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President)은 있었지만, 스테이츠맨(Statesman)은 없었다."▶
과거의 거인들은 닥쳐올 비극을 막기 위해 십자가를 졌지만, 오늘의 권력자들은 오직 진영의 이익과 얄팍한 '스펙터클'만을 쫓는다. 바버라 터크먼의 <8월의 포성>을 읽고 교훈 삼았던 JFK를 거울삼아, 텅 빈 제국의 조종석과 지난 20년 대한민국 통치 철학의 부재를 살펴본다.
1962년 10월, 인류가 핵전쟁의 벼랑 끝에 섰던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바카라상 위에는 바바라 터크만(Barbara W. Tuchman, 1912-1989) 의 <8월의 포성>이 놓여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직전, 각국 지도자들의 참담한 오판과 맹목적인 적개심이 어떻게 통제 불능의 파국으로 치달았는지를 해부한 바카라이다.
JFK는 이 바카라을 영국의 맥밀란 수상에게 선물하며,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어떻게든 1914년 8월과 같은 함정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바카라에 대한 JFK의 소감은 그의 동생 바비의 회고록에도 잘 드러나 있다. 국가를 이끄는 최고 바카라임자가 박사 학위도 없이 역사서를 쓴 '딸 셋 엄마'의 통찰을 교훈삼아, 선제 타격을 주장하는 진영 내 강경파들의 압박을 물리친 것이다. 국가의 존망 앞에서 역사의 심연을 응시하며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이 숭고한 통치 행위를 정치철학은 '스테이츠맨십(Statesmanship)'이라 부른다.
□ 리더십(Leadership)과 스테이츠맨십(Statesmanship)의 철학적 경계
현대 정치의 가장 어리석은 착시는 '리더(Leader)'와 '스테이츠맨(Statesman)'을 혼동하는 데서 출발한다. 리더십은 근본적으로 가치 중립적인 '기술'이다.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지지층을 결집하고 선거라는 게임에서 권력을 쟁취하는 데 목적이 있다. 반면 스테이츠맨십은 국가 공동체의 영속적 선(Common Good)을 수호하는 규범적 역량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실천적 지혜(Phronesis)'이자, 독일 정치철학이 강조하는 '국가이성(Staatsräson)'의 체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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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다음 선거를 이기기 위해 여론에 영합하고 진영을 동원하지만, 스테이츠맨은 10년, 100년 뒤 국가가 마주할 파국을 막기 위해 당장의 지지층을 넘어 고독한 결단력을 발휘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 그 자체보다 '국가의 미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 반쪽짜리 '대통령'과 스펙터클의 시대
이 철학을 토대로 오늘날의 권력 구조를 대입해보면 앙상한 '현실'이 추출된다. 직접 민주주의의 투표함은 몇년마다 어김없이 '대통령(President)'이라는 최고 권력자를 배출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부터 국가 전체를 사유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오직 자신을 선출해 준 '절반의 진영'만을 대변하는 수장으로 전락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김정은과의 '평양 정상회담'을 추진하려 한다고 인터뷰했다. 그 추진 동기는 거창한 대외 전략이 아니다. 중동 전쟁의 수렁과 치솟는 물가, 선거 패배의 공포에서 대중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시선 분산(distraction)"과 "사진 촬영(pictures)"이다.
볼턴의 증언은 스테이츠맨십이 증발한 자리에 무엇이 들어찼는지를 폭로한다. 트럼프는 한반도의 실존적 안보 자산인 한미연합훈련을 선불로 축소하며 평양행 티켓을 타진하고 있다. 존 미어샤이머(John. J Mearsheimer) 교수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전략적 대참사"로 규정한 이란과의 출구 없는 타격전(Tanker for Tanker)으로 미국의 군사적 억지력과 무기고는 바닥났다. 그 전략적 파산을 무마하기 위해 제국의 주권자는 동맹의 생존을 판돈으로 올린 채 무대 위에서 '스펙터클'을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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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비판하는 볼턴 역시 호전적 매파라는 비판을 받지만, 최소한 권력자 개인의 영달보다 국가(State)라는 실체를 우선시한 대가로 가혹한 보복(자택 압수수색과 10월 선고)을 감내하고 있다. 국가를 생각하는 자가 축출되고, 펜타곤에서는 충성파 장관이 합리적 관료들을 숙청하며 군을 사유화하는 현실. 바버라 터크만이 경고했던 "정바카라 없는 마키아벨리"들이 제국의 조종석을 장악했다.
