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산의 일각 = 세계질서의 스펙터클

byAltusSolum
Gerhard Richter, Eisberg im Nebel(1982)



지난 7월, 우리는 <미·일 사이버 안보 공동 성명>을 문안을 함께 살펴보았다. 그리고 당시 나는 동아시아의 디지털 질서가 슈미트(C.Schmitt)가 강조한 피아구분이라는 이분법적 영토로 재편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양자 암호와 클라우드가 지배하는 0과 1의 세계에서 한국 외교의 오랜 관행이었던 '전략적 모호성'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

https://blog.naver.com/altus_solum/224335439221


그런데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 이 냉혹한 이분법은 보이지 않는 클라우드 망을 넘어 '핵'과 '영토'라는 가장 물리적인 지정학의 한복판으로 번져왔다. 최근 미국 조야에서 북한의 핵 보유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모종의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구상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는 단순한 선거용 레토릭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서구 세계와 대한민국이 금과옥조로 여겨온 '국제법'과 '규범 기반의 질서'가 완전히 붕괴했음을 알리는 세계사적 신호탄이다.


□ 세계 질서(Global Order)란?

우리는 숱한 지정학적 위기를 겪고도, 여전히 '평화'가 인류의 자연스러운 상태(State of Nature)라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홉스나 슈미트 같은 현실주의자들의 눈에 비친 인류의 기본값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즉 피비린내 나는 폭력과 적대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세계 질서(Global Order)'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결코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참혹한 전쟁 끝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공멸을 피하기 위해, 혹은 압도적인 패권국이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강제해 낸 '인위적이고 일시적인 건축물(합의)'에 불과하다.


<국가이성>에서 언급했던 영국의 사학자 C.V. 웨지우드(C.V. Wedgwood)가 <30년 전쟁(1618-1648)>에서 치밀하게 묘사했듯, 17세기 유럽은 카톨릭과 개신교라는 이념과 종교의 이름 아래 서로를 잔혹하게 도륙하는 지옥 그 자체였다. 말그대로 무려 30년 동안 독일 인구의 3분의 1이 굶어 죽고 불타 죽는 끔찍한 절멸의 시간을 겪고 나서야, 인류는 비로소 이성의 목소리를 냈다. 1648년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Der Westfällische Friede)은 바로 이 지독한 피로와 절망 위에서 탄생한 최초의 '세계 질서'다. "상대방의 종교(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고, 각 국가의 물리적 영토와 주권을 절대적으로 존중한다"는 이 합의는, 인간의 본성이 선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죽이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타협'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근대적 외교'의 시작이라 부른다.

https://fishingproductfr.com/@24b21b72d8be455/168


□ 80년의 평화라는 예외적 특권

시간을 현대로 돌려보자.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이라는 압도적 패권국은 UN과 브레턴우즈 체제를 세우고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라는 거대한 온실을 지었다. 그 안에서 인류는 무려 80년 가까이 무역을 하고, 인권을 논하며, 대화로 갈등을 풀 수 있다는 낭만적 환상(평화)을 누렸다.


그러나 이 80년은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독특하고 예외적인 '특권의 시간'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운좋게 그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나 살고 있는 특권을 누린 것이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전 지구적 위기(△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전쟁, △핵 위협, 그리고 △미·중의 기술 패권 충돌)는 세상이 비정상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강대국들이 지어놓은 자유주의의 온실이 수명을 다하고, 늑대들이 으르렁거리는 역사의 본래 디폴트 값, 즉 1648년 이전의 냉혹한 '야생(자연 상태)'으로 되돌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의 핵 보유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겠다는 미국의 기류는 바로 이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미국은 '베스트팔렌적 외교'나 자유주의적 규범을 수호하는 세계의 경찰 역할을 내려놓고 있다. 적과 동지를 노골적으로 가르며 스스로 룰 자체를 파괴하는 거대한 '결단'의 영역으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선전포고다. 세계 질서라는 거대한 얼음이 깨지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그 위에서 낡은 규범의 춤을 추고 있다.



□ 헐크 호건의 링 : 대중을 기만하는 스펙터클(Spectacle)

이 거대한 전환을 정확히 읽어내려면 먼저 우리 눈을 가리고 있는 정치적 환상부터 걷어내야 한다. 대중은 여전히 세상이 '민주당 vs 공화당' 혹은 '좌 vs 우', '진보 vs 보수'의 치열한 이념 전쟁으로 굴러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국제 정치의 심연과 글로벌 권력의 재편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 이념의 구분이 얼마나 허망한 기만인지 깨닫게 된다.




images (19).jpg
images (20).jpg

프랑스 철학자 기 드보르(Guy Debord, 1931-1994)는 <스펙터클의 슬롯(La Société du spectacle, 1967)>에서 '정치적 대립은 체제의 본질을 은폐하기 위한 거짓 스펙터클(구경거리)'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의 경고처럼, 대중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정당 정치는 마치 과거 헐크 호건이 포효하던 프로레슬링 링 위의 각본 짜인 쇼와 같은 것이다. 링 위에서는 좌파와 우파가 서로 멱살을 잡고 피를 흘리는 척 연기하며 서로를 끊임없이 혐오하고 악마화하며 싸우지만, 결국 심연을 들여다보다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리듯 가장 저열한 모습으로 서로를 쏙 빼닮아버린 기괴한 '적대적 공생'일 뿐이다.


