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가평 호명산 잣나무숲속 캠핑장
주차장에서 캠핑장까지 올라가는 길은 예상보다 짧았다. 그보다 얼어붙은 길바닥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중심을 잡는 것이 힘들었다. 한낮에도 응달인 길은 눈이 녹지 않아 빙판길이 되었기 때문이다. 동계에는 필요하든 그렇지 않든 아이젠과 트레킹 폴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2026년 1월 1일 목요일, 신정인 날에 두 번째 백패킹에 나섰다. 금요일 연차를 내서 내리 나흘을 쉴 수 있는 연휴의 시작이다. 새해 첫날이라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날짜를 정하진 않았다. 다녀오고 주말에 편히 쉬자는 가벼운 생각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파가 닥쳤다. 주초에 고만고만하던 날씨는 수요일부터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목요일과 금요일에 절정으로 한파가 몰아쳤다. 첫 백패킹에서는 눈이, 이번에는 한파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인은 미리 계획한 날짜에만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주저 없이 길을 나섰다.
호명산 잣나무숲속 캠핑장은 경기도 가평에 있다. 경춘선 상천역 근처 상천루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20분을 올라가면 캠핑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야영장까지는 차로 올라갈 수 없어서 첫 캠핑을 했었던 함허동천 야영장 보다 더욱 백패커 친화적인 캠핑장이다. 화장실과 샤워실, 매점과 같은 편의시설이 있어 노지는 부담스럽지만 백패킹 감성은 느껴보고 싶은 백패커가 많이 찾는 곳이다. 바로 나처럼.
체크인 시간인 2시에 맞춰 도착하고 싶었지만 운전하다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난리법석을 떨어서 상천루에는 3시에 도착했다. 겨울에는 일몰이 빠르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졌고 서둘러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꽁꽁 얼어붙은 길 중에 그나마 덜 얼었던 바깥쪽 길을 천천히 조심스레 걸었다. 그래도 거리는 멀지 않아서 금세 캠핑장에 도착했다.
텐트를 피칭하고 팩을 고정하기 위해 오징어팩(스프링 데크팩, 텐트를 지지할 때 쓰는 팩)을 꺼내 들었는데 데크 사이 간격이 좁아서 팩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런 일은 계획에 없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에 땀을 삐질거리며 데크를 서성였다. 관리실에 물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캠핑장 초입으로 향했다가 옆에 있던 매점으로 들어갔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는 없는 것이다. 물과 맥주, 주전부리를 집어 들고 셀프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다가 별안간 시야에 나사팩(스크루 팩, 마찬가지로 텐트를 지지할 때 쓰는 팩)이 들어왔다. 나사팩은 데크 간격이 좁을 때 쓰는 팩으로 끝 부분에 나사산이 있는 팩인데 친절하게도 개당 3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나사팩을 처음 접한 캠린이는 시작부터 진땀을 빼야 했다.
아직 텐트 피칭에는 꽤 시간이 걸린다. 모든 과정이 몸에 익지 않아서다. 그래도 비가 오던 지난번보다는 조금 빨리 피칭을 마치고 매점에서 빌려온 화로대에 장작을 넣고 불을 붙였다. 조금씩 해가 지고 있었다. 이미 영하 10도의 날씨였지만 캠핑장의 나무가 바람을 막아주어 체감온도는 그것보다는 따뜻했다. 눈비가 오던 지난번과 비교하면 훨씬 쾌적한 날씨라고 느꼈다.
오징어땅콩을 씹으며 버너와 팬을 세팅하고 삼겹살을 구웠다. 나중에는 노지에도 가보겠지만 아직은 캠핑장에서 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캠핑장이니 만큼 화기를 써보고 싶었고 저녁식사는 당연히 삼겹살. 고기는 노릇노릇 잘 익었고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소주가 달았다. 삼겹살을 다 먹고 아직 기름이 남아있는 팬에 라면을 끓였다. 이 라면을 먹을 때 맛있음을 표현하는 온갖 줄임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집 밖에서 삼겹살과 라면이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인정사정없이 사방에 튄 삼겹살 기름만이 엄청난 저녁식사의 흔적을 보여주었다.
가지고 온 음식과 소주를 모두 비우고 나서도 한참 장작을 태웠다. 마지막 불씨가 사라질 때까지 불 가까이에 앉았다. 주위는 추웠지만 불에 가까운 얼굴과 손은 따뜻해서 몸이 기분 좋게 나른해졌다. 캠핑에서 화로대를 챙겨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식기를 간단히 씻고 매점에서 맥주와 과자를 사서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맥주는 지역 에일맥주인 가평맥주인데 생각보다 맛이 마음에 들었다. 이미 참이슬 힙플라스크 두병을 비운 상태이기 때문에 조금 알딸딸해졌다. 얼마 전부터 재밌게 읽고 있던 《눈물을 마시는 새》 3권을 리디 페이퍼에 다운로드해 왔지만 바카라은 펼치지도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술판이었으니 어쩔 수가 없다.
겨울 숲 속은 오후 6시에 이미 새벽처럼 깜깜했고 나는 9시에 잠이 들었다. 이번에는 그나마 조금 수월하게 잠을 잤다. 아침에 텐트 안은 약간의 결로가 생겨 얼었고 침낭은 역시나 축축했다. 동계에 텐트 실내의 습기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밤새 침낭 안에서 발이 조금 시렸지만 가지고 온 부티(방한 슈즈)는 귀찮아서 신지 않았다. 딱 그 정도의 시림이었다.
이 캠핑장은 밤에는 고라니가 울고 아침에는 까마귀가 운다. 산뜻한 소리는 아니다. 어제 꽤 많이 먹었던 것 같은데 배에서는 벌써 꼬르륵 소리가 났다. 평소 아침식사는 거르는 편이지만 일어나자마자 떡만둣국을 준비했다. 추운 날씨에 차가워진 이소가스는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해서 물이 끓지 않았다. 급한 대로 패딩 안에 이소가스를 조금 품었다가 불을 붙인 후에야 떡국이 끓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았던 양의 떡국은 어렵지 않게 먹어 치웠다.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는 한참이었겠지만 내 기준에는 꽤 빠른 속도로 텐트를 철수하고 캠핑장에서 내려왔다. 상대성 이론같이.
지난 첫 캠핑은 눈비가 와서 정신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작게나마 캠핑의 재미를 알게 된 것 같다. 삼겹살에 소주인데 재미가 없으면 반칙일 테지. 잣나무숲이지만 잣나무는 크게 구경하지 못했다. 캠핑장에 도착해서 텐트를 피칭하고 바로 저녁식사를 준비했어서 조금 여유가 생겼을 때는 이미 깜깜한 밤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조금 더 여유 있는 캠핑이 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