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날이 가까워질수록

《딸이 엄마가 된 여름》 11

by이민자의 부엌


어느 날 밤, 남편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가 날짜를 세어보더니 말했다.


“이제 이틀밖에 안 남았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쪽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편이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고 했을 때 나는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다며 웃었는데, 어느새 돌아갈 날이 바로 앞에 와 있었다. 영국으로 오기 전에는 열네 날이면 제법 긴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딸의 몸도 어느 정도 추스를 수 있게 도와주고, 첫째 손주와도 실컷 놀고, 갓 태어난 둘째도 오래 안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자 그동안 무엇을 해주었는지보다 아직 해주고 싶은 것들이 먼저 떠올랐다.


남은 시간이 이틀뿐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늘 보던 모습도 전과 조금 다르게 보였다. 아침마다 우리를 찾으며 내려오는 첫째의 얼굴도 한 번 더 바라보게 되고, 딸의 품에 안겨 있는 작은 아기를 보면 괜히 가까이 가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열네 날 동안 매일 보았던 아이들인데도 이제 곧 마음껏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눈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은 이틀을 아쉬워하며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오히려 떠날 날이 가까워질수록 손은 더 바빠졌다. 우리가 돌아간 뒤 딸이 며칠이라도 덜 힘들었으면 하는 마음에 냉동실 안을 정리하고, 그동안 만들어둔 음식들을 한 끼씩 꺼내 먹기 좋게 나누어 담았다. 캐나다에서 가져온 다시마와 멸치 육수 팩도 꺼내놓고 첫째 손주에게 국을 끓여줄 때 쓰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딸은 알았다고 했지만 나는 돌아서면 또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냉장고 문을 열고 이것저것 설명했다.


집 안을 한 바퀴 돌면 또 할 일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사용했던 침구를 세탁해 정리하고 방과 부엌도 다시 살폈다. 이미 해놓은 것까지 괜히 한 번 더 확인했다. 이것까지 해두면 며칠은 편하겠지, 저것도 지금 해놓으면 나중에 손이 덜 가겠지 싶어 몸은 피곤한데도 쉽게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며칠 뒤면 하고 싶어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떠날 날이 가까워지자 남편과 나는 손자에게 보여줄 동영상을 하나 남기기로 했다. 멀리 캐나다로 돌아간 뒤에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늘 손자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영상으로 남겨주고 싶었다.


먼저 내가 카메라를 향해 천천히 말했다.


“My first grandson, Grandma will always remember the time we spent together. Stay healthy and grow up well. I love you so much!”


내가 말을 마치자 남편도 이어서 말했다.


“Grandpa and Grandma will be watching you grow into a healthy and wonderful young man, even from far away in Canada. Always remember that Grandpa and Grandma are on your side. I love you!”


멀리 캐나다로 돌아가야 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네 살 손자에게 꼭 남겨주고 싶은 말이었다. 곁에서 자라는 모습을 매일 볼 수는 없어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것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네 편이라는 말. 아침이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집에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눈을 뜨면 할아버지부터 찾는 아이였다. 우리가 떠난 다음 날 아침에도 습관처럼 할아버지를 찾지는 않을까 싶었다.


작은 손녀도 평소보다 오래 안고 있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일 거라는 생각에, 품에서 잠든 얼굴과 작은 손을 한 번이라도 더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사진도 전보다 많이 찍었다. 첫째와 할아버지가 함께 있는 모습, 손녀를 품에 안은 모습, 딸이 두 아이와 있는 모습에도 자꾸 휴대전화를 들었다. 평범해서 사진으로 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떠날 때가 되니 오히려 가장 남겨두고 싶은 모습이 되었다.


딸에게는 무엇보다 자기 몸부터 챙기라고 했다. 두 아이를 키우다 힘들면 혼자 버티지 말고 언제든 우리에게 말하라는 당부도 다시 했다. 사위에게도 딸과 두 아이를 잘 부탁한다고 하면서, 자기도 건강을 잘 챙기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말들이었지만, 떠날 때가 되니 같은 당부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게 되었다.


떠나기 전날이 되자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들 앞에 하나씩 ‘마지막’이라는 말이 붙기 시작했다. 여섯 식구가 함께 저녁을 먹고, 딸의 집에서 보내는 밤도 이제 하루뿐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일 또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하루 사이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 되어 있었다.


짐을 싸면서는 우리가 영국으로 올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네 개의 큰 여행가방에 딸에게 먹일 것과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가득 넣고, 무게가 넘을까 봐 몇 번이나 저울에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하나라도 더 가져가고 싶어 가방 사이사이 빈틈을 찾아 넣었는데, 돌아갈 때가 되니 된장과 고추장, 김치와 여러 음식은 딸의 집에 남고 가방 안에는 빈자리가 많이 생겨 있었다.


남편이 가방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올 때는 그렇게 무겁더니 갈 때는 가방이 텅 비었네.”


나도 웃었다. 정말 그랬다. 올 때보다 가방은 훨씬 가벼워졌는데 마음은 오히려 무거워져 있었다. 올 때는 곧 만날 사람들을 생각하며 가방을 닫았고, 이제는 두고 가야 할 사람들을 생각하며 같은 가방을 닫고 있었다.


마지막 밤, 모두가 잠든 뒤에도 나는 바로 침실로 올라가지 못했다. 부엌을 한 번 더 둘러보고 냉장고와 냉동실 문도 다시 열어보았다. 한 끼씩 꺼내 먹을 수 있도록 나누어 담아놓은 음식들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이것을 조금 더 만들어둘 걸, 저것도 해놓을 걸 하는 생각이 또 들었지만 이제는 그만해야 했다. 아무리 많이 만들어놓아도 언젠가는 바닥날 것이고, 내가 언제까지나 이 부엌에 서 있을 수도 없었다.


냉동실 문을 닫고 부엌 불을 끄니 집 안이 조용했다. 낮 동안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뛰어놀던 첫째도 잠들어 있었고, 몇 시간마다 울던 아기도 그날 밤은 조용했다. 며칠 동안 너무 익숙해져 내일도 똑같이 이어질 것 같던 집 안 풍경이 그날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현관 한쪽에는 여행가방 네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 가방을 들고 내일이면 남편과 나는 다시 캐나다로 돌아간다.


그제야 내가 왜 자꾸 냉동실을 열어보고, 아이들을 한 번 더 안아보고, 같은 당부를 몇 번씩 되풀이했는지 알 것 같았다.


떠날 날이 가까워질수록 더 많이 안아주고 싶었고, 하나라도 더 해놓고 가고 싶었다.


나는 현관에 놓인 여행가방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불을 끄고 계단을 올라갔다. 내일이면 우리가 이 집을 떠난다. 그래서 그날 밤만큼은 아침이 조금 천천히 왔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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