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는 멀어졌을까

관계는 큰 사건 없이도 조금씩 멀어진다

by오로보이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언제 한번 보자.”

반가운 마음에 답장을 보낸다.

“그러게. 진짜 오랜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약속은 잡히지 않는다.

서로 바쁘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화가 끝난다.


예전에는 별일 없어도 만났던 사이였다.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밥을 먹고, 특별한 일이 없어도 연락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연락할 이유가 있어야 연락하게 되었다.

생일이거나, 경조사가 있거나, 무언가 부탁할 일이 있을 때.


그렇다고 서로에게 서운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크게 싸운 적도 없고, 누군가 잘못한 것도 아니다.

그저 조금씩 연락이 줄었고, 만나는 횟수가 줄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멀어졌을까.


관계는 꼭 싸워야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관계가 멀어지면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서운하게 했는지.

언제부터 사이가 달라졌는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한 사건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그저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나는 관계를 돌아보면서 조금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관계는 무언가 잘못해서 멀어지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멀어지기도 한다.


처음 누군가와 친해질 때를 생각해보자.

서로 궁금한 것이 많았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주말에는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작은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그런데 친해지고 나면 조금 달라진다.

이제는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어떤 성격인지 알고, 어떤 이야기를 할지도 대충 예상한다.

그래서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가까워졌기 때문에 궁금해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계속 변한다.

예전에 좋아했던 것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새로운 고민이 생겼을 수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과 지금의 그 사람은 조금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예전에 알던 모습으로 지금의 사람을 대한다.


익숙함은 편안함이지만, 무관심이 되기도 한다

오래된 관계에는 특별한 편안함이 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듣고,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다.


그런 편안함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익숙함에는 조금 다른 모습도 있다.

상대가 늘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친구는 내가 연락 안 해도 이해할 거야.'

'우리는 오래 만났으니까 괜찮아.'

'나중에 시간 나면 보면 되지.'


물론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오랜 친구라고 매일 연락할 필요는 없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연락의 횟수가 아니다.


서로를 향한 관심이 여전히 남아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도 서로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이가 있고, 매일 만나면서도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사이가 있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고 반드시 가까운 것은 아니다.

반대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다고 반드시 멀어진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 속에서 서로에게 얼마나 마음을 쓰고 있는가이다.


오래된 관계에도 새로운 관심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새로운 사람에게는 참 많은 질문을 한다.

“요즘 뭐가 제일 재미있어요?”

“쉬는 날에는 뭐 하세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있어요?”


그런데 오래된 친구나 연인에게는 이런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 전의 그 사람과 지금의 그 사람은 같지 않다.


새로운 일을 시작했을 수도 있고, 예전에는 없던 고민이 생겼을 수도 있다.

좋아하는 것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꽤 많은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관계일수록 가끔은 처음 만난 사람처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보다, 아직 모르는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요즘은 뭐가 제일 좋아?”

“그때 고민하던 일은 어떻게 됐어?”

“요즘 너는 어떤 생각을 많이 해?”

거창한 질문일 필요는 없다.


그저 상대의 오늘이 궁금하다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관심은 처음 친해질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친해진 다음에도 계속 필요한 마음이다.


관계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좋은 관계라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관계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편안하게 이어진다.


하지만 그 편안함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관계는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온 시간이지만, 동시에 앞으로도 함께 만들어가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관계를 붙잡고 애쓸 필요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관계도 있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편안한 관계도 있다.

다만 여전히 소중한 사람인데 단지 익숙하다는 이유로 관심을 놓고 있었다면 조금 아쉽지 않을까.


가끔은 별다른 이유 없이 연락해도 좋겠다.

“그냥 네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만나서 예전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봐도 좋겠다.


어쩌면 우리가 다시 가까워지는 데 필요한 것은 특별한 사건이 아닐지도 모른다.

서로를 이미 다 안다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는 것.

그리고 다시 궁금해하는 것.

그러니 요즘 조금 멀어진 것 같은 사람이 떠오른다면 한번 생각해봐도 좋겠다.


우리는 정말 서로 달라져서 멀어진 걸까.

아니면,

서로를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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