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아간다면 그날이 오늘일 순 없는 걸까.
오늘은 수많은 내일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 도착한 시간인데 말이다.
오늘 누려야 할 행복마저 내일로 미룬 채 오늘을 희생양 삼지는 않았던가.
거창한 행복을 계획하고 있다면 그 행복은 영영 오지 않을 내일이 될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행복의 정의와 기준은 다 다르다.
마음 그릇의 모양과 크기도 제각각 그릇 가게에 진열된 그릇들을 보면서 나를 닮은 그릇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큰 그릇은 큰 그릇의 쓰임이 있고, 작은 그릇은 작은 그릇의 쓰임이 있다. 귀엽고 앙증맞은 그릇은 소소한 행복을 담아내는 데 쓰인다. 이미 차고 넘친 그릇들이지만, 가끔은 색다른 질감의 그릇들에 눈길이 간다. 최근 유약을 반은 칠하고 반은 흙 색깔 그대로 남겨둔 찻잔과 볼 몇 개를 들였다. 반 칠하다 만 유백색 그릇의 흙색깔은 백토 그대로 남겨져 있고, 청록색 찻잔의 흙빛은 진한 갈색이다. 남김없이 매끈하게 다 칠하고 말았다면 알 수 없는 흙의 까슬한 질감을 만지면서 더 손길이 가고 시선이 머문다.
외골수, 똥고집, 아웃사이더라고 부를지언정 투박한 자신의 원형을 어느 한 곳에 소중히 간직하는 사람은 유약을 덜 바른 찻잔처럼 정겹고 인간적이다. 어딘가 빈틈이 있고 덜 닳은 모습으로 나의 서늘한 계절을 동행하는 사람이 내어주는 온기는 오래도록 훈훈하다.
자신의 마음을 꼭꼭 숨기고 보여주지 않는 사람, 이기적인 사고와 언행으로 앞뒤 숨통이 꽉 막힌 사람, 욕망의 늪에 갇힌 사람들에게선 유약을 모조리 발라 매끈하고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함은 있을지언정 자신의 본바탕을 자신도 모르는 어릿광대의 짙은 화장을 본다.
고향에 계신 엄마가 다니는 주간보호센터 이름은 행복학교이다.
'늘그막에 행복에 대하여 더 배울 무엇이 남아있다고 행복을 배우러 다니나' 싶지만 집에만 계시면 종일 누워 지내는 엄마는 매일 아침 행복학교 차를 기다리며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일주일에 두 번 사진으로 전송되는 엄마 모습을 보면 음악에 맞춰 건강체조를 하고, 신나게 춤을 추시고, 가을 코스모스 꽃들을 꽃잎 선을 살려 예쁘게 칠하셨다. 요즘 들어 전에는 안 보이던 어떤 영감님이 엄마 옆에서 자주 목격된다. 활동 놀이를 하실 때에도 엄마 옆에 앉아 계시고, 그 영감님 생일상을 차려놓은 사진에선 엄마 손을 잡고 계셨다. 호감이 있으신 것 같다. 한평생 논으로 밭으로 호미를 부여잡고 일만 하신 엄마가 새로이 찾아가는 행복의 길, 많이 웃으시고 많이 행복하시다면 더 바람이 없겠다.
평소 자주 가는 집 근처 호수보다 더 큰 호수를 지난여름 휴게소 전망대에서 보았었다. 옆으로 길쭉한 타원형인데 그 끝이 안 보일만큼 압도적인 크기에 놀랐었고, 호수가 품은 다양한 생태적 모습을 보고 싶어 푸른 가을날 찾아갔다. 우연히 들른 호수뷰 카페에는 식물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비싼 커피 한 잔 가격에 식물원 입장티켓이 포함되어 아깝지 않았다.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폭포수가 쏟아지는 별천지 세상이 전개되었다. 세렌디피티, 행복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다.
작은 게이트를 통과했을 뿐인데 그 옛날 전설의 공중정원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기원전 6세기경 고대 바빌론, 메디아 출신 왕비는 고향의 푸른 산과 숲을 그리워했다. 바빌론은 왕비의 고향과 달리 건조하고 평탄한 지역이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 왕은 왕비가 고향의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높은 곳에 나무와 꽃이 가득한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 사람의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높은 곳으로 물을 끌어올려 만들어진 신비로운 공중정원처럼 이곳도 계단식으로 높이를 달리하며 크고 작은 암석들을 층층이 포개 올리고 그 사이로 물길이 흐른다. 제일 높은 꼭대기 층에는 호수를 한눈에 굽어보는 전망대가 있고 건조한 바람은 가을 억새를 흔들어 가시광선을 잔잔히 부서지게 한다.
중장비를 동원한 자본의 힘으로 심산유곡에 박혀 있어야 할 수석들을 이주시켜 한차례 몸살을 앓았겠으나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어진 바위들의 맵시 그 사이사이 물길을 틔우고 꽃을 심어놓은 이 공간에서 맑은 행복을 누렸다. 고막이 아프도록 크게 틀어놓은 대중가요, 출렁다리, 혼탁한 호숫물은 고요한 감정의 떨림을 방해했다. 외형에 이끌려 왔으나 크기는 중요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작은 옹달샘 맑고 깨끗한 한 방울의 물이 목마른 갈증을 적셔준다.
단기간 행복을 배우는 학교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학교는 어디에도 없다. 주어진 시간 하루하루 부딪히며 행복을 배운다. 감성지수(EQ) 충만한 마음 그릇에 붉은 단풍잎이 한 잎 떨어져도 행복하고, 베란다에서 피는 용담꽃들을 들여다보며 아직 꽃봉오리를 아껴주어 안심한다. 오늘은 집 앞 소나무와 소나무를 잇는 쇠줄 위에 처음 보는 새가 앉아 있었다. 얼핏 봐선 새끼 까마귀 같았다. 꽁지는 길고 머리가 유달리 작은 새는 온통 검은 빛깔 광택 나는 최고급 실크원단 정장을 차려입었다. 한 번 찰칵 두 번 찰칵 목을 길게 빼던 모습 찍으려던 찰나 뻐꾹 문자음에 놀란 새는 날아가버렸다. 찾아보니 대륙검은지빠귀였다. 과거에는 이동시기에 관찰되는 나그네새였으나 최근 일부 지역에서 월동하고 텃새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오늘 하루 귀한 행복을 선물해 준 대륙검은지빠귀 새는 어디로 급히 날아갔을까.
나그네새 뒤태가 고혹적이죠..
정장을 차려입은 뒷모습에 귀족적인 혈통이 엿보입니다
일기일회 찰나의 마주침,
또 언제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