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은 사람에게서도, 닮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서도 배웠다
스승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는가.
인품이 훌륭하고 실력이 뛰어나며 삶 자체가 본보기가 되는 사람.
나 역시 그런 사람이 좋은 스승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참여한 요가 수업에서 그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원장님은 연세가 제법 있으셨다. 직접 동작을 보여주시기보다는 말로 설명하고 수련생들의 자세를 교정해 주셨다.
그런데 맨 앞에서 수련하던 한 분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고난도 동작까지 척척 해냈다.
알고 보니 그분도 요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평범한 회원으로 시작해 원장님의 가르침을 받고 지도자가 된 제자라고 했다.
수업 도중 원장님이 어려운 동작 하나를 지시하셨다.
제자 선생님도 처음에는 잘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힘을 풀고, 이쪽 근육을 써봐."
원장님이 몸을 살짝 잡아주시며 설명하셨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되지 않던 동작이 완성되었다.
원장님은 이제 그 동작을 직접 하기는 어려우시다고 했다.
그런데 제자는 해냈다.
그것도 원장님의 도움을 받아서.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잘하는 능력과 남을 잘하게 만드는 능력은 다른 거구나.'
생각해 보면 그렇다.
유명 연예인들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연예인처럼 아름답거나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손길이 닿으면 누군가는 누구보다 아름답게 빛난다.
내가 빛나는 능력과 누군가를 빛나게 하는 능력은 다르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이 둘을 같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문득 오래전 딸에게 들었던 뼈아픈 한마디가 떠올랐다.
몹시 속상한 일이 있어 방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운 적이 있다.
그때 딸이 들어와 두루마리 휴지를 건넸다.
나는 휴지를 뜯어 눈물을 닦았다. 그런데 눈물에 젖은 휴지가 얼굴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붙어버렸다.
딸은 한동안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더니 갑자기 휴대전화를 들었다.
찰칵.
"엄마, 지금 이렇게 울고 있어."
사진을 보여주는데 가관이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에 하얀 휴지 조각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서 가장 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결국 딸과 나는 한바탕 웃었다.
그런데 딸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엄마는 남 위로해 주기 전에 엄마부터 치료받아야 될 것 같아."
이 기집애가 진짜!
그런데 억울하게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평소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듣고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하는 내가, 정작 내 마음 하나 어쩌지 못해 방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으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에 자격지심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또 다른 경험 하나가 떠올랐다.
당시 내 삶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나 자신조차 감당하기 버거웠던 때였다.
그런데 한 사람이 내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저 이야기를 듣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다.
"덕분에 마음이 정말 많이 편해졌어요."
뜻밖이었다.
내 마음은 여전히 지옥 같은데, 누군가의 마음은 내 말 몇 마디로 한결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그때 알았다.
내 삶이 흔들린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구나.
물론 타인을 돕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마음도 돌볼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 사람만이 타인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스승의 기준은 무엇일까.
가령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 앞에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 중독 치료 전문가가 있다. 지식도 풍부하고 생활도 모범적이다.
전문가는 술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설명하고, 중독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려준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정작 중독자는 마음을 열지 못한다.
'당신은 술에 빠져본 적도 없으면서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반대로 오랜 세월 술에 빠져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있다.
가정도, 건강도 잃고 병든 몸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
그를 바라보던 중독자는 문득 자신의 미래를 떠올린다.
'나도 계속 이렇게 살면 저 사람처럼 되겠구나.'
두려움이 밀려온다.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겠다.'
그 두려움이 삶을 바꾸려는 결심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물론 전문적인 치료와 우연한 깨달음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였다.
누군가는 훌륭한 가르침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누군가는 자신의 실패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깨달음을 줄 수도 있다는 것.
닮고 싶은 사람만이 스승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닮고 싶지 않은 사람도 때로는 스승이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지나온 시간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살면서 내게 기쁨과 용기를 준 사람들도 있었지만,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람만 만나지 않았어도.'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오랫동안 후회했고, 가능하다면 그 시간을 통째로 지워버리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 경험을 통해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 돌아보니 조금 다른 것이 보였다.
어떤 사람을 통해서는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어떤 사람을 통해서는 내가 결코 닮고 싶지 않은 모습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받은 상처까지 고마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들도 분명 있었다.
다만 그 경험을 통해 배운 것까지 지워버릴 필요는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훌륭한 본보기가 아닐 수 있다.
딸에게는 휴지 조각을 얼굴에 덕지덕지 붙이고 우는 추한 엄마였을 테니까.
그런 나도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닮고 싶어서 배웠고, 누군가는 닮고 싶지 않아서 배웠다.
누군가는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보여주었고, 누군가는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보여주었다.
그들 모두를 존경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들에게서 배운 것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스승은 꼭 훌륭해야 할까.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그의 몫이다.
그를 보고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내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