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102/365)
5편: 회사,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는 구조
팀이 커지면 소통 비용이 늘어난다는 걸 지난 편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어요. 소통 비용이 그렇게 문제라면, 굳이 많은 사람을 한 지붕 아래 모을 이유가 없잖아요. 필요할 때마다 외부에서 적당한 사람을 찾아서 일을 맡기면 되지 않을까요? 디자인은 프리랜서에게, 개발은 외주 업체에, 마케팅은 에이전시에. 그때그때 최고의 전문가를 골라 쓰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사실 이 질문은 꽤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왜 회사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하면 될 텐데, 왜 굳이 수백, 수천 명을 묶어서 조직이라는 걸 만드는 걸까요.
1937년, 스물일곱 살의 영국 경제학자 로널드 코즈가 이 질문에 답했습니다. 답은 놀라울 정도로 명쾌했어요. 시장을 이용하는 데에도 비용이 들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코즈는 이걸 '거래비용'이라 불렀어요.
프리랜서 디자이너에게 일을 맡기는 상황을 떠올려보세요. 먼저 실력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포트폴리오를 보고, 후기를 살피고, 미팅을 잡아서 우리 일에 맞는 사람인지 확인해야 해요. 찾았다고 끝이 아닙니다. 계약 조건을 협상하고, 일의 범위를 문서로 정리하고, 중간중간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결과물이 기대와 다르면 수정을 요청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약속을 안 지키면? 다시 처음부터. 이 모든 과정에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요. 일 자체가 아니라 일을 맡기기 위해 드는 비용이죠.
회사는 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발명된 구조입니다. 같은 지붕 아래 사람들을 모아두면 매번 새로 찾고, 협상하고, 감시할 필요가 줄어들어요. 디자이너가 바로 옆 자리에 있으면 "이거 이렇게 바꿔줄 수 있어요?"가 한마디로 끝납니다. 서로의 일하는 방식을 이미 알고 있으니 설명 비용도 적고요. 회사라는 구조는 본질적으로 '거래비용을 낮추기 위한 장치'인 셈이에요.
이걸 처음 알았을 때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출근하는 회사라는 공간이, 따지고 보면 "함께 일하는 게 따로 일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한에서만" 존재 이유가 있다는 뜻이니까요. 회사가 비대해져서 내부 소통 비용이 외부 거래비용보다 더 커지는 순간, 이론적으로 그 회사는 존재할 이유를 잃는 겁니다.대기업이 사업부를 분사하거나, 스타트업이 "우리는 일부러 작게 유지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 원리 위에 있어요.
여기까지가 코즈의 이야기인데, 저는 이 관점이 협업을 바라보는 시선을 근본적으로 바꿔준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관점에서 보면 회사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의 정체가 선명해지거든요.
"우리 회사는 사람은 좋은데 시스템이 없어서…" 이 말, 한 번쯤 해보셨거나 들어보셨을 거예요. 코즈의 렌즈로 보면 이 문장의 의미가 정확해집니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도 일이 잘 안 풀리는 건, 거래비용을 줄여주는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에요.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서로 모르고, 의사결정 권한이 어디에 있는지 불분명하고, 정보가 특정 사람의 머릿속에만 있어서 물어봐야만 알 수 있고.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 모여도 매번 처음부터 탐색하고 조율하는 비용이 반복됩니다. 프리랜서에게 외주를 줄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거예요.
반대로 시스템이 잘 잡힌 조직은 이 비용을 극적으로 줄여줍니다. 신입 사원이 들어와도 문서화된 프로세스가 있으니 일주일이면 흐름을 파악하고,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가 명확하니 헤매는 시간이 줄고, 의사결정의 기준이 공유되어 있으니 매번 윗사람의 판단을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이 바뀌어도 돌아가는 조직. 그게 구조의 힘이에요.
그렇다고 구조만 있으면 될까요? 여기서 또 하나의 역설이 등장합니다. 구조가 너무 촘촘하면 사람이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모든 것이 규칙으로 정해져 있고, 한 발짝 움직이려면 승인을 받아야 하고, 개인의 판단은 프로세스 앞에서 무력해지는 조직. 이런 곳에서는 거래비용은 줄었을지 몰라도 다른 것을 잃습니다. 주도성, 창의성, 그리고 "이 일이 내 일"이라는 주인의식 같은 것들. 규칙이 사람을 대체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시키는 것만 하게 되고,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은 변화에 느려질 수밖에 없어요.
결국 회사에서의 협업은 두 가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한쪽에는 구조의 부재—사람은 좋은데 매번 헤매는 혼돈. 다른 쪽에는 구조의 과잉—시스템은 완벽한데 사람이 기계처럼 움직이는 경직. 어느 쪽으로 치우쳐도 협업은 무너집니다. 좋은 조직이란 이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찾아낸 곳이겠지요.
코즈의 거래비용 이론이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함께 일하는 것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른다. 그 비용은 없앨 수 없다. 하지만 현명하게 줄일 수는 있다. 그리고 그 비용을 줄여주는 것이 바로 구조이되, 구조는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지 사람이 구조를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앞선 편들에서 두 사람의 신뢰, 세 사람의 역학, 팀의 소통 비용을 이야기했는데, 회사에 이르면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작동합니다. 신뢰도 필요하고, 역학에 대한 감각도 필요하고, 소통 비용에 대한 인식도 필요하고, 거기에 더해 이 모든 것을 담아내는 구조까지 필요해지는 거예요. 규모가 커질수록 협업은 점점 더 복합적인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한 회사 안의 이야기가 아니라, 회사와 회사 사이의 이야기. 경쟁하는 상대와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음 편에서는 그 기묘한 관계를 들여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