□ 자칭 '리더'는 있지만, '스테이츠맨'은 부재한 20년
이 비극적인 풍경을 바다 건너 남의 집 불구경하듯 바라볼 수 없는 이유는, 대한민국이야말로 이 치명적인 결핍의 최전선에 서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자문해야 한다. △건국과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라는 국가의 굵직한 뼈대를 세웠던 거인들의 시대가 저문 이후,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에 몇몇의 최고권력자가 거쳐 갔지만, 과연 우리에게 '스테이츠맨'이라 부를 만한 통치자가 단 한 명이라도 존재했는가?
특정 진영의 분노를 조직하고, 선거 공학으로 정권을 쟁취하며, 팬덤을 결집하는 데 능숙한 '정치 기술자'들은 차고 넘쳤다. 그러나 그것은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는 테크닉일 뿐, 국가의 헌정 질서와 영속성을 지켜내는 숭고한 통치 행위가 아니었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 진영을 결집하는 것은 현대 대중정치의 불가피한 숙명일 수 있다. 과거의 정치인들도 속으로는 진영의 이익을 계산했지만, 막상 당선 후 통치자의 자리에 오르면 최소한 '모두의 대통령'인 척하는 일말의 노력이라도 보였다. 그러나 이 인위적인 노력이야말로 분열된 공동체를 하나의 국가로 묶어두는 최소한의 접착제였다. 그러나 지금의 텅 빈 권력자들은 그 최소한의 '노력'조차 거부한 채, 반대편 절반의 국민을 국가 권력으로 섬멸해야 할 '내전의 적'으로 취급하며 노골적으로 진영의 선봉장 노릇만 하고 있다.
5년이라는 유통기한 뒤에 숨어, 10년·20년 뒤 닥쳐올 실존적 위기(핵 위협, 인구 소멸, 에너지와 동맹의 재편)를 직시한 지도자는 없었다. 지지자들의 거센 반발을 각오하고 국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내던지는 결단은 철저히 회피되었다.
하지만 이것을 연임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철학 없는 연임은 국가를 좀먹을 뿐이다. 임기의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앉은 인간의 크기가 중요하다. 그 텅 빈 철학의 결과로 국정은 당대의 여론조사 수치와 다음 총선 공천권이라는 좁쌀만 한 이해관계에 저당 잡혔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국가의 외교안보 나침반은 극과 극의 진자를 널뛰듯 요동쳤고, 정치는 국가 전략을 설계하는 대신 내부의 적을 섬멸하기 위한 '영구적인 내전 스펙터클'로 전락했다.
□ 야생의 도래와 우리가 쥐어야 할 결단
지금 세계는 80년간 지속된 자유주의 규범의 온실을 깨부수고, "눈에는 머리"가 지배하는 냉혹한 자연 상태로 회귀하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동맹의 생존을 무조건적으로 담보해 주는 자비로운 패권국이 아니다. 그들 역시 내부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언제든 한국을 패싱하고 북한과 '핵동결-제재 해제'라는 야합(스펙터클)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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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대한 지정학적 변곡점 앞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는 얕은 링 위의 난투극에 매몰되어 있을 것인가? 저급하고 치졸한 이중취식 같은 밥그릇 문제는 공식적으로 발표조차 되지 않고 여당 내부의 자정작용에 의해 진작 걸러졌어야 할 문제다.
대통령이라는 껍데기 권력자가 아니라, 닥쳐오는 빙산 앞에서 국가의 명운을 짊어질 진짜 '스테이츠맨'을 세워야 한다. 위기의 시대가 진정으로 목마르게 찾는 것은, 진영의 적을 섬멸할 날카로운 창이 아니라 붕괴하는 국가의 헌정 질서를 지탱해 낼 무겁고 고독한 철학적 닻이다.
<국내언론>
https://www.yna.co.kr/view/AKR20260902001600071
<해외언론>
https://www.axios.com/2026/09/02/iran-tankers-hormuz-attacks-oil
https://thehill.com/policy/defense/6064658-hegseth-consolidates-pentagon-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