귀에 끊임없이 새겨 넣으려는 노력이었다. 이름이 너무 유명해지는 것을 회사가 걱정하는, 조금 이상한 장면이다.
딱풀의 본명은 고체풀이다. 립스틱처럼 돌려서 올리는 이 풀은 독일 헨켈이 1969년에 프리트라는 이름으로 처음 내놓았다. 개발자가 비행기 안에서 여성 승객이 립스틱 바르는 모습을 보고 떠올렸다는 일화가 함께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1984년에 문구 회사 아모스가 이 형태의 풀을 내놓으며 딱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흐물흐물한 물풀과 달리 딱딱한 풀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이름이 워낙 직관적이어서 처음부터 일반명사처럼 들렸다. 상표로서는 축복이자 저주다.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지만, 너무 쉬워서 남의 제품에도 그 이름을 붙이게 된다.
스카치테이프의 본명은 셀로판테이프다. 흔히 스카치라는 회사가 만든 테이프라고 알려져 있지만, 스카치는 회사 이름이 아니다. 미국의 3M이 자사 테이프에 붙인 브랜드 이름이다. 3M의 기술자 리처드 드루가 1925년에 자동차 도장용 마스킹 테이프를, 1929년에 투명한 셀로판테이프를 만들었다.
스카치라는 이름에는 짓궂은 사연이 붙어 있다. 초기 마스킹 테이프는 비용을 아끼려고 가장자리에만 접착제를 발랐는데, 테이프가 자꾸 떨어지자 화가 난 도장공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 테이프 들고 가서 그 스카치 사장한테 접착제 좀 더 바르라고 해. 당시 스카치는 스코틀랜드 사람을 가리키며 인색하다는 뜻으로 쓰이던 속어였다. 구두쇠라는 욕이 세계적인 상표가 된 셈이다. 물론 이 일화도 여러 버전으로 전해지니 적당히 웃으며 들으면 된다.
포클레인은 사연이 더 멀다. 이름은 프랑스의 건설기계 회사 포클랭에서 왔다. 1927년에 세워진 이 회사는 1950년대부터 유압식 굴착기를 만들며 한때 세계 시장을 이끌었다. 우리나라에도 이 회사 장비가 들어오면서 회사 이름이 기계 이름이 되었다.
다만 포클랭이 굴착기를 처음 만든 회사는 아니다. 땅을 퍼내는 기계의 조상인 증기 삽은 그보다 훨씬 앞선 1830년대 미국에서 특허를 받았다. 포클랭은 유압으로 움직이는 굴착기를 대중화한 회사에 가깝다. 그리고 한국어 표준 표기는 포크레인이 아니라 포클레인이다. 본명은 굴착기 또는 굴삭기다.
흥미로운 것은 포클레인이라는 별명이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인도와 중동 일부 지역에서도 굴착기를 포클레인이라고 부른다. 정작 이 회사의 고향인 프랑스에서는 굴착기를 주로 펠르퇴즈나 펠 이드롤리크, 그러니까 기계식 삽이라는 뜻의 말로 부른다. 자기 나라에서는 회사 이름으로 남고, 먼 나라에서는 물건 이름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호치키스는 더 꼬여 있다. 본명은 스테이플러다. 흔히 프랑스 회사 호치키스에서 수입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여기에는 두 회사가 뒤섞여 있다.
프랑스에는 실제로 오치키스라는 회사가 있었다. 미국 출신 기술자 벤저민 호치키스가 프랑스에 세운 회사로, 기관총과 자동차를 만들었다. 한편 미국에는 E. H. 호치키스라는 사무용품 회사가 있었다. 일본에 처음 들어온 스테이플러가 바로 이 미국 회사 제품이었고, 본체에 호치키스 1호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 스테이플러가 홋치키스가 되었고, 이 이름이 우리나라로 건너왔다.
그러면 기관총 이야기는 왜 따라다닐까. 일본 군인들 사이에서 호치키스는 기관총 제조사 이름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스테이플러가 철심을 한 발씩 밀어내는 모습이 기관총을 닮았다. 그래서 기관총을 만든 사람이 스테이플러도 만들었다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생겨났다. 이름이 같고 모양이 닮았으니 둘을 엮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기록은 미국의 사무용품 회사를 가리킨다.
