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밥 주러 갔다가

by은진

모든 일은 그 녀석들 때문이다. 밥은 받아먹으면서도 끝내 사람 손은 타지 않는 녀석들. 아니,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지 못한 내 탓이 더 크다.

그 녀석들을 만나기 전까지, 대전에서의 날들은 달콤했다. 서른 해 넘게 출근 시간에 맞춰 살다가, 시계를 보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었다.


오로지 우리 두 사람의 하루만 챙기면 되었다. 느지막이 아침을 맞고, 식사를 준비하고,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운동화만 신으면 공원이었고, 슬리퍼를 끌고 나가도 편의점이었다. 조금 더 걸으면 지하철과 버스가 어디로든 데려다주었다. 딱히 식탐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골목마다 숨은 맛집을 하나씩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했다.


물론 밤이면 오토바이 소리가 도로를 갈랐고, 출퇴근 시간이면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소란마저 싫지 않았다. 시골에서 자란 내게 이런 도시의 하루가 맞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편과 나는 그 새로운 울타리가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의 계획도 그 안에서 세우고 싶었다.


그 울타리가 넓어진 건 엄마의 기억이 흐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일주일에도 며칠씩 대전과 논산을 오갔다. 같이 살자는 엄마에게 나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엄마를 돌보는 날이 늘어날수록 나를 붙잡는 곳이 하나 더 생겼다. 엄마가 시내 아파트로 옮긴 뒤 홀로 남겨진 시골집이었다.


주인 없는 마당에서 누굴 기다리는 걸까. 치즈냥이 두 마리가 마당을 어슬렁거렸다. 녀석들이 떠나지 않고 있다는 게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집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엄마가 주던 밥을 챙기기로 했다.



부엌에서 사료 포대를 부스럭 열자, 어느새 문밖에서 울음소리가 났다. 야생에서 자란 고양이의 울음은 가늘고 짧다. 곁은 주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소리다. 그래도 밥때만은 잊지 않은 모양이다. 밥그릇을 들고 나서자 녀석들이 문 앞에서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가까이 오지는 않으면서 꼬리만은 꼿꼿이 세웠다. 반갑다는 건지, 밥이나 빨리 내놓으라는 건지. 그릇을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서자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정신없이 먹는 녀석들 너머로 무너져 가는 집이 그제야 보였다.


집은 숨을 멈춘 듯 고요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온기가 빠진 집은 속에서부터 허물어지고 있었다. 수십 년 비바람쯤은 거뜬히 견딜 줄 알았던 지붕에서 비가 샜다. 서까래 사이 흙이 빗물에 젖어 흘러내리며, 벽에 붉은 줄을 길게 그어 놓았다. 부엌 옆 조그만 방은 낮은 천장이 완전히 주저앉았다. 그 속을 채우고 있던 왕겨와 묵은 먼지가 내가 쓰던 바카라상과 이불을 뒤덮었다.


집 밖도 다르지 않았다. 쓰러진 담장 틈으로 찔레가 집 안까지 쳐들어왔다. 사람이 떠나자, 집은 서둘러 야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 어린 시절과 부모님의 젊은 날이 얽혀 있는 곳. 그대로 돌아설 수 없었다.

처음엔 비 새는 지붕이나 때우고 담장이나 다시 쌓으면 그만인 줄 알았다. 자주 드나들며 이것저것 손을 대다 보니, 판이 점점 커졌다.



그 무렵 남편의 눈빛이 수상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들어와 살면 어떨까?"


지나가는 말처럼 던졌지만, 그건 불씨였다. 바닷가에서 자란 소년이 시골살이를 알 턱이 있나. 그에게 시골집은 그저 낭만으로만 가득했다. 그동안 한 권 한 권 사 모은 바카라을 마음껏 꽂아둘 자기만의 서재. 남편은 벌써 그 서재를 머릿속에 꾸미고 있었다. 평생 찾던 자리를 이제야 찾은 사람 같았다. 마당의 풀 한 포기가 얼마나 질긴지, 그는 아직 몰랐다.


"여기서?"


왕겨를 뒤집어쓴 내 바카라상 앞에서 마음이 쓰렸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릴 적 외딴집에서 느끼던 고립감이 먼저 떠올랐다. 이웃 하나 없는 집. 학교도 늘 혼자 오갔다. 엄마의 병도 어쩌면 그 고립에서 시작됐는지 모른다.

오랜 아파트 생활에 길들여진 내가 이 불편을 감당할 수 있을까. 문만 열면 벌레가 들끓고, 마을과 떨어져 차 없이는 어디도 갈 수 없었다. 무엇보다 대학에 가면서 겨우 빠져나온 시골이었다.


"장모님도 편찮으시니까, 당신이 가까이서 돌봐드리면 마음이 훨씬 편하잖아."


뭐야. 기특하고 배려 넘치는 말인데, 어쩐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았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가까이 살면 엄마를 돌보기 수월할 터였다. 그 사람은 벌써 어느 벽에 바카라장을 세울지 가늠하듯 집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꿍꿍이라기엔 눈빛이 너무 진지했다.


나는 대답 대신 목장갑을 벗었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천천히 빼냈다. 장갑에 묻은 흙을 탁탁 털고, 한 번 더 털었다. 내 손끝에 머문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동백나무 그늘 밑에서 치즈냥이 두 마리도 우리를 빤히 보고 있었다.

"난 싫어."

엄마 앞에서는 끝내 못 한 말이, 남편 앞에서는 쉽게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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