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은 것들

by에티텔
moonscape.jpg이효연, Moonscape, 아사에 돌가루와 유채, 116.7x72.7cm, 2025

보르헤스가 이런 말을 했다. 남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이 이룬 업적을 보면서, 남이 나를 평가할 때는 내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정확한 문장은 아닐 것이다. 오래전에 읽은 거라 기억 속에서 조금씩 모양을 바꾸었을 것이고, 때로는 변형된 문장이 지금의 나에게 더 필요한 말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장면이 떠오를 때가 있다. 인물의 위치, 창문의 크기, 빛이 들어오는 방향까지. 아직 세상에는 없지만 내 안에서는 분명히 존재하는 이미지다. 문제는 그것을 설명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파란색과 상대가 떠올리는 파란색이 같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차이를 마주할 때면 매번 새삼스럽다.


요즘은 AI에게 그림에 대한 의견을 묻는 일이 잦다. 말로는 부족해서 이미지를 만들어 보여주지만, 그래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내게는 당연한 배치가 상대에게는 이유 없는 선택일 수 있고, 내가 중요하게 여긴 작은 차이가 상대에게는 아무 차이도 아닐 수 있다. 그래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조금 왼쪽으로, 지금보다 낮게, 밝아져야 하지만 가벼워져서는 안 된다고. 그러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하지 않은 채 이해받기를 바랐는지 깨닫는다.


AI는 내 머릿속을 볼 수 없다. 너무 당연한 사실인데도 나는 매번 잊는다. 사람과 대화할 때도 그랬을 것이다. 상대의 머릿속에서 내 말이 어떤 장면이 되는지 알 수 없으면서, 설명하지 않은 것까지 알아주기를 바랐고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다. 나는 그의 머릿속을 모르면서 어떻게 그가 내 머릿속을 알아야 한다고 믿었을까.


물론 설명한다고 모두 전달되지는 않는다. 언어는 생각을 옮기는 도구이면서 변형하는 도구이기도 해서, 어떤 것은 말하는 순간 납작해지고 어떤 것은 말하기 전보다 선명해진다. 그래도 전하려면 상대가 상상할 수 있을 만큼의 재료는 건네야 한다. 재료란 많은 정보가 아니라, 무엇이 결과를 결정하는지 아는 일, 내 생각을 이루는 요소를 구분하는 일에 가깝다.


그림도 그렇다. 분명했던 장면은 그리기 시작하면 흐려지고, 인물의 크기를 조금 바꾸면 화면 전체의 균형이 달라진다. 나는 그리는 동안에야 내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알게 될 때가 많다. 생각을 구체화하는 일은 이미 있는 것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일이다.


옷을 떠올려 본다. 천이 있다고 곧바로 옷이 되지는 않는다. 안쪽에서 마네킹이 받쳐줄 때 헝겊은 비로소 어깨와 허리와 소매의 모양을 얻는다. 아무것도 받쳐주지 않는 천은 중력의 방향으로 무너져 내린다.


생각도 그렇다. 머릿속의 생각은 아직 천에 가깝다. 만들어 보거나 설명하거나, 어떤 형태로든 바깥에 드러내는 순간 자기 모양을 얻는다. 처음과 달라질 수도 있지만 달라졌다고 실패는 아니다. 형태를 확인하지도 않고 이미 완성되었다고 믿는 편이 더 큰 착각이다.


나는 여전히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런 바람까지 버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말하지 않은 것을 모른다고 상대를 탓하지는 않으려 한다. 대신 조금 더 잘 설명해 보려 한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나 자신에게도 분명하지 않다면, 그것부터 들여다보려 한다.


생각은 머릿속에 있을 때 가장 완벽하다. 아직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고 아무도 오해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 완벽함 속에서는 아무것도 입을 수 없다. 천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옷이 될지는 천을 가진 사람의 몫이다.


어쩌면 이해받는다는 것은 누군가가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일이 아니라, 내가 내 생각을 들고 그 사람의 세계 앞에 서는 일인지도 모른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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