멜로디언도 비슷하다. 학교 음악 시간마다 등장하는, 입으로 불면서 건반을 누르는 그 악기다. 멜로디언은 일본 스즈키 악기가 만든 제품 이름이다. 그럼 본명은 멜로디카일까. 그런데 멜로디카라는 이름도 원래는 독일 하모니카 회사 호너가 1950년대 말에 내놓은 제품에 붙인 이름이었다. 일본에서는 또 야마하의 제품 이름인 피아니카로 부르는 사람이 많다. 별명을 벗기면 또 다른 별명이 나오는 마트료시카 같은 악기다. 교육 현장에서 쓰는 일반적인 이름을 굳이 찾자면 건반 하모니카 정도가 된다.
마지막으로 아마존과 세븐일레븐. 이 둘은 앞의 경우와 결이 조금 다르다. 별명이 굳어진 게 아니라 회사가 스스로 이름을 바꾼 경우다.
아마존의 첫 이름은 카다브라였다. 마법 주문 아브라카다브라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런데 이 이름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4년 회사를 세운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변호사가 전화 너머로 이 이름을 시체를 뜻하는 커대버로 잘못 알아들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서점 이름이 시체라니. 제프 베이조스는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새 이름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강에서 따왔다. 가장 큰 강처럼 가장 큰 서점을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알파벳 A로 시작해 목록 맨 위에 올라간다는 계산도 있었다. 그리고 이 이름 변경은 품목이 늘어난 뒤가 아니라 1995년 사이트가 문을 열기도 전에 이루어졌다. 그러니 우리가 아는 아마존은 처음부터 아마존이었다. 카다브라는 세상에 나오기 전에 사라진 이름이다.
세븐일레븐의 첫 이름은 토템 스토어였다. 1927년 미국 댈러스의 얼음 회사에서 시작한 이 가게는, 손님들이 물건을 들고 간다는 뜻의 토트를 살려 이름을 지었다. 그러다 1946년,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문을 연다는 영업시간을 그대로 이름에 넣었다. 당시로서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연다는 것 자체가 자랑거리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1960년대에 미국 텍사스의 한 매장이 밤새 문을 열어달라는 손님들 요청에 24시간 영업을 시험했고, 그 뒤로 24시간 영업이 퍼져나갔다. 이름은 7시에서 11시인데 정작 문은 닫지 않는다. 이름이 사실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아무도 이름을 바꾸자고 하지 않는다. 이름은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사실보다 오래 산다.
국적도 마찬가지다. 세븐일레븐은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지만, 1970년대 일본 유통 회사와 손잡은 뒤 일본 쪽이 점점 지분을 늘려 2005년에는 미국 본사까지 완전히 품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이름이 일본 회사의 간판이 되어 전 세계 수만 개 매장에 걸려 있는 것이다. 이름은 그대로인데 이름 뒤의 주인은 바뀌었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이름이 이렇게 유명해지는 것은 성공일까.
마케팅의 눈으로 보면 분명 성공이다. 소비자가 물건 이름 대신 내 상표를 부른다는 것은 그 분야를 사실상 대표한다는 뜻이다. 광고비를 쓰지 않아도 사람들이 매일 내 상표를 입에 올린다.
그런데 법의 눈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상표는 이 물건이 다른 회사 물건과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시다. 그런데 그 이름이 물건 전체를 가리키게 되면 더 이상 구별해주는 힘이 없다. 구별하지 못하는 상표는 보호받기 어렵다.
