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뿔났다!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와 추억 이야기

by소임


“자기야, 오늘은 자기가 강아지 산바카라시켜 주면 안 될까?"


어릴 때부터 걷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던 나는 지금도 산바카라을 즐기지 않는데 아시는 분 강아지를 맡아 주는 바람에 요즘 아침마다 강아지와 산바카라을 한다. 나도 강아지를 좋아해 어릴 때도 키워 봤지만 사실 귀여워하기만 했지 실질적으로 귀찮은 일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꼭 실외 배변을 하는 강아지라 꼭 같은 시간에 밖에 나가 줘야 하는데 안 하던 사람의 입장으로서 이게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아침 일찍 강아지와 산바카라을 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할머니는 어떻게 매일 새벽에 일어나 주차장을 청소하셨지?'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작은 빌라 1층이었다. 대략 일곱 가구가 사는 빌라였는데 빌라 앞에 차 넉 대 정도 댈 수 있는 작은 주차장이 딸려 있었다. 그 뒤에는 공용 뒷마당도 있었는데 그곳엔 할머니의 장독대들과 작은 텃밭이 있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텃밭을 가꾸시는 동안 옆에서 흙장난을 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할머니께서 시골로 귀향하시고 나서 이웃 주민분들께 할머니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쿨쿨 꿈나라에 있었을 시간이라 나는 알지 못했지만 할머니는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항상 주차장을 청소하셨다고 한다. 개인 주차장도 아니고 여러 가구가 쓰는 주차장이었지만 할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쓰레기를 줍고 바닥을 쓰셨다. 할머니가 귀향하시고 나자 할머니의 빈자리는 여지없이 드러났고 이웃 주민들은 할머니의 안부를 묻고 할머니께서 얼마나 부지런하고 좋은 분이셨는지를 나에게 종종 이야기해 주셨다.


내 기억에 할머니는 나누는 것을 좋아하셨다. 떡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할머니는 집에서 종종 떡을 해 주셨는데 그럴 때마다 꼭 윗집 아랫집에 가져다주라고 호일에 떡을 싸 주셨다. 그러면 나는 조심조심 떡을 들고 아랫집 친구네, 윗집 아줌마네, 삼층집 삼 형제네 가져다주곤 했다. 인심 좋은 할머니 덕분이었는지 내 기억 속 우리 빌라 주민들은 언제나 따뜻하고 정겨웠다.


나는 특히 아랫집에 살던 하연이와 친했다. 나이도 두 살 터울밖에 나지 않고 같은 유치원을 다녀서 더욱더 친해졌고 하연이는 종종 우리 집에 놀러 왔다. 하연이는 지금도 내가 한국에 나갈 때마다 꼭 보고 오는 내 인생의 귀한 친구가 되었다. 할머니는 하연이가 놀러 오면 미숫가루를 타 주시곤 했는데 지금도 가끔씩 하연이는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묻기도 하신다.


하연이 말고도 윗집 삼 형제 오빠네와도 가끔 놀기도 했었는데,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탓에 첫째 오빠는 기억이 안 나고 둘째, 셋째 오빠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가끔 동네 아이들끼리 장난감 총놀이를 할 때 나를 끼워 주곤 했는데, 잘 뛰지도 못하는 나 때문에 자꾸 들키자 오빠가 뒷마당 장독대 근처에 나를 숨겨 두고 놀러 나가 한참을 기다린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오빠들이 나를 귀여워해 줬다고 웃으며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렇게 나누길 좋아하고 인자한 할머니께서 화가 나 쿵쾅쿵쾅 3층에 올라가신 이야기는 언제나 내 배꼽을 잡게 한다.


나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일이지만 이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마다 할머니는 마치 지금 당장 일어난 일인 양 양팔을 휘휘 저으며 흥분하시곤 했다. 때는 바야흐로 내가 약 세 살 정도 되었던 때라고 했다. 할머니는 삼층 막내 오빠하고 놀고 있는 나를 확인하러 밖에 나와 계셨는데 글쎄 저 멀리 내 손 아래 무언가가 달랑달랑 쥐어져 있었다고 했다.


