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나, 내가 벌써 갱년기라니.
엄마는 네 나이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X세대였다.
자본주의의 세례를 가장 오롯이 받고 소비의 맛에 일찍이 눈을 뜬 첫 세대였지.
체제에 반항하던 80년대 학생운동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개인의 욕망에 비로소 눈뜨기 시작했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한 손에 들고, 카페에 앉아 ‘혼커피’니 ‘혼맥주’니 하는 것들을 남들보다 한 박자 빠르게 자셨던 세대란 말이다.
하지만 찬란했던 청춘도 잠시, 결혼이라는 문을 넘어서는 순간 개인의 욕망 따위는 기꺼이 압류당했다.
남편과 자식은 기본이요, 양가 부모님까지 챙기며 눈코 뜰 새 없이 달리는 삶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학교에서 배운 인생의 공식과 실제 삶의 괴리는 어찌나 징글징글하게 크던지.
정신없이 가속페달을 밟으며 달려오다 보니, 어느덧 삶의 ‘하프시그널(Half Signal)이 켜졌다.
100세 인생이라 치면, 중년에 찾아온 이 시기야말로 딱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으로 넘어가는 경기 휴식 시간의 경고음인 셈이다.
요즘 세상은 갱년기가 무슨 국가 훈장이라도 되듯 말하고 다니는 시대 아니냐.
나 역시 내 안의 지랄 맞은 기복을 일시적으로 눈감아달라는 정중한 협박으로 동네방네 갱년기라고 떠들고 다닌다.
남편은 “대체 당신 갱년기는 몇 년째 우려먹는 사골이냐”며 핀잔을 주지만, 흥! 알게 뭐람.
가정을 위해 불꽃처럼 태웠으니 이 정도 생색쯤은 우아하게 내주겠다는데.
갱년기가 도착하면 가장 먼저 수면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새벽 세 시에 눈이 번쩍 뜨이고, 한번 깬 잠은 도무지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낮 동안 까칠한 짜증이 솟구치고, 생리 주기는 제멋대로 춤을 춘다. 여성호르몬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눈치 없이 자리 잡는 똥배를 보면 기가 막히지.
무엇보다 무서운 건 감정의 파동이야.
평소엔 잘 참아오던 서운함이나 화가 마치 디저트 ‘크림브륄레’의 얇은 설탕 코팅막을 티스푼으로 ‘파삭!’ 하고 깨뜨리듯 갑작스럽게 치고 올라온다.
피부 탄력은 떨어지고, 흰머리와 주름이 불어나는 거울 속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대체 뭘 위해 이렇게 살았나' 싶어 불현듯 눈물이 솟기도 한다.
이러니 사춘기 자녀와 맞짱을 떠도 밀리지 않는 전설의 갱년기 아니냐.
하지만 신파나 우울의 늪에 축축하게 빠져드는 건 결코 엄마 스타일이 아니야.
나는 이 갱년기를 "몸과 마음 건강을 재정비하라"는 신의 두 번째 기회, 즉 하프시그널로 받아들이기로 했어.
내가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고 남편과 자식이 언젠가 상장이라도 줄 거라는 생각은 미친 착각이다.
나이 먹어서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며 징징대는 것만큼 서글프고 꼴 보기 싫은 모습도 없잖아.
예민한 내가 여기까지 살아오느라 견디며 얼마나 애썼는지 아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그렇다면 셀프 선물을 안겨주는 게 마땅하지 않겠냐.
거창한 해외여행도 좋고 비밀 아지트로의 도피도 좋다.
이것저것 통장 잔고, 가족들 눈치나 재고 앉아 있다간 ‘우물쭈물하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라는 ‘쇼펜하우어’스러운 묘비명이나 새길 판이라고.
위로는 부모를 모시고 아래로는 자식을 챙겨야 하는 ‘대한민국 공식 낀세대’. 우리에게 나중으로 미뤄둔 여유 같은 건 없다.
틈만 나면 놀아야 한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뻔뻔하게.
남과 시간 약속을 잡느라 스트레스받을 것 같으면 혼자 놀면 돼.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째깍째깍, 귓가에 선명하게 울리는 기분이다.
이러고 앉아 망설일 시간이 없어. 내일은 서대문역 근처,
한 번도 발을 디뎌보지 않은 낯선 골목으로 탐험을 떠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