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 4일 차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
뭐 하나에 미치는 거, 좋아 보이네
새벽. 골목에 나섰는데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새벽의 도시에서 기대되는, 숨소리 하나도 조심스러운 고요함이 아니었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취객들의 노랫소리와 웃음소리, 볼륨 조절기가 고장 난 대화소리였다. 어제저녁에 축구 경기가 있었다더니 밤새 잔치가 벌어졌나 보았다. 먼 길을 나서는 우리들과 밤새 퍼마신 축구팬들이 길에서 엇갈렸다. 아내는 '뭐 하나에 미치는 거, 좋아 보이네' 했다. 밤새 술을 마실 체력, 밤새 떠들 열정. 즐기시게나. 우리는 그런 날들을 과거로 흘려보냈다네. 우리에게 남은 힘은 걷는 것 밖에는 없다네. 축구팬들처럼 도시도 퍼마신 건지, 밤새 비가 내려서 거리가 젖어 있었다. 이제는 습관처럼, 배낭커버를 하고 출발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잘 알려진 포토존 중 하나가 오늘 코스 중간쯤(출발 후 13km)에 있는 '용서의 언덕'이다. 중세 때부터 병들고 지친 순례자를 위한 구호소가 이 언덕에 있었다고 하며,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산티아고까지 완주한 것처럼 충분히 용서(은총) 받을 자격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중세 때에는 순례 도중에 병들어 죽거나 강도에게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목적지인 산티아고까지 못가고 마는 것인데.. 그렇게 끝이 나더라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신께서 너를 기억하실 것이다, 하는 위로를 미리 해주는 의미였다고 한다. 철제 조형물이 생긴 것은 비교적 최근으로, 1996년 조각가 비센테 갈베테(Vicente Galbete)가 세웠다. 지팡이를 든 다양한 순례자의 모습과 말, 개 같은 동반 짐승들을 형상화했다. 말 옆구리에 “바람의 길과 별의 길이 만나는 곳.(Donde se cruza el camino del viento con el de las estrellas.)”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관악산에서 과천 쪽으로 내려가는 하산길. 정말 대단한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뒷걸음질로 내려가는 데 그 속도가 우리보다 훨씬 빨랐다. 몇 걸음이라도 평지가 나오면 앞으로 걷다가, 계단이 나오면 바로 뒤로 돌아 난간을 붙잡고 내려가시는데.. 그 전환 속도와 뒷걸음질 속도라니! 어찌나 빠르고 자연스러웠던지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
용서의 언덕을 내려오는 길은 긴 내리막이었다. 내려오면서 느낀 건 내리막이 가르는 우열이었다. 우리는 최대한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서 길의 폭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갈지자로 걸었고, 낙차 큰 계단은 옆으로 게걸음을 하며 내려왔다. 사실 그렇게 경사가 진 내리막은 아니었고(1일 차인 피레네 산맥을 내려오는 길은 상당히 가팔랐다) 다만 뾰족한 돌들이 가득해서 미끄러지기 쉬웠다. 다시 당시 찍었던 영상을 보니, 젊은 사람들은 속도를 내며 쉽게 내려갔고, 무릎이 약한 중년 이상은 꽤 힘들어하면서, 자주 쉬면서 내려갔다.
(지하철 역에서 편도만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한 곳의 경우, 나는 그 방향을 죄다 내려가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내려가는 것보다 훨씬 쉬운데, 그저 위치에너지만 생각하고 올라가는 방향만 운영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노인들도 사실은 내려가는 계단이 훨씬 고통스러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뛰어가고 노인들은 기어가는 게 내리막
용서의 언덕을 내려와서 마을로 들어서서 만난 신발 화분. 노란색 화살표와 함께 Sé feliz y haz felices a los demás라고 씌인 안내판이 있었다. '스스로 행복하여라! 그리고 다른 이에게도 행복을 나누어라!'라는 뜻으로 번역된다. 너의 발걸음에서 꽃이 피기를, 행복이 피어나기를... 집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전해졌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곧 행복해졌는데, 쉬고 먹을 곳에 다다랐기 때문이었다.
용서의 언덕을 내려오면, '용서의 길 Camino del Perdón' bar를 만난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순례길의 메뉴. 하지만 따뜻하게 나온 또르띠야(Tortilla 삶은 감자를 넣은 두툼한 달걀 오믈렛)와 시원하게 갈증을 풀어주는 맥주 앞에서 용서받는 기분을 느끼지 않기는 어려웠다. 그래. 용서나 위로, 화해에 빠지지 않는 것이 음식 아닐까? 아무 말이 없어도, 명시적인 용서의 표현이 없어도, 누군가 그대에게 빵 한 조각, 포도주 한 잔을 내민다면 그것은 이미 용서했다는 뜻 아닐까? 산티아고까지는 697km 남은 지점. 약 100km 정도를 걸어온 지점의 미식바에서, 우리는 용서받고 있었다.
분명 에우나테 성당을 들르는 우회로는 3km 정도 추가라고 표시돼 있었다. 길어야 한 시간 안쪽. 하지만 남들이 안 가는 길을 갔던 외로움이었을까?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 너무 힘들었다. 이 성당을 보지 않고 다음 마을인 '푸엔테 라 레이나'로 곧장 가면 총 24km를 걷는 날. 평균적인 구간이었고, 조금 더 걷는 게 대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당을 들렀다가 예약을 해둔 알베르게로 가는 길은 길고, 무료하고, 힘들었다. 갈림길에서 에우나테 성당으로 가는 길로 꺾어진 건 우리 부부와 호주인 한 명. 그렇게 딱 세 명이었다. 그나마 초반의 짧은 대화를 빼고는 헤어져 걸었기 때문에, 그늘 없고 메마른 흙길을 부부가 외로이 걸었다. 그러다 보니 버려진 것 같은 느낌도 컸던 것 같다. 나는 짜증을 냈는데, 아내는 예쁜 성당을 본 것에 만족했고, 그다지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같은 길을 걸었으나, 다른 길을 걸었다.
같은 길을 걸었으나, 다른 길을 걸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고추장이 있는 식탁이 행복이다. 면을 너무 좋아하는 나로서는, '면이 있는 한 끼가 행복이다'.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같이 맛있어하는 것을 부족하지 않은 양만큼 만들어 나누는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오늘 걸어야 할 것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일. 그렇다고 내일 걸어야 할 걱정을 오늘에 들이지 않는 일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먹고 마셔라. 너는 하루치의 길을 다 걸었나니.
이날 저녁엔 팜플로나에서 만난 분들이 쾌척하신 팔도 비빔장을 풀었다. 면은 파스타 면이 아니라 쌀국수 쪽이었던 것 같다. 계란을 삶았고, 김치를 대신해서 피클을 올렸다. 구색이 행복이다. 행복을 위해 구색을 갖춘다. 없는 살림에도 있어야 할 것은 흉내라도 내서 그 자리를 채운다.
그렇게 또 밤낮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여왕의 다리'라는 뜻의 푸엔테 라 레이나. 낮은 것들이 서로 조화롭고, 높은 것들이 한두 개 솟아 있는 해질녘의 풍경. 그 아래서 우리는 내일을 굳이 걱정하지 않고, 오늘을 과장되게 축하하지 않으면서, 담담하고도 충만한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2025년 4월 27일
팜플로나 - 푸엔테 라 레이나
Pamplona - Fuente la Reina
구간 거리 27km 이상
생장에서의 누적거리 89.9km (지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