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다른 일에 호기심이 많은 내가 보내는 변명의 편지
벌써 몇 번이나 너는 내게 주말에 함께 산이나 가자고 연락을 해 왔지. 연휴가 이어지는 때면 지리산 같은 조금 거리품을 팔아야 하는 먼 곳의 산에 가자고, 혹은 그냥 보통의 주말이면 인근의 산이라도 타러 가자고. 너의 무덤덤하지만 꽤 진지한 제안을 나는 경우 없게도 몇 차례나 그다지 급하지 않은 회사일 핑계도 대보고, 별안간 집안의 대소사가 생겼다는 연유로 미뤄도 보았지. 그러나 내가 정말로 너와 함께 아직은 산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다른 데 있있어.
예전에도 너는 모처럼 주어지는 여가 시간에 몰입할 만한 소일거리를 딱히 찾지 못해 고민을 하곤 했었지. 그런데 너와 가장 친하게 지내던 Y가 온라인 게임 때문에 지방으로 떠나고, 또 너와 취미와 성격이 잘맞는 B도 우리가 사는 도시를 벗어난 곳에 온라인 게임을 잡고 삶의 기반을 닦으면서 너에게는 혼자 주어진 시간이 더욱 많아진 거 같아. 아이들도 어느덧 장마 지난 뒤 들풀처럼 쑥쑥 자라나 자기 앞가림은 어느 정도 할수 있게 되고 나니 너의 배려와 간섭의 손길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더욱 여유로와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네게 갑작스레 닥친 어떤 이별 때문이겠지. 내 결혼식에서 네가 보여준 그 무료하고 세상 다 산 듯한 무표정은 어쩌면 일상적인 네 표정보다 더 심각했던 것이었음을 미처 짐작하지도 못했던 나의 무심함을 부디 용서해 주라.
나는 방랑자이며 등산가이다. 나는 평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기가 어렵다.앞으로 어떤 일이 나의 운명과 체험 속에 내게 닥쳐오더라도 그 속에는 방랑과 등산이 있을 것이다. 결국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체험하는데 불과하다. 내게 우연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던 때는 이미 지나갔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그래서 너는 네게 주어진 여유로운 시간을 주로 산을 오르는 데 소진하며 건강도 챙기고 무료함도 달래는 것일 터이지. 조금은 힘에 벅찬 걸음으로 산 정상에 오른 뒤 송골송골 맺힌 이마의 땀방울을 정상의 시원한 바람과 탁트인 풍광으로 씻어 내는 맛을 나도 모르지는 않아. 발바닥으로 느끼는 땅의 푹신한 기운과 단단한 바위가 뿜어내는 견고한 반발력에 몸이 튕겨나가는 듯한 느낌도,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가 주는 청량한 리듬감과 코 끝을 자극하는 나무와 풀의 풋풋한 싱그러움도 빼놓을 수 없지. 산을 내려와서는, 오를 때보다 더 딴딴해진 장딴지와 좀 더 길어진 호흡에 뿌듯해하며 시원하게 들이켜는 술 한잔의 짜릿함과 고소한 파전 냄새의 유혹도 쉽게 떨쳐 버릴 수 없음을 나도 모르지 않아.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은 산에 오르기보다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 일주일 중에 5일은 밥벌이를 위해 내 시간과 노동력,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누군가에 넘겨야 하는 나로서는, 내게 온전히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은 하루 중에도, 일주일 중에도 그리 많지가 않아. 하루 일과가 끝난 뒤 저녁시간에는 아무리 집중을 해보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피로가 쌓인 날이 많아. 결국 일주일 중에 온전히 내가 나만의 여유와 몰입을 위해 내 몫으로 남겨둘 수 있는 시간은 주말 이틀밖에 없는 것 같아.
사람들이 산을 좋아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연에 대한 관심과 삶에 대한 관조적 태도는 어쩐지 서로 연관이 있는 것 같아. 인간은 점점 나이가 들고, 성숙해질수록 삶에 대해 관조적인 입장을 견지하게 되는 것 같아. 그런데 어쩌면 그런 '한 걸음 뒤의 자세'가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미 중년을 넘긴 너와 내 연배의 사람들에게 슬롯가 이제 기대하는 자세가 어쩌면 그런 '한 걸음 뒤에 서 있는 입장'일 수도 있고, 폭풍 같은 젊은 시절의 혈기와 열정, 패기와 용기는 이미 다 증발해 버리고 요령과 방관의 기법을 몸에 익힌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 그래서 일상의 활기와 삶의 파고에 직접 몸을 맡기기보다는 주변의 삶을 관찰하고, 평가하고, 분석하는 '객관적' 태도에 더 익숙한 것은 아닌지. 마치 거리의 소란이나 혼란을 팔짱 끼고 지켜보거나 시선조차 주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태도가 노련한 중년의 자세인 거라고 자위하면서 말이야.
또 인간은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감성과 감각이 무뎌지면서 호기심과 흥미를 잃어버리기 쉽다고 해. 그래서 나이가 들면 좋아하는 것도 그닥 없어지고, 그러다 보니 짜릿한 자극과 쾌감을 맛볼 수 있는 몰입의 기회도 점차 줄어들게 된다고. 그래서 좋은 바카라을 읽어도, 좋은 공연이나 노래를 들어도, 좋은 그림을 보고 좋은 영화를 봐도 별반 흥미를 느끼지못하고 무덤덤해진다고. 그래서 가족들 없는 빈 거실 소파에 혼자 앉아 자꾸 '동물의 왕국'이나 '지구 위의 하루' 같은 BBC 다큐나 내셔널지오그래픽 방송을 넋을 놓고 보고 있게 된다고. 노화의 징조 중에 하나가 그래서 어쩌면 호기심의 상실일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말이야. 다행히도 아직 나에겐 내게 주어진 얼마 안 되는 소중한 여가 시간에 비록 돈이 되진 않아도 흥미를 느끼며 몰입할 수 소일거리들이 많은 것 같아. 여전히 세상의 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의 참신한 생각은 나를 자극하고,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영화와 바카라들 중에도 너무 흥미롭고 감동적인 작품들이 넘쳐나. 세상엔 우리의 청각을 자극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하고, 또 세상에는 우리의 눈과 감각을 자극하는 아름답고 놀라운 예술 작품들이 많이 있어. 그래서 다행히도 나는, 아직은 산에 가기보다는 주말이면 이런 것들을 느껴보고, 즐겨보고 또 그에 대한 내 느낌을 글로도 표현해보고, 생각과 감상을 나누고, 좋은 문장과 말, 번득이는 사유와 새겨볼 만한 구절을 소리 내어 읽고 낭독해보는 일이 너무나 즐거워.
그래서 말이야. 몇 번씩이나 내게 산에 가자고 너가 연락을 했음에도 가타부타 확실한 답변도 없이 너의 제안을 뭉게버려 혹시라도 맘이 상했을지도 모르는 친구야, 아직은 산에 오르는 일보다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고, 등산보다는 다른 자극과 몰입의 소재들에 넋이나간 나를 이해해주기 바라.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우린 언젠가 함께 산에 오르고, 이마의 땀을 씻어내고, 술잔을 기울이며 마음 깊은 곳에 담아 둔 각자의 아픔을 오랜만에 꺼내 서로에게 보여주며 이야기할 날도 올 거야. 그때까지 조금만 각자의 길과 각자의 시간을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