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지의 비극, 혹은 희망

2026 All-Day-Project (103/365)

byJamin

0. 함께 간다는 것

1편: 빛과 그림자

2편: 둘이서,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3편: 셋이서, 편이 갈리는 순간

4편: 팀, 피자 두 판의 법칙

5편: 회사,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는 구조

6편: 경쟁하면서 협력하기

7편: 공유지의 비극, 혹은 희망


지금까지의 여정을 잠시 돌아볼게요. 두 사람 사이에서는 신뢰가 핵심이었고, 세 사람이 되면 편 가르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팀이 커지면 소통 비용이 폭발하고, 회사는 그 비용을 줄이기 위해 구조를 만들었고, 회사끼리는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죠. 규모가 커질 때마다 문제의 성격이 질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규모로 갑니다. 가장 크고, 가장 어려운 협업.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수백만, 수억 명이 하나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상황. 국가, 그리고 국가를 넘어선 공동체의 이야기입니다.


이 규모의 협업이 왜 특별히 어려운지, 아파트 분리수거장을 떠올리면 바로 감이 올 거예요. 저도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플라스틱 라벨을 떼고, 캔을 헹구고, 종이와 비닐을 분류해서 내놓습니다. 그런데 옆을 보면 음식물이 묻은 플라스틱이 그대로 던져져 있고, 일반 쓰레기가 재활용 칸에 섞여 있어요. 누가 그랬는지는 모릅니다. 아마 영원히 모르겠죠. 그 순간 슬며시 올라오는 생각이 있어요. "나만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건가?" 그리고 바로 그 뒤에 따라오는 생각. "나도 대충 하면 안 되나?"


이것이 바로 1968년 생태학자 개릿 하딘이 이름 붙인 '공유지의 비극'입니다. 원래 비유는 이래요. 마을에 공동 목초지가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 소를 풀어 풀을 먹일 수 있어요.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소를 한 마리 더 풀어놓는 게 이득입니다. 풀은 공짜이니까요.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면 목초지는 황폐해지고, 결국 아무도 소를 먹일 수 없게 됩니다. 개인에게 합리적인 선택이 모이면 전체에게 재앙이 되는 구조. 이게 공유지의 비극이에요.


이 구조가 무서운 이유는 어디에나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도 자가용을 몰고 나가는 것, 기후변화를 걱정하면서도 에어컨을 끄지 못하는 것, 세금은 아까운데 복지 혜택은 받고 싶은 것. 전부 같은 구조예요. 내 한 사람이 절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아는데, 그렇다고 모두가 절제하도록 만들 방법도 마땅치 않은.


두 사람 사이에서는 팃포탯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배신하면 한 번 되갚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수백만 명이 관여된 문제에서는 누가 배신했는지조차 알 수 없어요. 되갚을 상대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딘의 결론은 비관적이었습니다.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하려면 결국 두 가지 중 하나라고 했어요. 공유지를 사유화하거나, 정부가 강제로 규제하거나. 자율에 맡기면 반드시 망한다는 거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이 결론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등장합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엘리너 오스트롬이 하딘에게 정면으로 반론을 제기한 거예요. 오스트롬은 세계 곳곳의 실제 공동체를 연구했습니다. 스위스 알프스의 공동 목초지, 일본 어촌의 공동 어장, 스페인 발렌시아의 관개 수로. 수백 년째 유지되고 있는 이 공유 자원들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었어요. 사유화도 안 했고, 정부가 강제한 것도 아닌데 잘 돌아가고 있었다는 겁니다.


비밀은 구성원들이 스스로 만든 규칙에 있었습니다. 오스트롬이 발견한 핵심 원칙들을 풀어보면 이래요.


첫째, 누가 자원을 쓸 수 있는지 경계가 분명했습니다. "여기 사는 사람만"이라는 자격 조건이 있었어요. 아무나 와서 가져갈 수 있으면 바카라임감도 사라지니까요.


둘째, 규칙을 사용자들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위에서 내려온 규칙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상의해서 정한 규칙이기에 지키려는 동기가 달랐어요.


셋째, 어기면 벌이 있었지만 점진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경고, 반복되면 벌금, 그래도 안 되면 자격 박탈. 한 번 실수에 바로 퇴출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규칙 안에 머물 이유가 생겼어요.


넷째, 갈등을 해결하는 저렴한 장치가 있었습니다. 분쟁이 생기면 마을 어른이나 위원회가 빠르게 중재했어요. 법원까지 갈 필요가 없으니 문제가 작을 때 해결됐습니다.



읽다 보면 느끼실 거예요. 이게 지금까지 이야기해온 것들과 전부 연결된다는 걸. 경계가 분명하다는 건 팀의 크기를 의식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이고, 규칙을 직접 만든다는 건 회사에서 구조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고, 점진적인 벌은 팃포탯의 "한 번은 봐주지만 계속은 안 된다"는 원리와 닮아 있고, 갈등 중재는 트라이어드에서 세 번째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역할이었습니다.


오스트롬의 연구가 주는 희망은 이겁니다. 인간은 하딘이 생각한 것만큼 이기적이지도, 무력하지도 않다. 조건이 맞으면 사람들은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서로를 감시하되 가혹하지 않게 하고, 공유지를 지켜낼 수 있다. 오스트롬은 이 연구로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경제학상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수상자였어요.


물론 오스트롬의 사례들은 비교적 작은 공동체에서 작동한 것이었습니다. 기후변화처럼 전 세계가 관여된 문제에 이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겠죠. 파리기후협약이 그토록 어려운 협상이었던 것도, 합의하고도 이탈하는 국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규모가 커질수록 경계는 모호해지고, 규칙을 합의하기 어려워지고, 어긴 사람에게 벌을 주기도 까다로워지니까요.


하지만 방향은 분명합니다. 하딘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곳에서 오스트롬은 "조건이 맞으면 가능하다"를 보여줬어요. 비관과 낙관 사이, 정확히 그 지점에 현실이 있습니다. 공유지가 비극으로 끝나느냐 희망으로 이어지느냐는 결국 구성원들이 그 조건을 만들어낼 의지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분리수거장 이야기로 돌아가볼게요.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한때 분리수거가 엉망이었어요. 그런데 주민 몇 명이 나서서 안내문을 만들고, 요일별 배출 규칙을 정하고, 처음에는 부드럽게 알려주다가 반복되면 관리사무소를 통해 안내하는 방식을 도입했더니 조금씩 나아지더군요. 거창한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오스트롬이 스위스 목초지에서 발견한 것과 놀라울 정도로 같은 원리였어요. 작은 공동체에서, 당사자들이, 자기들의 규칙을 만든 것.


두 사람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국가까지 왔습니다. 규모가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지만, 되돌아보면 하나의 실이 이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고 있었어요. 다음 편, 이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에서 그 실이 무엇인지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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