하지만, 막이 내린 뒤 진짜 권력의 밀실은 다르다. 거기서는 강경 우파와 리버럴 진보, 심지어 군산복합체의 수뇌부와 기술 자본가들이 이념의 꼬리표를 떼어내고 한 테이블에 앉아 다가올 '세계 질서(Global Order)'의 룰을 새로 짜고 있다.


이 거대한 재편의 한복판에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참담한 진실은, 제3차 세계대전과 기술 패권을 논하며 세계의 룰이 결정되는 이 은폐된 엘리트들의 테이블에, 정작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사는 단 한 명도 끼어들지 못하는 현실이다. 강대국들은 조용히 다음 시대의 판을 짜며 우리를 철저히 소외시키고 있는데, 우리는 우물 안의 링 위에서 서로를 닮은 괴물들이 내지르는 고함에 열광하고 있다. 이념은 대중을 링 주변에 묶어두는 얄팍한 마취제일 뿐이다. 세상의 진짜 권력자들은 이념이 아니라 다가올 '위기'를 통제하는 데 몰두한다.



images (21).jpg
images.png



□ 칼 슈미트의 귀환 :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단하는 자이다"


존 로크(John Locke)로 대변되는 근대 자유주의는 대화와 타협, 그리고 국제법(온실)이 영원한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 맹신했다. 그러나 테러리즘, 핵 확산, 강대국 간의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실존적 위협 앞에서는 그 어떤 세련된 외교 수사도 무력하다.


근대 자유주의의 위선을 가장 날카롭게 해부했던 독일의 정치철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는 그의 저서 <정치신학(Politische Theologie, 1922)>의 첫 문장을 이렇게 선고했다.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단하는 자이다."


(Souverän ist, wer über den Ausnahmezustand entscheidet.)



평화로운 시기에는 헌법과 국제 조약이 세상을 통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쟁과 파국이라는 '예외상태(Ausnahmezustand)'가 닥쳤을 때, 종잇조각에 불과한 법은 작동을 멈춘다. 법이 작동하지 않는 바로 그 벼랑 끝에서, 기존의 룰을 정지시키고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자가 바로 진짜 권력자요, 진정한 '주권자'이다.


미국의 엘리트들이 트럼프라는 거칠고 예측 불가능한 인물을 허용(혹은 이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구 문명은 다가오는 예외상태(전쟁과 기술 붕괴)에서 살아남기 위해, 점잖은 규범에 얽매인 관료가 아니라 룰 자체를 찢어버릴 수 있는 '투박한 망치'를 필요로 한다. 북한의 핵을 용인하고 동맹국(한국)의 안보를 거래의 칩으로 던져서라도 더 큰 적(러시아·중국)을 절멸시키겠다는 구상은, 철저하게 슈미트적인 '주권적 결단'이자 새로운 세계 질서의 서막이다.


강대국들과 글로벌 엘리트들은 이미 '프로레슬링'의 각본을 찢어 던지고 무대 뒤의 밀실에서 새로운 카이사르(Cäsar)의 시대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나라의 안쪽 풍경은 어떠한가?


우리는 아직도 짜고 치는 링 위에서 좌우로 나뉘어 싸우는 것을 정치의 전부라 착각하고 있다. 심지어 국가의 조종석에 앉은 자들은 헌법적 관행을 무시하고 입법부와 행정부의 월급을 이중으로 탐하는 좀도둑질에 몰두하고 있다. 세상은 거대한 비극(Tragedy)의 서사시를 쓰고 있는데, 우리는 정치꾼들이 벌이는 비루한 촌극(Farce)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규범의 시대는 끝났다. 늑대의 시간이 도래했다. 미·일 사이버 동맹에서 시작된 '인식론적 고립'은 이제 국가의 생존 자체가 강대국들의 밀실 거래 테이블 위에 오르는 '실존적 파국'으로 진화했다. 온실 밖 야생으로 내던져진 대한민국은 이제 답해야 한다. 낡은 스펙터클의 환상 속에서 멱살잡이나 하다가 전리품으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다가오는 예외상태 앞에서 독자적인 생존을 위한 비장한 '결단'을 내릴 것인가?



세네카는 말했다.


"선택의 시간은 길지 않다.

운명은 순응하고 결단하는 자를 이끌지만,

환상에 젖어 거역하는 자는 무자비하게 끌고 갈 뿐이다."

(Ducunt fata volentem, nolentem trahunt.)



-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도덕 서한(Epistulae Morales ad Lucilium) 107번째 편지>




이전 10화21세기 대한민국의 카틸리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