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 나쁜 엄마, 이상한 엄마

by함지연

20대 후반에 자주 만났던 친구는 형제가 다섯인 대가족이었다. 대화를 나누던 중에,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애의 엄마는 가족들의 밥상을 차릴 때 사람 수에 맞게 밥을 새로 짓는다고 했다. 가족 중 누군가 아무리 늦게 들어오더라도 밥 한 그릇 분량의 밥을 해서 상을 차린다고 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해서 전기밥솥에 항상 밥이 있는, 우리 집과는 달랐다. 늦은 밤, 일 인분의 밥을 지어 밥상을 차려주는 모습을 떠올리며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너는 모성애가 없어.

이 말은 내가 전 시부에게 반복적으로 들은 폭언 중 하나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가부장제 신봉자를 뽑는 대회가 있다면 상위권에 입상할 것이 분명할 그는 성차별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는데, 특히 나에게 유난히 그랬다. 나는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나는 나쁜 엄마이다. 그의 가족 안에 있는 여자들이 비교 대상이었다. ‘집’과 ‘밥’밖에 모르는 그의 아내와 그의 며느리들. 가족을 위해 마냥 희생하고 헌신하는 여자들. 가족의 저녁 밥상을 위해 늦은 외출은 절대 하지 않는 여자들. 가족을 두고 먼 곳으로 여행을 가는 건 꿈도 꾸지 않는 여자들. 가족의 평화를 위해 아무리 나쁜 남편이더라도 져주는 여자들. 훗날 사후에는 열녀문을 받아 마땅한 여자들. 그녀들과 비교하면 나는 나쁜 여자, 나쁜 엄마인 것이 분명하다. 그럴 때마다 좀 억울했다. 실은 나도 좋은 엄마라고 인정받고 싶었었나 보다. 비교당할 때마다 내가 했던 노력이나 마음이 헛수고처럼 느껴지고 무력해졌다. 자녀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건

엄마인 내가 부족해서라고 스스로를 탓했다.


몇 년 전에 지인에게서 전해들은 어떤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기억에 오래 남았다. 네 남매의 엄마였던 그녀는, 자녀들이 어릴 때 가진 돈을 전부 사기당하고 더는 살고 싶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다 같이 죽기로 결심하고 며칠을 굶은 채로 몸져누웠다. 자녀들 밥도 챙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벌떡 일어나 중국집에서 우동을 한 그릇 시켰다. 부엌에 앉아 우동 한 그릇을 국물까지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집에는 그녀의 딸도 있었다. 딸이 보는 앞에서 그녀는 우동을 혼자 먹었다. 엄마가 우동 한 그릇을 다 먹는 동안, 딸은 떼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너무나 먹고 싶었다고 한다.

그들은 아무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며 모두 나이들었다. 60 중반을 넘긴 딸에게 그 일이 두고두고 한으로 남았다. 어린 시절 저 혼자 우동을 먹던 엄마에 대한 기억은 잊히지 않고 가슴에 박혀 반복해서 털어놓고 아파한다.


그때 내가 들었던 생각은, 세상에 이런 엄마도 있구나.

그동안 내게 익숙했던'이상적인 엄마'캐릭터와 완전히 다른.

물론 그 이야기를 하는 지인과 나는 함께 분개했었다.


혼자서 우동을 먹어 치운 그녀는 좋은 엄마는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우동 한 그릇을 가족들에게 양보하고 맹물을 들이켜는 희생적인 엄마도 싫다. 나라면 우동 한 그릇을 시켜 먹을 돈으로 봉지라면을 사 와 다 같이 끓여 먹겠다. 누구도 남이 먹는 것을 지켜보며 먹고 싶은 것을 참지 않도록.

지금은 대가족 살림을 하며 가족들에게 끼니마다 갓 지은 밥을 먹인 친구의 엄마가 좋은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반대로 전날 해둔 밥으로 밥상을 차리는 엄마는 나쁜 엄마가 되어버린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세계가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하루에 밥을 몇 번 했을까. 평생 밥상을 몇 번이나 차렸을까. 종일 그 일을 하느라 놓친 것은 무엇일까. 수십년간 7인분의 밥을 차리는 여자의 삶 위에 나를 겹쳐보니 숨이 막힌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먹기 좋게 소분한 먹거리들을 한 박스씩 딸의 집으로 보내는 엄마는 좋은 엄마이고, 자식에게 보내기는커녕, 자신도 시판 김치를 사 먹는 엄마는 나쁜 엄마가 아니다.


우동 한 그릇을 혼자 먹은 그 엄마도 일관되게 계속 나쁜 엄마이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한순간의 일화를 전해들었을뿐, 가정이 해체되지도 않았으며 누구도 죽지 않고 지속된 삶 속에서 여러 모양의 엄마로 존재할 것이다.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삶의 모양이 여러가지이듯 그냥 이런 모양의 엄마가 있고 저런 모양의 엄마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아이를 낳고 엄마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 누군가를 한 가지의 잣대로 좋다, 나쁘다 ,라고 단순하게 단정짓지는 말아야겠다.


나 역시 좋은 엄마일 때도 있고 가끔 나쁜 엄마이기도 한 것 같다. 그리고 조금 이상한 엄마이기도 하겠다. 혼자서도 씩씩하고 혼자 노는 거 좋아하고, 자식은 남이다, 라고 외치는 이상한 엄마.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