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이서, 편이 갈리는 순간

2026 All-Day-Project (100/365)

byJamin

0. 함께 간다는 것

1편: 빛과 그림자

2편: 둘이서,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3편: 셋이서, 편이 갈리는 순간


두 사람일 때는 단순합니다. 나와 너. 믿거나 말거나. 협력하거나 안 하거나. 관계의 방향이 하나뿐이에요. 그런데 여기에 딱 한 사람이 추가되는 순간, 세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셋이 되면 방향이 셋으로 늘어나거든요. 나와 너, 너와 그 사람, 나와 그 사람. 이 세 개의 관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시작하면서 둘일 때는 없던 현상이 생겨납니다.


경험적으로 떠올려보면 바로 느낌이 올 거예요. 셋이서 밥을 먹는 상황을 상상해보세요. 둘이 공통 관심사로 이야기가 빠지면 한 명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관객이 됩니다. 그룹 채팅방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죠.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하면 세 번째 사람은 슬며시 빠지게 되고, 본인도 정확히 언제부터 소외됐는지 모르겠는 그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아무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셋이라는 숫자 자체가 이런 구도를 만들어내요.


100년도 더 전에 독일의 슬롯학자 게오르그 지멜이 이 현상을 정확히 짚어냈습니다. 지멜은 인간관계에서 숫자가 하나 바뀌는 것이 단순히 양의 변화가 아니라 질의 변화라고 봤어요. 둘에서 셋이 되면 관계의 본질 자체가 달라진다는 거죠. 그는 이 세 사람의 관계를 '트라이어드(Triad)'라 불렀고, 세 번째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역할을 세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첫 번째는 중재자예요. 두 사람이 갈등할 때 사이에서 다리를 놓는 사람. 회사에서 두 팀이 부딪힐 때 "양쪽 입장을 다 들어보니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풀어주는 사람이 이 역할이죠. 중재자가 있으면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아요. 셋이기에 가능한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역할은 좀 다릅니다. 지멜은 이걸 '어부지리를 취하는 자'라고 불렀어요. 두 사람이 싸우는 틈을 타서 자기 이익을 챙기는 사람입니다. 두 부서가 예산을 놓고 다투는 사이에 세 번째 부서가 조용히 원하는 것을 가져가는 장면, 본 적 있지 않나요? 본인이 직접 갈등에 뛰어들지 않으면서도 갈등 자체를 은근히 유지시키는 것이 이 역할의 핵심이에요. 둘이 사이좋아지면 오히려 자기 입지가 줄어드니까요.


세 번째는 가장 날카로운 역할입니다. '분열자'예요. 의도적으로 둘 사이를 갈라놓고 양쪽 모두와 따로 관계를 맺어서 영향력을 키우는 사람. 이건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한 번쯤 목격해봤을 풍경이에요. "걔가 너에 대해 이러더라"라는 말 한마디가 어떻게 관계를 뒤흔드는지, 떠올려보면 등줄기가 서늘해지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이 세 역할이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우리 모두가 상황에 따라 중재자가 되기도, 어부지리를 취하기도, 때로는 의도치 않게 분열자가 되기도 합니다. 셋이라는 구조가 이런 역할을 자동으로 만들어내는 거예요. 사람의 성격 문제라기보다 숫자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셋은 가장 불안정한 숫자이기도 합니다. 둘은 깨지면 끝이에요. 관계가 없어지는 것이지 뒤틀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셋은 깨지지 않으면서 계속 뒤틀릴 수 있어요. 오늘은 A와 B가 가깝고 C가 밀려나지만, 내일은 B와 C가 뭉치고 A가 밖으로 나갑니다. 이 회전이 끊임없이 일어나면서 세 사람 모두 "내가 빠지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을 안게 되죠.


온라인 게임에서도 이건 아주 흔합니다. 상사 한 명에 부하 두 명이 있으면, 두 부하 사이에는 미묘한 경쟁이 생깁니다. 누가 더 상사의 신뢰를 받는가, 누가 더 좋은 프로젝트를 가져가는가. 상사가 의식하지 못해도 "최근에 A와 미팅을 더 많이 했다"는 사실 하나가 B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기도 해요. 반대로 동료 두 명과 상사 한 명의 구도에서는, 동료 둘이 뭉쳐서 상사에게 의견을 관철시키는 장면도 벌어집니다. 어느 쪽이든 셋이 만들어내는 역학은 둘일 때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흥미로운 건 이 불안정함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에요. 둘이면 한쪽이 잘못해도 견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받아들이거나 관계를 끊거나 둘 중 하나죠. 하지만 셋이면 견제가 가능해져요. 한 사람이 지나치게 힘을 갖더라도 나머지 둘이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삼권분립이 발명된 것도, 가위바위보가 세 가지인 것도 우연이 아닐 거예요. 셋은 불안정하지만, 바로 그 불안정함 덕분에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지 않는 힘이 생깁니다.


결국 세 사람의 관계에서 협업이 잘 되려면, 이 역학이 존재한다는 걸 먼저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셋은 다 친한데 왜 가끔 이상해지지?"라고 느꼈던 순간들—그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셋이라는 숫자가 태생적으로 품고 있는 구조였던 거예요. 그걸 알면 소외감이 들 때 "저 둘이 나를 싫어하나"가 아니라 "지금 이 구도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구나"라고 한 발 물러서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 한 발이 관계를 지켜줄 때가 꽤 많아요.


두 사람이면 신뢰의 문제, 세 사람이면 구조의 문제. 그렇다면 이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이면 어떻게 될까요? 다섯 명, 열 명, 열다섯 명—팀이라 부를 수 있는 규모가 되면 또 한 번 질적인 변화가 찾아옵니다. 개미와 물고기 떼의 지혜가 필요해지는 순간이죠. 다음 편에서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둘이서,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