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 알게 되는 것들

한국을 떠난 지 십 년이 되었다

by영라

내년 4월이면 한국을 떠나온 지도 어느덧 십 년이 된다.


십 년 전 어느 날, 남편이 '회사에서 싱가포르에 갈 기회가 생겼는데 가볼까?'라고 묻던 순간을 아직도 가끔 떠올리곤 한다. 그때 한국에 남기로 했다면 지금쯤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러니까 그 해는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복귀해 일 년쯤이 지났을 때였다. 경력은 십 년을 채워가고 있었고, 몇 번의 이직 끝에 나와 가장 잘 맞는 회사에 안착해 갓 '바카라임'으로 승진했고, 조금만 더 버티면 조온라인 게임이 될 기회가 엿보이던 그런 시기. 몇 달 뒤면 아이는 두 돌이 될 터였고, 조카를 돌보다 목디스크가 와 고생했던 엄마에게 아침마다 아이를 맡기는 게 점점 미안해지던 시기. 결혼 오 년 차, 맞벌이를 하며 대출금을 갚고 이제 막 저축을 해보려던 그런 시기.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그대로 한국에 있었더라면 엄마는 조금 더 빨리 늙어갔을 것이고 나는 커리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조금 더 안정된 길을 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해외 생활을 선택했다. 이십 대에 어학연수나 유학을 못해 본 아쉬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과 약간의 모험심,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나를 증명해보고 싶은 호승심, 어딜 가더라도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고양감 같은 것들이 뒤섞인 결정이었다. 결론적으로는 나는 어디서나 잘 적응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그 당시에 기대했던 방향으로는 나를 증명하지 못했으며, 이십 대에 어학연수나 유학을 했더라면 도달했을만한 영어실력에 도달한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싱가포르에 살고 있고, 그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어려움을 겪고, 도전을 했으며, 지금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곳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떠나온 첫 해에는, 처음으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나 홀로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했다. 그제야 내가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했다는 게 실감 났다. 두 돌이 갓 지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부터는, 영어로 이력서를 써서 싱가포르의 거의 모든 IT 회사에 지원했다.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와 인터뷰를 했지만, 매번 고역이었다. 한국어로 말하는 나는 능숙하고 체계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영어로 말하는 나는 미숙하고 중언부언하고 의기소침한 사람이 되었다. 수십 번의 인터뷰 끝에, 한 스타트업에 최종 합격했지만 삼일 만에 도망쳐 나왔다. 미팅에서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못 알아들었고, 내가 내 일을 찾아서 해야 하는 환경이 자유롭기보다는 아무렇게나 방치된 기분을 들게 했다. 이후 몇 달을 더 준비해 제법 큰 컨설팅 회사에 합격했지만, 거기선 세 달을 버티다 뛰쳐나왔다. 영어는 아주 조금 나아졌지만, 매번 어버버버하는 나를 매니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한 팀원의 평가 때문에 수습이 연장됐다. 자존심이 상했고, 의욕도 꺾였고, 외국인들 사이에서 리더십을 갖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그 삼일, 삼 개월은 이 나라에서 내 경력만큼의 영어를 못한다는 건 그냥 무능한 거라는 걸 받아들이는 데 쓴 시간이었다. 다시 마음을 비우고 한 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반년을 일한 뒤, 꽤 큰 회사에 풀타임으로 취업해 오 년 반을 일했다. 남편 혼자 벌 때는 버는 만큼 다 빠져나가던 돈을 그 오 년 반 동안 처음으로 모을 수 있었다.


그 사이 아이는 아이답게, 아무것도 모르고 무럭무럭 자랐다. 두 돌도 되기 전에 온 아이가 초등학교 오 학년이 되는 동안, 아이는 현지 아이들과도 한국 아이들과도 잘 지냈다. 국제학교를 보냈다가, 한국학교를 보냈다가, 로컬학교로 옮기는 동안에도 아이는 금세 학교에 적응해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


남편은 가끔씩, 아니 꽤 자주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한국 지사에는 돌아갈 자리가 없었다. 아이가 이곳에서 사는 걸 너무 좋아하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십 년이 흘렀다.


