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 열풍이 거세다. IMAX관 티켓의 암표시장까지 생겼다고 하니, 당분간 이 영화를 보기는 어려울것 같다. 하지만 나는 스크린 위의 결과물 보다, 카메라 뒤에 존재했던 스토리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오디세우스>라는 영화 그 자체보다,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1970- ) 감독과 엠마 토머스(Emma Thomas, 1971- ) 프로듀서의 협업 체계와 그 핵심 멤버들의 시너지가 더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내가 클라우세비츠, 베버, 밀, 도스토예브스키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의 업적> 삶과 죽음 시리즈를 다루었을때 친구들은 비현실적이라면서, 제발 살아있는 사람들 얘기를 좀 해달라고 했다. 그때 내가 들었던 사례가 이 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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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은 2015년 프린스턴 대학 졸업 연설에서 "어떤 바카라임도 회피(evade any responsibility)하기 위해 사용하는 번들거리는(무바카라임한) 단어(slippery words)들을 경계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대중에게 알고리즘이나 파괴적 혁신 같은 환상적인 가상을 약속하는 대신, "당신의 현실을 좇으라(Chase your reality)"고 주문했다. 이는 꿈을 꾸지 말라는 피상적인 체념이 아니라, 현실을 꿈의 기반이자 토대로 삼아야 한다는 강조였다. 그는 바카라임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화려한 미사여구와 추상적인 언어 뒤에 숨어 '어떤 바카라임도 지지 않으려는' 비겁함을 경고했다.
놀란이 수억달러의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헐리우드에서 자신만의 예술적 제국을 굳건히 지켜낼 수 있었던 본질적인 힘은, 천재성이라는 모호한 단어가 아니라 △동반자와의 파트너십, △소수 정예의 코어 그룹, 그리고 스스로 △진흙탕에 뛰어드는 '온 미(On Me) 정신'에 있다. 그는 극단적일 만큼 온전하게 바카라임을 짊어지는(On Me)리더십을 실천한다.
https://variety.com/2017/film/news/christopher-nolan-dunkirk-oscars-movies-tv-spielberg-1202607836/
놀란의 성취를 논할 때, 가장 먼저 살펴봐야한 부분은 제작자이자 아내인 토머스와의 지적 파트너쉽이다. 토머스는 놀란의 비전이 자본의 논리에 흔들리지 않도록 수호하는 완벽한 실천이성이다. 프린스턴 연설에서 놀란이 "네 명의 아이와 아홉 편의 영화인지, 아홉 명의 아이와 네 편의 영화인지 헷갈린다"고 농담한 대목은 이들의 끈끈한 결속력을 대변한다. 이 파트너에게 영화를 잉태하는 고단한 노동과 생명을 길러내는 삶은 완전히 동기화되어 있다. 토머스가 자본가들의 압박과 행정적 소음을 최전선에서 차단하는 덕분에, 놀란은 스마트폰과 이메일조차 없이 극단적인 디지털 고립 속에서 본질에만 집중하는 요새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 부부가 설립한 제작사 '신코피(Syncopy)'는 거대 기업에 종속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현대판 오이코스(Oikos, 자급자족적 공동체)다. 그 이름의 어원인 '신코페(Syncope)'는 두 가지 심오한 뜻을 품고 있다. 의학적으로는 인간의 의식이 잠시 끊어지는 실신을 뜻하며, 이는 <메멘토>나 <인셉션>처럼 '인식의 단절과 붕괴'를 탐구하는 놀란의 핵심 주제를 상징한다. 음악적으로는 정상적인 박자의 흐름을 비틀어 엇박자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당김음이다. 관객의 감각을 교란하는 그 특유의 비선형적 서사 구조를 의미한다. 이름 자체에 "관객의 의식을 잃게 만들고, 시간의 리듬을 비틀겠다"는 야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다.