"글쎄 우리 애기가 그 집 머스마랑 저쪽에서 걸어오는데, 우리 애기 손에 글쎄 죽은 쥐가 있는 거야. 우리 애기가 그 고사리 같은 애기 손으로 꼬리를 겨우 잡고 덜렁덜렁 들고 오는데! 어후~~~~~~"

할머니는 마치 지금 눈앞에 죽은 쥐꼬리를 들고 걸어오는 손녀가 보이는 듯이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고 손을 휘휘 저었다. 몇 번을 들은 내용이지만 할머니의 반응이 귀엽고 재미있어 나는 거기에 맞춰 심각한 듯 맞장구쳤다.


"아니 내가 왜 들고 왔대, 죽은 쥐를?"


"몰러~ 그래서 내가 아니 왜 죽은 쥐를 들고 오냐고 물었지. 그러니까, 그 삼층 머스마가 자기가 갖고 오고 싶은데 징그러우니까 울 애기한테 들고 오라고 시킨 거여. 니가 순하니께 그냥 쫄래쫄래 따라가서 들고 오란 대로 그렇게 집에 들고 온 거여."


나는 웃음을 참으며 심각하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뭘 어떻게! 당장 우리 애기 씻기고 삼층까지 막 뛰어 올라가서 내가 따졌지! 왜 그쪽 애가 우리 애기한테 그런 거 들고 다니게 시키냐고!"


할머니는 비장한 표정으로 위층에 쿵쾅쿵쾅 올라가 삿대질하는 시늉을 하셨다. 나는 사실 아직도 할머니가 위층에 올라가 따지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된다. 나는 태어나서 할머니가 화내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할머니가 어떤 표정과 말투로 윗집 아주머니랑 대화를 했을지가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짐작건대 할머니가 표현하신 것처럼 그렇게 화내시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러니께, 윗집 엄마가 미안허다고. 다시는 그런 일 없게 아들 잘 타이르겠다고 하더라고."


할머니는 화가 가라앉은 표정으로 나를 보며 씩 웃어 보이셨다.

할머니 말씀으론 그때 그 오빠도 고작 다섯 살 정도 되었을 거라고 했다. 주변에 평판이 좋고 인자하기로 소문난 우리 할머니가 고작 다섯 살 아이의 행동 때문에 위층에 쿵쾅쿵쾅 올라가서 따졌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한참을 웃었다.


내 기억 속에 삼층 오빠네와의 왕래가 종종 있었던 것을 보면 그 후에도 삼층 오빠네와 잘 지냈던 것 같다. 그로부터 한참 후 삼층 오빠네가 이사를 가게 될 때 오빠들이 우리 집에 들러 그동안 모아 놓은 장난감 총과 칼을 선물하고 갔다. 나는 장난감 총을 좋아한 적이 없어서 어리둥절했지만 워낙 많은 양의 총과 칼들을 선물 받아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둘째 아니면 셋째 오빠가 뒷마당으로 불러 자기네가 심어 놓은 옥수수를 보여 준 기억이 있다. 비록 옥수수가 난 적은 없지만 곧 날 수 있으니 특별히 내가 키워도 된다며.

가끔씩 할머니가 이 이야기를 해 주실 때면 난 할머니의 대답을 알면서 또 물어보곤 한다.


"할머니는 그때 왜 그렇게 화가 났었어?"


"화나지! 만지기도 아까운 우리 애기를 죽은 쥐를 만지게 하고 그러니까 화가 안 나!"



산바카라 중 강아지 똥을 줍고 강아지를 밑을 닦아 주며 할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만지기도 아까운 우리 애기'


내가 할머니가 해 주시는 내 어릴 적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 내가 이렇게 귀한 존재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슬롯생활을 하며 지치고, 때론 기죽고, 스스로 아프게 채찍질하며 지낼 때 나는 할머니를 생각했다. 누구보다 나를 귀하게 여기셨던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나에게 모질게 하지 말아야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나에게 그러면 안 된다. 날 본인보다 더 귀하게 여겨 주신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나는 나에게 다정해야 한다.


할머니는 아셨을까. 할머니의 말들이 나에게 다시 돌아와 나를 돌봐 주는 치유제가 되었다는 것을. 할머니는 언제나 해 준 것이 없다고 내가 스스로 잘 컸다고 하시지만 나는 알고 있다.

촉촉하고 비옥한 땅에서 새싹이 편안히 싹을 틔우듯, 내가 자라날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할머니의 촉촉하고 비옥한 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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