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의 때늦은 고생
피아노 두드리기. 내 시간 한편에 당당히 자리한다. 특별하되 평범한 시간. 그날은 신기하다. 특별함이 조금 더 우위를 점했으니. 거북이처럼, 자그마한 숫자를 쳐다본다. 평범하다. 그 모가지를 붙든 채, 오른손 각 부위를 하나씩 더듬는다. 평범하다. 왼손도 합세시킨 다음, 하나하나 박자를 맞춰본다. 평범하다. 반복을 통해, 4마디 정도를 지그시 이어본다. 역시 평범하다. 이윽고 휴대전화를 들고 연주 영상을 감상한다.
달라. 같은데 다르다. 2분음표, 4분음표, 8분음표. 숫자가 커질수록 차이는 더욱 넓어진다.
연습 도중이었다. 자신을 담은, 고유한 연주를 구성하기 위한. 연습도 연주의 범주인가. 하여튼 새로운 곡을 내 손가락에 각인하고자 했다. 실은 새롭지도 않다. 면식 있는 악곡을 ‘새롭게 연습하는’ 중이지. 여느 날처럼 건반 앞에서 낑낑대는 와중. 불쑥 떠올랐다. 이걸 적어볼까. 어림잡아 2년 전으로 거스른다. 피아노를 누를 때 종종 떠오르는 생각이었는데. 거기까지였다.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귓구멍으로 흘려보내는 나날만 쌓여가고. 기록하고자 하는 의욕. 이게 형성되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이제는 방관하지 않는다. 연습 사흘 차. 돌다리를 3번씩 두들기며 건넌다. 지문과 손톱을 가진 지팡이로. 1초에 1개도 못 누른다. 이해도, 그러니까 악보 독해력은 사정이 낫다. 음표 16개를 망설이지 않고 이어 나가므로. 긴장감을 부여하려면 아직이다.
빨라야만 그걸 자아낸다는 뜻은 아니다. 의도적으로 능동적으로. 곡을 주무르는 경지에 달해야 한다. 왁자지껄 뛰어다니다 일순간 허리 숙이며 까치발 들고 걷기. 혹은 그 반대로. 듣고 들으니 알겠더라. 웅장하고 또박또박하게 발음해야, 같은 문장이어도 뇌리에 박히지 않는가. 문장은 악곡. 연설자는 연주자다. 버벅대며 느려지기와 마음대로 느려지기. 둘은 분명 다르다.
악곡을 취하는 태도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본래 속도의 연주. 악보에서 지시한 빠르기를 그대로 수행하는 경지. 본래 속도. 이 역시 주관적이다. 끊임없는 연주가 더 알맞은 묘사다. 음 하나씩 천천히 눌러 찍을 때. 그 음악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참깨빵, 패티,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 각자 먹어도 잔상은 생긴다. 집어먹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신기루는 곧 실제에 다다른다. 한입에 먹을 수 있도록 입 크기를 점점 키운다. 그 끝은 빅맥. 비로소 다수가 체감하는 맛으로. 음식을 제조하게 된다.
‘그 맛’에 헐레벌떡 도달하고픈 욕심. 이게 심하다. 악보를 읽지 않고 손이 따라가기. 음 하나마다 손가락 위치를 전부. 전부 꿰어야 도달하는 단계인데. 나는 이 사실을 간과하고 주먹구구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실내화 가방과 함께 등교할 적부터. 교복에 익숙해질 무렵으로 가니. 그 버릇은 절정을 찍었다. 이 시절은 손가락 배치에 대한 개념도 전무했다. 콩나물 위 친절히 새겨준 손가락 번호. 응당 가볍게 무시했다. 한술 더 떴다.
그 시절 행세와 참 어울리는 관용어다. 음만 이어 나가면 된다는 안일한 신념. 그릇된 열망. 손목이고 뭐고, 대부분 음표를 도약으로 해결했다. 매끈해 보이는 빙판에서 스케이트를 탄다. 그러면 몸소 흠집을 찾게 되지. 선수를 보면서, 바깥 구경꾼 역시 그것을 알아챌 수 있다. 듣는 사람이 무언가 부자연성을 느낀다. 이때 당사자는 그것을 모를까 과연. 양심이 부족하거나. 청각이 둔하거나.
나는 또 전자였다. 내 또래 대부분은 악기에 무지하다. 고로 소리만 얼추 나오면 감탄하겠지. 이런 영악한 생각을 품었다. 심지어 그게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이 경험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러니 악습으로부터 헤어 나오기. 퍽 오래도 걸렸다. 부끄러움을 인지한 시기는 교복을 벗고 나서다. 중학생까지 다니던 학원을 간만에 방문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선생께서 연주해 보라는 지시를 했다.
그때야 처음 들었다. 손목에 대한 중요도를. 피아노 쳤던 사람 맞나 이거. 그 말을 명심하고 연습하는 나날이 쌓였다. 쌓인다. 문득 성찰했다. 과거에 내가 연주했던 악곡들을. 그 방식 그대로 눌러보니 드디어 귀에 들렸다. 귀마저 어두웠구나. 급식 먹을 적 손댄 악곡들. 밀려있는 숙제다. 버릇이 고약하게 남아있으니. 뒤늦게나마 손목과 팔꿈치를 이리저리 움직인다. 죗값을 치르느라 고생 좀 하는 요즘이다.
모름은 약 아닌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