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단지(정치인 특권) 깰 방법은 선거 뿐!

byAltusSolum


◀"자본주의는 자신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그 눈부신 성공 자체로 인해 사멸한다."▶


대한민국은 앞세대가 피땀으로 이룩한 압축 성장의 과실을 텅 빈 모리배들이 앞다투어 뜯어먹는 '약탈장'으로 전락했다. 조셉 A. 슘페터의 묵시록을 토대로 사유재산과 사법부가 무너지는 공화국의 붕괴 과정을 진단하고, 거대 양당 카르텔의 특권이라는 '꿀단지'를 박살 내는 선거 혁명을 통해 우리가 재건해야 할 새로운 국가이성(Staatsräson)을 묻는다.

ALTUS SOLUM 2026.9.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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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A.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 1883-1850)는 <자본주의, 슬롯주의, 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1942)>이라는 예언적 묵시록을 남겼다. 자본주의 체제는 마르크스가 저주했던 빈곤이나 경제적 모순 때문에 붕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상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달성한 '성공 그 자체'가 체제를 수호하던 사상적, 제도적 면역력을 허물고 국가를 사멸의 길로 이끈다는 것이다. 위대한 혁신이 거대 조직의 타성에 갇히고, 풍요가 낳은 배은망덕한 지식인들이 체제를 내부에서 무너뜨린다는 역설이다.


대한민국은 건국과 산업화라는 국가이성(Staatsräson)으로 무장하고 헌신적으로 국가의 뼈대를 설계했던 유능한 엘리트 관료들과 앞세대의 위대한 기업가들이 피땀으로 쌓아 올린 공화국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나라는, 윗 세대가 일궈 둔 성공의 과실을 텅 빈 모리배들이 앞다투어 뜯어먹는 '약탈장'으로 변질되었다. 미국이 22세기의 인프라를 설계하고 '서구'문명을 지키겠다고 AI 항전을 시작한 이 시점에, 이 나라의 권력자들은 갑자기 획득한 설익은 풍요에 취해 공화국의 기둥을 갉아먹고 있다. 슘페터의 예언은 한국에서 가장 기형적이고 추악한 모습으로 실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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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슘페터가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라는 제목으로 쓴 단행본은 없다. 그가 기업가정신(Unternehmergeist)이라는 개념을 경제학의 핵심으로 끌어올린 역작은 1911년에 출간된 <경제발전의 이론(The Theory of Economic Development)>이다.이 바카라에서 슘페터는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은 자본도 노동도 아닌, 새로운 결합(New Combination)을 시도하는 '기업가(Entrepreneur)'라고 최초로 정의했다. 이후 1942년에 쓴 <자본주의, 슬롯주의, 민주주의>에서 이 기업가들의 역할이 거대 관료제에 의해 사멸할 것이며, 그 과정이 바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의 종말이라고 예언한 것이다.




□ 창조적 파괴의 실종과 '디지털 지주'의 탄생

슘페터 체제의 심장은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세우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istruction)'와, 기꺼이 미지의 바다로 뛰어드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에 있다. 과거 맨손으로 조선소와 반도체 공장을 짓던 혁신의 야성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멸종했다.

몇몇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등장했지만, 이들은 슘페터가 말한 혁신가로 볼 수 는 없다. 이들은 낡은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글로벌 프런티어를 개척하는 대신, 거대한 내수 시장의 포식자가 되어 슬롯의 부를 빨아들이는 '디지털 지주'로 전락했다. 국가 경제에 기여하려는 개척자의 정신은 사라지고, 오직 트래픽을 독점해 지대를 추구하는 탐욕만 남은 것이다. 거대 조직의 일상적 행정과 독점의 단맛에 취한 관리자들만이 혁신의 껍데기를 쓴 채 군림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일부 기업들은 규제 탓을 하며 푸념을 늘어 놓는다. 하지만 어제도 강조했지만 규제 철폐는 굳건한 국가이성과 엄정한 법치주의가 지탱될 때만 혁신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공적 시스템이 모리배들의 이념적 전리품으로 전락한 작금의 한국에서 무턱대고 '포지티브 규제(원칙적 금지)'의 빗장을 푼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혁신의 야성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가짜 기업가들과 정치 브로커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국가 곳간과 서민의 부를 마음껏 뜯어먹도록 합법적 면죄부를 쥐여주는 꼴이 될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몰락이 보여주듯, 무너진 국가이성 위에서의 맹목적인 규제 완화는 '약탈의 자유'를 뜻할 뿐이다. 한국에서 진정한 기업가가 사멸한 것은 촘촘한 규제 때문이 아니다. 체제를 뒤엎을 진짜 '야성'은 죽어버리고, 국가의 보호 아래 편하게 지대만 추구하려는 천박한 '탐욕'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규제 철폐가 아니라, 이 약탈적 지대 추구를 엄단하고 국가의 방향성을 다시 세울 강력한 '관료적 이성'의 복원이다. 여기서 관료는 정권이 바뀔때마다 얼굴을 바꿔가며 젤 먼저 줄 서는 영혼없는 자들이 아니다. '신의성실'의 원칙을 다해 국가의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전문 테크노크라트를 말한다.

