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103/365)
6편: 경쟁하면서 협력하기
지금까지는 한울타리 안의 이야기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신뢰, 세 사람의 역학, 팀의 소통 비용, 회사라는 구조. 모두 "같은 편끼리 어떻게 잘 협력할 것인가"의 문제였죠. 그런데 현실에서는 같은 편이 아닌 사람과도 함께 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 꽤 자주 있습니다. 경쟁자와 협력해야 하는 상황. 이 말 자체가 모순처럼 들리지 않나요?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이 모순이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어요. 가장 유명한 사례를 하나 들어볼게요. 삼성과 애플입니다. 이 두 회사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광고에서 서로를 겨냥하고, 시장 점유율을 놓고 다투고, 특허 소송으로 법정에서 싸우기까지 하죠. 그런데 동시에 삼성은 애플에 디스플레이와 메모리 반도체를 납품합니다. 아이폰 안에 삼성의 부품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법정에서는 원수처럼 싸우면서 부품 거래에서는 서로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게임이론에 이 상황을 설명해주는 개념이 있습니다. '내쉬 균형'이라는 건데, 수학자 존 내쉬의 이름을 딴 것이에요. 내쉬 균형은 간단히 말하면 이런 상태입니다. 모든 참여자가 상대방의 전략을 알고 있을 때, 아무도 자기 전략을 바꿀 유인이 없는 상태. 다시 말해 "상대가 저렇게 하는 한, 나는 이렇게 하는 게 최선이야"라고 모두가 동시에 느끼는 지점이에요.
삼성과 애플로 돌아가볼게요. 삼성 입장에서 애플에 부품을 안 팔면 어떻게 될까요? 거대한 매출처를 잃습니다. 애플 입장에서 삼성 부품을 안 쓰면? 당장 그 품질과 물량을 대체할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 둘 다 상대방과 거래하는 것이 거래하지 않는 것보다 이득이에요.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경쟁하지만 부품 시장에서는 협력하는 것이 양쪽 모두에게 최선인 균형 상태에 도달한 거죠. 좋아서 손잡은 게 아닙니다. 안 잡는 것보다 잡는 게 낫기 때문에 잡은 거예요.
이런 현상에 이름을 붙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일대의 배리 네일버프와 하버드의 애덤 브랜든버거는 이걸 '코피티션(Co-opetition)'이라 불렀어요.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을 합친 조어입니다. 이들의 핵심 통찰은 이거예요. 비즈니스는 전쟁이 아니다. 전쟁에서는 상대가 지면 내가 이기지만, 비즈니스에서는 경쟁자가 잘되는 게 나에게도 이익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직관적이지 않은 이야기니까 좀 더 풀어볼게요. 한 동네에 카페가 하나뿐이면 그 카페가 잘될까요? 꼭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카페가 세네 개 모여 있는 거리가 생기면, 사람들이 "거기 카페 골목이래"하고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한 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다른 집에서 디저트를 먹고. 경쟁자가 옆에 있는 게 불편하지만, 그 경쟁자 덕분에 전체 파이가 커지는 거예요. 이태원이나 성수동 같은 동네가 어떻게 뜨는지 생각해보면 이 원리가 그대로 보입니다.
기술 업계에서는 이게 더 극적으로 드러나요.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보세요.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무료로 공개했습니다. 경쟁사인 삼성, 샤오미, 온갖 제조사가 이걸 가져다 쓰죠. 구글 입장에서는 손해처럼 보이지만, 안드로이드를 쓰는 기기가 많아질수록 구글 검색과 플레이스토어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제조사 입장에서도 운영체제를 처음부터 만드는 것보다 안드로이드를 쓰는 게 훨씬 이득이고요. 경쟁자들이 같은 플랫폼 위에서 서로를 키워주는 구조. 이것이 코피티션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걸 우리 일상으로 가져오면 어떨까요? 사실 회사 안에서도 코피티션은 매일 벌어지고 있어요. 영업팀과 개발팀을 생각해보세요. 한정된 예산과 자원을 놓고 보면 경쟁 관계입니다. 영업팀은 고객이 원하는 기능을 빨리 만들어달라고 하고, 개발팀은 기술 부채를 먼저 갚아야 한다고 하죠. 각자의 KPI만 보면 상대방이 양보해야 내가 이기는 구도예요.
하지만 한 발 물러서서 보면 영업팀이 고객을 못 데려오면 개발팀이 만든 것을 쓸 사람이 없고, 개발팀이 좋은 제품을 못 만들면 영업팀이 팔 것이 없습니다. 경쟁하면서도 상대가 잘해야 나도 잘되는 구조. 이걸 인식하느냐 못 하느냐가 부서 간 협업의 질을 갈라놓습니다. "저쪽이 왜 우리 말을 안 들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전쟁이 되고, "저쪽이 잘해야 우리도 잘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코피티션이 시작되는 거예요.
내쉬 균형과 코피티션이 알려주는 것은 결국 이것 같습니다. 세상에 완전한 적도 완전한 아군도 없다. 같은 편끼리도 어디에서는 경쟁하고, 경쟁자끼리도 어디에서는 협력한다. 이 복잡함을 불편해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협업의 가능성은 훨씬 넓어집니다.
2편에서 두 사람 사이의 신뢰를 이야기하면서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이라고 했었죠? 경쟁자 사이에서도 비슷한 원리가 작동합니다. 다만 여기서 먼저 내미는 손은 우정의 악수가 아니에요. "우리가 함께하면 서로 이득인 지점이 여기 있다"는 제안입니다.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보는 눈. 그 눈이 있을 때 적과도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 됩니다.
지금까지 두 사람에서 시작해서 회사와 회사 사이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한 단계가 남았어요. 가장 큰 규모의 협업.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수백만, 수억 명이 하나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상황. 다음 편에서는 국가와 공동체, 그리고 '공유지의 비극'이라 불리는 인류의 오래된 딜레마를 들여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