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처음 친구가 되기로 했던 그 나이로 나를 데려간다.
우리가 모여 있으면 도대체 우리는 몇 살 쯤인지 모르겠다. 우리만의 강력한 관성이 그때로 자꾸만
끌어당기는 것 같다. 돌아오라고, 너희가 가장 맑았던 때로.
그때의 우리들은 서로의 가장 진솔했던 것을 주고받았다.
우리가 자꾸 그때에 머무를 수 있는 이유도 서로에게 넘겨준 진심들 때문인 것 같다.
이상하게 슬롯로 나아갈수록 속내를 편히 나누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어른이 될수록 배워야 할 관계의 적정 선이 다양해졌고 그 선의 범위는 사람마다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는 서로를 같은 깊이로 대하고 있는 것인지 상대의 마음을 가늠해 가며 거리를 좁혔다가 늘렸다가, 바쁘게 조절해야 했다.
그러다 대체로 나는 다가가기를 멈췄고, 그게 어느 순간 내 기본자세가 되어버린 것 같다.
무조건 가까워야 할, 서로의 비밀을 다 알아야 진정한 친구다-라는 전제조건이 있었던 예전과는 참 많
달라져버렸다. 그래서 옛날 그 어릴 때처럼 진솔한 서로를 나눌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일이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때처럼, 친한 친구들에게는 별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혼자만의 진짜
속내까지도 다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다. 네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알려주듯이,
우리 이래왔잖아 기억하지, 상기시키는 듯이.
나에게는 친구를 만들어가는 일이 귀했다. 몇 안 되는 그 귀한 친구들은 이제 거의 다 엄마가 되었다.
모든 것에 적절한 때가 다 있다고 우리는 지금 아이를 키우는 때에 몰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함께 어울리던 그때는 다 지나가버리고 만 것일까, 다시 오기는 하는 것일까.
우리는 다음이라는 것을 선명하게 기약하기 어려워진 처지들이 되었다.
모임 통장의 잔고와 털어내지 못한 각자의 이야기는 쌓여만 가고 있다.
그래서, 늙는 것 같다. 애만 키우다가 늙어 죽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여태껏 원하던 것들을 풍족하게 가져본 기억은 없다. 늘 적당 선에서 만족하며 살았는데 인생의
어느 시점을 지나니 그마저도 여럿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 같다.
새로 가질 수 있는 것은 거의 드물고 있던 것들 중에서도 우선순위를 매겨 자꾸만 덜어내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가질 수 있는 것이 자꾸 줄어드는 것 같다.
그중에 진심을 나눴던 친구는 나에게는 평생을 놓을 수가 없는 것 중 하나이다.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우리는 말 그대로 엄마친구이다. 엄마 친구 누구누구 이모.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우리를 좀 풀어줄까, 너희는 우리에게 자유를 부여해 줄까.
여하튼간에 우리 인생이 애들한테 달려있다. 우리 부모님의 인생이 우리한테 매여있던 것처럼.
그래서 애들이 좀 자라서 우리가 옛날처럼 자주 만나고 여행도 가고, 그런 날이 다시 온다면
아이들 눈에 우리는 어떻게 보일지 상상하게 되었다.
엄마는 친구들이랑 모임 있어, 아빠랑 저녁 맛있게 먹어- 하고 홀연히 외출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무슨 아줌마 아저씨가 저렇게 친구만 만나고 다니나 하려나,
무슨 어른들이 저렇게 친구랑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나, 하려나.
아니면 저들 나이처럼 밝은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얼떨떨해하려나.
엄마도 놀러 나가니 나도 친구들이랑 좀 놀자, 하려나.
엄마가 한번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아줌마들 모여서 노는 거 별 거 없다고, 방에서 춤추고 눈 가리고
술래잡기 같은 것 하기도 한다고. 그게 참 우리 같아서 재미있었다.
우리는 나중에 50대쯤 되어도 잠옷 맞춰 입고 뜨개질을 하거나 보드게임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숨통 트일 구석 하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조금 놓였다.
엄마는 또 친구 만나러 가네- 하며 아이들이 혹시나 입을 삐쭉거려도 들뜬 마음을 감추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우리는 엄마가 된 서로의 모습을 때때로 낯설어하면서도 아이들 이야기로 대화의 8할을 채운다.
남편은 내가 친구들을 만나 몇 시간씩 소회를 풀 때마다 늘 놀란다. 여자들은 대단하다며.
엄마로서의 삶에서 친구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아마도 엄마 이전의 나를 찾아주는 찾아주는 유일한 사람들인 것 같다.
우리는 전생 같던, 자유롭고 수다스럽던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이번 달도 무사히 모임 회비를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