□ 배은망덕한 지식인과 사유재산 및 사법의 해체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풍요가, 생산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으면서 슬롯체제의 불완전성만을 공격하는 '지식인(Intellectuals)' 계급을 양성한다고 보았다. 한국 슬롯의 주류를 장악한 80년대 운동권 지식인들의 행태는 사상적 투쟁 조차 되지 못한다. 자신들은 체제가 주는 물질적 혜택을 철저히 독식하면서도, 대중 앞에서는 '평등'과 '공정'이라는 고결한 은어(Jargon)를 남발하며 계급적 증오를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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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부동산 정바카라은 단순한 행정 및 정바카라 실패가 아니다. 대중의 시기심을 연료 삼아 자본주의의 근간인 '사유재산권'을 해체하려 한 치밀한 기획이었다. 더 치명적인 것은 사유재산과 계약의 신성함을 수호해야 할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의 붕괴다. 삼권분립의 원칙을 잃어버린 사법부가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고, 법관의 판결이 엄정한 법리가 아닌 진영 논리와 광장의 광기에 흔들릴 때 공화국의 헌법적 계약은 파기된다. 사법의 정치화는 국가의 면역 체계가 완전히 파괴되었음을 알리는 가장 절망적인 징후다.

□ 엘리트 경쟁으로서의 민주주의: 포퓰리즘 시장의 비극

민주주의는 '시민의 지배'라는 환상이 아니라, 정치 엘리트들이 대중의 표를 얻기 위해 상품(정바카라)을 파는 냉혹한 시장 경쟁일 뿐이다. 슘페터의 이 차가운 정의는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의 끔찍한 민낯을 완벽히 설명한다.

현재의 꾼들에게는 100년 뒤의 미래나 숭고한 국가이성 따위는 안중에 없다. 오직 다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국가의 곳간을 털어 현금을 살포하고 미래 세대에게 빚더미를 지운다. 밖으로 실재하는 안보 위협을 철저히 외면한 채 '평화 공존'이라는 가짜 스펙터클을 판매하며 권력을 연명한다. 그 결과 유권자는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 포퓰리즘 정바카라에 중독된 소비자로 전락했고, 꾼들은 국가의 뼈대와 기둥을 땔감으로 팔아치우는 악덕 상인이 되었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진실을 말하며 미래의 십자가를 짊어질 '스테이츠맨(Statesman)'이 멸종한 정치 시장, 그것이 우리가 목도하는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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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전(Vision)의 포석: 무엇을 재건할 것인가?

특정 꾼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분노하는 것만으로는 이 몰락을 멈출 수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르는, 슘페터적 사멸 과정의 충실한 '증상'에 불과하다. 우리의 포석은 이 무너진 폐허 위에서 공화국의 기둥을 다시 세우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첫째, 사법부의 절대적 독립성과 삼권분립을 복원이다.

정치 세력과 광장의 광기에 의해 유린당한 법치를 재건하여, 헌법적 계약의 신성함과 국가 시스템의 예측 가능성을 되찾아야 한다. 법관의 판결이 법리와 양심이 아니라 진영의 논리에 휘둘리는 순간, 공화국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룰은 파괴된다. 사법부는 포퓰리즘의 선동으로부터 국가이성(Staatsräson)을 수호하는 흔들림 없는 최후의 방파제가 되어야 한다.

둘째, 사유재산권의 절대적 가치 수호다.

징벌적 포퓰리즘과 조리돌림에 의해 훼손당하는 재산권을 국가 운영의 대원칙으로 복귀시켜야 한다. 사유재산은 단순히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 아니라, 개인을 국가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는 자유의 물질적 토대다. '공정'과 '분배'라는 기만적인 은어(Jargon) 뒤에 숨어 자행되는 합법적 탈취를 멈추고,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와 성취의 동기를 굳건히 지켜내야 한다.

셋째, '약탈'에 대한 단호한 통제와 강력한 관료적 이성의 복원이다.

국가의 보호 아래 기생하는 지주들의 약탈적 지대 추구 행위는 깨어있는 '관료적 이성'을 동원해 단호히 통제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얼굴을 바꾸는 해바라기 관료가 아니라, 신의성실의 원칙으로 국가의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전문 테크노크라트들이 나서야 한다. 이들이 정밀한 포지티브 규제의 칼날을 벼려 혁신과 약탈의 경계를 엄정하게 구획할 때 비로소 국가의 기강이 바로 선다.

넷째, 거대 양당 카르텔과 기생적 정치 시장을 붕괴시킬 '선거 혁명'과 선거법 개정이다.

막스 베버가 통찰했듯, 정치는 본래 사익을 채울 필요가 없는 자들이 온전히 국가의 존립만을 고민하는 숭고한 종사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국회는 정치를 '위해' 사는 자들이 아니라, 정치로 '먹고' 사는 모리배들의 생계형 이권 시장으로 전락했다. 정치를 '수지맞는 이권 비즈니스'로 변질시킨 기형적인 특권과 낡은 제도를 바꿔야 한다.

지금 한국 정치의 가장 거대한 악은 적대적 공생으로 권력을 독과점하고 있는 거대 양당 카르텔이다. 이들은 겉으로는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척하지만, 뒤로는 막대한 세비와 특권이라는 전리품을 철저히 나눠 갖는다. 더욱 참담한 것은, 이 기득권 양당이 만들어놓은 선거법의 기형적 틈새를 파고들어 위성정당이나, 제3지대의 탈을 쓰고 이념을 팔아 사익을 챙기는 '충'들마저 이 약탈적 시장에 기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썩어빠진 거대 양당의 독점 구조와 그 주위를 맴도는 '충'들을 동시에 몰아내려면, 결국 깨어있는 유권자들이 선거를 통해 제대로 된 인물을 국회로 보내 선거법의 허점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누리는 꿀단지 같은 특권을 과감히 해체하고, 오직 자신이 내린 결정의 결과에 대해 냉혹하게 십자가를 짊어지는 '바카라임 윤리(Verantwortungsethik)'로 무장한 자들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정치 시장의 룰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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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의 꿀단지를 스스로 내려놓는 험난한 선거 혁명이야말로 몰락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을 건져낼 새로운 국가이성(Staatsräson)이며, 다가올 패권의 시대에 이 비동기화된 국가를 구원할 진정한 스테이츠맨(Statesman)이 탄생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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