수억 달러의 예산을 다루는 신코피의 법적 상주 직원은 놀랍게도 단 4명(2018년 기준) 뿐이다. 토머스는 "우리는 제국을 건설하는 사람들(empire builders)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개별 영화 그 자체에 집중할 뿐입니다." 라고 말한다. 정작 가장 굳건한 제국을 건설하고 있는 이들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이 역설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거대 관료제의 비대함이 기동성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불필요한 중간 단계를 철저히 소거해 비대칭적인 효율성을 완성한 것이다.
이 오이코스의 물리적 실체가 바로 그 유명한 놀란의 '차고(Garage)'다. 화려한 대형 스튜디오의 회의실 대신, 놀란은 자신의 차고로 핵심 스태프 9명(이른바 'Big 9')을 불러모은다. 보안과 통제는 절대적이며, 거물급 투자자라 할지라도 대본을 보려면 핑계를 대지 않고 직접 이 차고로 걸어 들어와야만 했다. 차고 안에서는 미술, 음악, 각본 부서가 칸막이 없이 유기적으로 교감한다. 상주 직원이 4명뿐인 조직에서 부서 간의 바카라임 떠넘기기나 방어적 눈치 보기, 즉 마찰 비용(Friction cost)은 애초에 발생할 수 없다.
다루기 까다로운 IMAX 카메라로 서사시 <오펜하이머>를 단 57일 만에 완성해 낸 기적은 지휘관이 의사결정의 바카라임을 독점했기에 가능한 성취였다. 단 1분의 낭비도 허락하지 않고 스케줄을 밀도 있게 장악하기에, 그의 현장은 결코 늘어지는 법 없이 언제나 예정보다 일찍 끝이 난다. 지루한 대기 시간과 불필요한 체력 소모가 사라지자, 배우와 스텝들은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자신들의 모든 에너지를 오롯이 연기에만 폭발적으로 쏟아내며 이 극한의 몰입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이 소수의 코어 그룹이 극한의 기동성을 발휘하는 진정한 원동력은 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휘관의 철저한 '육체적 바카라임감'이다.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로벤(Chuck Roven)은 놀란을 가리켜 "자신이 하겠다고 뱉은 말을 그대로 실행해 내거나, 아니면 그러다 죽거나(kills himself trying) 둘 중 하나인 사람"이라 평했다.
이는 그의 독보적인 아날로그 미학에서 가장 선명하게 증명된다. 오늘날 할리우드에는 그린스크린 앞에서 연기하게 한 뒤 "나중에 CG로 덮으면 된다(We'll do it in post)"는 기조가 만연해 있다. 이는 치명적인 위기가 발생했을 때 "위원회를 꾸려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며 당장의 바카라임을 미래나 하위 조직으로 외주화해버리는 비겁한 관료주의와 정확히 닮아 있다. 그러나 놀란은 '인 카메라(In-camera, 실재하는 것을 찍는 방식)'와 '현장 동시녹음(No ADR)'을 고집한다. 나중에 CG라는 가상의 면죄부에 기대어 덧칠하지 않고, 지금 당장 카메라 앞에서 벌어지는 물리적 현실(Reality)을 100% 감당하겠다는 극단적인 자기 구속이다. "나중에 덮을 수 없다"는 이 제약은 모든 스태프가 남 탓을 할 수 없는 완벽한 단일 전선(Unified front)을 구축하게 만든다. 이는 지나간 1초 전으로는 결코 되돌아갈 수 없다는 시간의 비가역성, 즉 'Einmal ist Keinmal'의 실존적 무게와도 맞닿아 있다. 모든 컷을 대체 불가능한 단 한 번의 현실로 대함으로써, 그는 가벼운 변명조차 비집고 들어올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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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퇴로를 차단한 지휘관은 몸으로 헌신한다. 신작 <오디세이>(2026) 현장에서 놀란은 VIP 헬기를 타는 대신 스태프들과 함께 매일 1,000피트(약 300m)의 산길을 직접 걸어 올랐다. <덩케르크> 당시 기상 악화로 가라앉는 뱃머리에서의 촬영이 위험해지자, 배우의 등을 떠미는 대신 자신이 먼저 올라가 안전을 증명했다. 그의 현장에는 감독이 멀리서 지시를 내리는 비디오 빌리지도, 편안한 의자도, 스마트폰도 존재하지 않는다. 톰 홀랜드가 "크리스는 하루 종일 차만 마시는데 어떻게 화장실도 안 가는지 궁금하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그는 16시간 내내 현장을 지킨다.