사시사철 푸르른 여름 날씨, 친절한 사람들, 하늘 끝까지 솟은 나무들, 다양한 나라의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경험. 그런 것들은 분명 이곳의 장점이고, 아이를 생각하면 더 머물고 싶게 만드는 점이지만, 싱가포르가 특별히 더 좋다거나 한국이 싫은 건 분명 아니다.


나는 여전히, 아니 꽤 자주, 차갑고 시원한 공기, 계절의 변화,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싸고 맛있는 한식집, 삼십 분이면 오르는 동네 뒷산과 며칠 내내 올라야 하는 명산들, 차로 반나절을 달릴 수 있을 만큼 긴 고속도로와 맛 따라 멋 따라 찾는 휴게소, 잘 차려입은 세련된 사람들, 그리고 나를 아는 오랜 친구들과 언제나 보고 싶은 가족들을 떠올린다. 한국에 있는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할 만큼 내가 싱가포르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곳에서 머물고 있는 걸까.


그건 지난 십 년을 돌아볼 때마다 가슴속에서 뭉근하게 떠오르는 것들 때문일 거다.

내가 여기서 알게 된 것들. 버티고, 겪으면서 알게 된 것들.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내가 꽤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삶의 중요한 결정은 늘 나 스스로 내렸고, 크고 작은 문제들을 늘 스스로 해결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싱가포르에 와서 처음으로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아무도 대신해 줄 사람이 없는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게 되자, 비로소 내가 한국에서 얼마나 손쉽게 부모에게 의지했고, 당연하게 도움 받아왔는지를 알게 됐다. 이곳에 와서야 진짜 부모로부터 독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한다는 건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는 게 아니라,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는지를 알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떠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유능한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유능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도 알게 됐다. 한국어로 일할 때의 나는 늘 내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프로젝트를 끌고 갔지만, 싱가포르에 와서는 한마디를 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문장을 만들어 겨우 내뱉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농담 하나에도 반응하지 못했다. 내가 가진 경력과 실제로 보여줄 수 있는 능력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건 꽤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버티고 나니, 또 다른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잘하는 것만으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잘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배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한 번 실패했다고 끝나는 사람이 아니라, 자존심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 아마 싱가포르에서 얻은 것은 영어 실력이 아니라 이런 경험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도 있다. 싱가포르에서 어린이집과 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것은 아이에게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살아온 일상이 되었다. 한국에서 자랐다면 또 다른 것을 얻었을 테지만, 낯선 환경에서도 친구를 만들고 새로운 학교에서도 금세 적응하는 아이를 보며 문득 생각하곤 한다. 떠나는 일이 꼭 무언가를 잃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나에게는 낯선 곳이 아이에게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는 걸.


한국에 남겨두고 온 사람들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된다.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부모님의 늙음을 조금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일 년에 한두 번 한국에 갈 때마다 한 뼘 더 늙은 부모님을 마주하면서, 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고,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고, 집 근처를 산바카라하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된다. 나와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내고 같은 추억을 꺼내어볼 수 있는 친구, 척하면 척, 아하면 아 해줄 수 있는 친구들의 소중함 역시 떠나온 뒤에야 더 잘 알게 되었다.


가끔은 내 집이 어디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부모님과 친구들이 있는 곳, 내가 가장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는 곳. 언젠가 돌아가고 싶은 곳. 그렇다면 한국이 내 집인가. 하지만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이곳에 십 년을 살면서, 아이에게는 이곳이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 되었고, 우리 가족에게는 수많은 기억이 쌓인 곳이 되었다. 나는 십 년 동안 한 곳을 떠나 다른 곳에 정착한 것이 아니라, 두 곳 사이에 사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한국에 살던 나와 싱가포르에 사는 나 중 어느 한쪽이 아니다.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몰랐을 나도 있고, 싱가포르에 오지 않았다면 잃지 않았을 것들도 있다. 무엇이 더 좋은 삶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떠나온 후에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떠나지 않았다면 끝내 알지 못했을 나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낯선 곳에서 무너져보기도 했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약한 사람이기도 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십 년 전, 한국에 남았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아마 알 수 없을 것이다. 선택하지 않은 삶은 여전히 상상 속에만 존재하니까. 다만 이제는 그 질문에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한국에 남았더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는 모르지만, 싱가포르에 온 뒤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내가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삶을 살면서, 떠나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알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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