실제로 그렇게 이름을 잃은 사례가 적지 않다. 엘리베이터 회사 오티스는 에스컬레이터라는 이름을 상표로 갖고 있었지만, 1950년 미국에서 이 이름이 일반명사가 되었다는 판단을 받고 권리를 잃었다. 아스피린도 독일 바이엘의 상표였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 여러 나라에서 일반명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사례가 있다. 1970년대 오리온이 처음 내놓은 초코파이다. 다른 회사들이 같은 이름으로 비슷한 과자를 내놓자 오리온은 법적 다툼을 벌였지만, 법원은 초코파이가 이미 과자의 한 종류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지금은 여러 회사의 초코파이가 나란히 진열대에 놓인다. 호빵이나 컵라면도 처음에는 특정 회사가 붙인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름이 유명한 회사일수록 오히려 자기 이름을 지키느라 바쁘다. 복사기 회사 제록스는 문서를 제록스하지 말고 제록스 복사기로 복사하라는 광고를 낸 적이 있다. 레고는 공식적으로 레고들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레고 브릭이라고 부른다. 구글도 검색한다는 뜻으로 구글한다는 말이 퍼지는 것을 마냥 반기지만은 않았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동사로 쓸 만큼 사랑해주는데, 회사는 그러지 말아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처지다. 인기가 많아서 생기는 고민치고는 꽤 기묘하다.
이름이 너무 성공해서 이름을 잃는 것. 어쩌면 상표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죽음인지도 모른다.
정보를 정리하는 일을 공부하다 보면 이 별명들이 조금 다른 문제로 보인다. 같은 물건을 사람마다 다르게 부른다는 문제다.
도서관이나 데이터베이스에서 자료를 찾을 때 누군가는 포크레인으로, 누군가는 포클레인으로, 누군가는 굴착기나 굴삭기로 검색한다. 호치키스, 호치케스, 스테이플러도 마찬가지다. 검색 시스템이 이 단어들을 서로 다른 것으로 취급하면 같은 자료를 찾으면서도 누구는 수십 건을 얻고 누구는 하나도 못 얻는다. 자기 말로 물었을 뿐인데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자료를 정리하는 쪽에서는 오래전부터 시소러스라는 도구를 써왔다. 같은 뜻의 여러 표현 가운데 하나를 대표어로 정하고, 나머지는 그 대표어로 안내하는 일종의 이름 지도다. 포클레인으로 찾으면 굴착기를 보라고 알려주는 식이다. 별명을 없애는 게 아니라, 별명으로 와도 길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표어는 무엇으로 정해야 할까. 여기에도 오래된 고민이 있다. 학술적으로 정확한 말을 고를 것인가, 사람들이 실제로 많이 쓰는 말을 고를 것인가. 문헌정보학에는 이용자 보증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용자들이 실제로 어떤 말로 찾는지를 대표어를 정하는 근거로 삼자는 생각이다. 이 기준을 따르면 어떤 분야에서는 굴착기보다 포클레인이 더 나은 대표어가 될 수도 있다. 정확한 이름과 통하는 이름 사이에서, 정리하는 사람은 늘 저울질을 한다.
이 일은 생각보다 사람에 대한 존중과 닿아 있다. 전문가의 정확한 용어를 아는 사람만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시스템은 이미 아는 사람만을 위한 것이 된다. 약국에서 대일밴드를 달라고 했을 때 약사가 일회용 반창고라고 정정하는 대신 그냥 상자를 건네주는 것처럼, 좋은 시스템은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말을 알아듣는다.
별명은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말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보여준다. 기업은 이름을 붙이지만, 그 이름을 어떻게 쓸지는 결국 사람들이 정한다. 아무리 공들여 만든 상표도 사람들 입에서 굴러다니다 보면 모서리가 닳아 일반명사가 된다. 반대로 공식적인 본명은 사전과 법전 속에 얌전히 남아 있지만, 일상에서는 좀처럼 불리지 않는다.
그러니 다음에 약국에서 대일밴드를 달라고 할 때 굳이 일회용 반창고라고 고쳐 말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이름 하나에 미국의 부엌과 한국의 회사와 상표 분쟁의 역사가 겹겹이 들어 있다는 것만 기억해두면 된다. 지식은 이렇게 익숙한 이름을 조금 낯설게 만드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이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게 된다면, 그 이름이 너무 유명해져서 당신의 것이 아니게 되는 날을 상상해봐도 좋겠다. 꽤 괜찮은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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