동시에 그는 외부의 폭력으로부터 자기 사람을 완벽하게 지켜내는 거대한 방패다. 루피타 뇽오를 헬레나 역에 캐스팅하며 편견 어린 비난이 쏟아졌을 때, 그는 대중의 눈치를 보며 꼬리를 자르지 않았다. "아름다움이란 껍데기나 테크닉으로 연기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지닌 존재론적 아우라 그 자체다"라는 철학적 선언과 함께, "내 작품의 캐스팅은 내가 바카라임진다"며 십자포화 한가운데 버티고 섰다. 비난이 두려워 어제의 동지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권력자들과, 공격의 정중앙에 서서 자기 사람을 지켜내는 지휘관. 누가 진정으로 세계를 직조하고 타인을 이끌 자격이 있을까?
사실 놀란이 실천하는 이 'On Me 리더십'은 경영학의 혁신적인 통치술이 아니다. "자신이 하지 않을 일은 타인에게도 결코 시키지 않는다.'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도덕률, 즉 '황금률(Golden Rule)'이다. 칸트의 정언명령과 맞닿아 있는 이 지극히 뻔하고 당연한 윤리의 최저선이, 오늘날 대단한 리더십으로 추앙받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시대의 권력자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방증한다.
현대의 권력 시스템은 '지시하는 자'와 '고통받는 자'를 철저히 분리한다. VIP 헬기를 타는 자들은 1,000피트 산길을 오르는 자들의 진흙탕을 결코 밟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되어 있기에, 그들은 실패가 명백해져도 번들거리는 변명과 시스템의 탓을 하며 아무런 수치심조차 느끼지 못한다. 끔찍한 참사가 벌어져도 "몰랐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속 오디세우스는 맹목적인 목적(권력 유지)에 집착하느라 구성원들을 파멸로 몰아넣고, 국가와 시스템이 붕괴하는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 즉 승리자에게도 엄청나게 치명적인 희생을 강요해서 사실상 패배나 다름없는 상처뿐인 영광을 고집한 것이다. 놀란의 리더십이 조명을 받는 이유는 모두가 화려한 핑계 뒤로 숨어버린 시대에, 가장 원초적인 황금률을 자신의 몸을 던져 증명해 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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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2030 세대가 기득권 기성세대의 권위를 냉소하고 공동체를 불신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실패의 바카라임은 청년들에게 전가하고, 자신들은 안전한 VIP 헬기에서 절대 내려오지 않는 낡고 비겁한 민낯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성세대의 무바카라임만 탓하며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우리는 앞선 세대가 겪어보지 못한 고도의 문명과 기술적 이기를 역사상 가장 풍요롭게 누리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José Ortega y Gasset)는
<대중의 반역(The Revolt of the Masses, 1930)>에서 이렇게 썼다.
"진정한 고귀함(엘리트)은 자신이 누리는 권리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의무와 짐의 무게로 정의된다."
Nobility is defined by the demands it makes on us—by obligations, not by rights.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혜택 뒤에 숨어 누군가를 탓하는데 시간을 보내지는 말자. 부질없는 일이다. 우리가 현실 정치에서 단 한 번도 목격한 적 없는 그 '바카라임의 복원'을, 이제는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직조해 내야 한다. 관중석에 앉아 무능한 권력자들을 조롱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아레나의 전사(Man in the Arena)로, 기꺼이 1,000피트의 험로를 먼저 걷는 진흙탕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낡은 시대를 건너가는 자들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실존적 무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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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프린스턴 연설>
https://youtu.be/wOqYlCLmElM?si=34MPrm4tBlPzuU3c
<놀란 리더쉽 관련 언론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