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함께 간다는 것

2026 All-Day-Project (104/365)

byJamin

0. 함께 간다는 것

1편: 빛과 그림자

2편: 둘이서,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3편: 셋이서, 편이 갈리는 순간

4편: 팀, 피자 두 판의 법칙

5편: 회사,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는 구조

6편: 경쟁하면서 협력하기

7편: 공유지의 비극, 혹은 희망

에필로그: 다시, 함께 간다는 것


시리즈를 시작할 때 하나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함께 간다는 건,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려워지는 걸까요? 여섯 편에 걸쳐 그 답을 찾아왔는데, 돌아보니 답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이 사람을 믿어도 될까"라는 망설임이 어려움의 시작이었습니다. 세 사람이 되면 누가 안쪽이고 누가 바깥인지, 보이지 않는 편 가르기가 시작되었죠. 팀이 커지면 서로의 상태를 자연스럽게 알 수 없어서 회의와 문서가 늘어나고, 일을 위한 일이 생겨났습니다.


회사에서는 사람의 선의만으로 안 되니까 구조가 필요해졌고, 그 구조가 과하면 또 사람이 숨을 쉬지 못했어요. 경쟁자와의 관계에서는 적과 아군의 경계가 흐려지는 복잡함을 견뎌야 했고, 국가 규모에서는 누가 배신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약속을 지켜야 하는 난제에 부딪혔습니다.


규모마다 문제가 달랐고, 그래서 해법도 달랐습니다. 죄수의 딜레마에는 팃포탯이, 트라이어드에는 구조에 대한 감각이, 팀에는 소통 비용에 대한 인식이, 회사에는 거래비용을 줄이는 시스템이, 경쟁자 사이에는 코피티션의 눈이, 공유지에는 오스트롬의 자치 규칙이 각각 필요했어요.


그런데 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가만히 놓고 보면, 하나의 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팃포탯이 왜 이겼는지 기억하시나요? 먼저 협력했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믿어보는 것. 트라이어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할은 중재자였어요. 둘 사이에서 다리를 놓겠다고 나서는 사람.


팀이 커져도 "이 회의 정말 필요한가"라고 먼저 물음을 던지는 사람이 있어야 변화가 시작되었고, 회사에서 부서 간 벽을 허무는 것도 누군가 먼저 "저쪽 입장을 들어보자"고 말해야 가능했죠. 경쟁자에게 "여기서는 같이 하면 서로 이득"이라고 제안하는 것도 결국 먼저 손을 내미는 행위였고,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안내문을 만든 주민 몇 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모든 규모의 협업에서, 언제나 누군가는 먼저 움직여야 했습니다.


이것이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하나의 실이에요. 협업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먼저 믿어주고, 먼저 제안하고, 먼저 양보하고, 먼저 규칙을 만들겠다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된다. 그리고 그 '먼저'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릅니다. 먼저 믿었는데 배신당할 수 있고, 먼저 제안했는데 거절당할 수 있고, 먼저 나섰는데 아무도 따르지 않을 수 있어요. 그 위험을 알면서도 먼저 움직이는 것. 1편에서 "알면서도 손잡기를 선택하는 것"이라 불렀던 그것이 결국 모든 규모에서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 시리즈를 쓰면서 계속 생각한 것이 있거든요. 먼저 움직이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용기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팃포탯은 먼저 믿되,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배신당하면 한 번은 되갚았어요. 오스트롬의 공동체는 규칙을 어기면 벌을 줬지만, 점진적이었습니다. 코피티션에서 손을 내미는 것은 우정의 악수가 아니라 이해관계의 제안이었죠. 먼저 움직인다는 건 무조건 퍼주는 게 아닙니다. 열려 있되 무방비는 아닌 것. 관대하되 만만하지 않은 것. 이 균형을 잡을 줄 아는 것이 진짜 협업의 기술이 아닐까요.


솔직히 말하면, 이 균형은 쉽지 않습니다. 저도 매일 일하면서 흔들려요. 먼저 믿어줬다가 실망한 적도 있고, 너무 원칙만 세우다가 관계가 딱딱해진 적도 있고, 경쟁해야 할 상대에게 마음을 열었다가 이용당한 느낌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그냥 혼자 하는 게 편하겠다"는 유혹이 찾아오죠.


그런데 그 유혹을 느낀 뒤에도 결국 다시 함께하는 쪽을 선택하게 되더군요. 왜일까 생각해봤는데, 답은 단순했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으니까요. 제가 만들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이루고 싶은 것들 중에 혼자 힘으로 닿을 수 있는 건 거의 없었어요. 그러니 어렵더라도 함께 가는 방법을 배워가는 수밖에 없는 거죠.


프롤로그에서 "우리가 매일 겪으면서도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들의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거라고 했었습니다. 그 여정이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죄수의 딜레마, 트라이어드, 던바의 수, 거래비용, 코피티션, 공유지의 비극. 이 이름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협업이 갑자기 쉬워지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적어도 "왜 이렇게 어렵지?"라는 물음 앞에서 막막하기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려움에 이름이 붙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다룰 수 있게 되니까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이 시리즈를 마치며 저는 이 문장을 이렇게 고쳐 쓰고 싶어요.


함께 가는 건 느린 게 아니라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이 함께 가는 첫걸음이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의 옆자리에 있는 누군가에게, 오늘은 조금 더 먼저 손을 내밀어보는 건 어떨까요. 그 작은 '먼저'가 생각보다 멀리 갈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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