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트린 분노 vs 여지를 두는 절제

byAltusSolum

어떤 몰락은 장엄한 비명보다 어리석은 소란 속에서 완성된다. 어제(8.26),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폐합을 논하기 위해 열린 국방부 공청회장이 정확히 그랬다. 국가 안보의 척추를 새로 짜는 거대한 수술대 위에는 차가운 이성 대신 분노만이 가득했다. 공청회 직후 쏟아진 기사들의 헤드라인은 약속이나 한 듯 '고성', '욕설, '난장판'과 '아수라장'으로 도배되었다. 그 공청회를 지켜보며 느낀 감정은 말그대로 참담함이었다.


일전에 '숙의 민주주의'에서 정바카라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기 전 공청회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적 당위성을 강조한 바 있다. 비록 순서가 뒤집히긴 했으나 이제라도 공청회가 열렸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 무대가 설계된 '함정'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예상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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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조급하게 서두르며 무리수를 둘 때, 명분과 논리적 우위는 온전히 그것을 반대하는 측에 주어지기 마련이다. 최근 국방부의 업무보고 자료를 보면, 80년 역사의 사관학교를 통폐합하는 중차대한 안보 과제가 병영 환경을 개선하는 일보다도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 게다가 최고 바카라임자인 장관은 불참했고, 단상에는 국방안보 전략가가 아닌 교육학자 등등이 앉아 “민간 대학보다 시설이 비참하다”는 말초적인 핑계만 댔다. 사관학교 통폐합의 진짜 이유는 국가안보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는점은 이미 명백하게 확인된 바 있다.


이 기만적인 촌극에서 가장 소름 돋는 비극은, 안보의 뼈대를 부수는 이 거대한 결정에 정작 그 결과를 짊어질 '바카라임'이 완벽하게 증발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훗날 안보에 치명적인 공백이 생겼을 때, "건물이 낡아서 합쳐야 한다"고 궤변을 늘어놓던 지식인들이나 뒤에 숨은 권력자가 과연 바카라임을 질까? 단상 위의 자칭 전문가들은 거친 정치적 목적을 궁색한 행정 논리로 덮어주며, 아무도 바카라임지지 않는 비겁한 대리전을 연출한 것뿐이다.


저들의 명분이 이토록 빈약하고 무바카라임하다면, 반대파는 당연히 이 판이 '분노를 유도하는 함정'임을 간파했어야 했다. 누군가는 국가 안보가 해체되는 위기 앞에서 한가하게 우아를 떨 때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맞다. 막스 베버의 통찰처럼, 정치와 권력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이다. 명분을 지키기 위해 전장에 나섰다면 우리 역시 기꺼이 진흙탕 속에 두 발을 담가야만 한다. 그러나 진흙탕에 들어간다는 것이,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뒹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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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버나드 쇼는 "돼지와 진흙탕에서 씨름하지 마라. 둘 다 더러워질 뿐이고, 무엇보다 돼지는 그걸 즐긴다.(Never wrestle with a pig. You both get dirty and the pig likes it.)“고 했다. 저들이 궤변으로 진흙탕을 만들어 도발할 때, 더더욱 가드를 바짝 올리고 차가운 이성의 날을 벼렸어야만 했다.

분노를 터트려버리면 통쾌할지는 몰라도, 눈앞에서 모든 명분은 타버리고 상황은 거기서 끝나버린다. 그러나 당장의 분노를 삼키고 절제하여 다음을 도모한다면, 저들의 궤변을 무너뜨리고 문제를 해결할 명백한 여지가 생긴다. 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전사의 덕목인 '기개(Thumos, 분노와 명예욕)'와 이를 제어하는 통치자의 덕목인 '절제(Sophrosyne)'의 충돌을 현대 한국의 맥락에서 재현한 것과 같다. 저들이 짜놓은 감정의 전장과 룰을 거부하고, 내 판에서 합리적이고 전문적인 논리로 궤변을 우아하게 박살 냈어야 마땅하다. 전쟁의 철칙은 적이 짜놓은 전장과 룰을 거부하는 데서 출발한다. 내 판에서, 내 명분으로 싸워야 승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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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반대파는 매번 권력이 교묘하게 파놓은 프레임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 상대가 그토록 원하던 '난동 부리는 낡은 기득권'의 역할을 충실히 연기하다 장렬히 전사한다. 단상을 점거하고 욕설을 뱉은 예비역들의 행동은 부끄러웠다. 군의 전문성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는 반드시 경청되어야 할 무거운 진실이었으나, 아무리 옳은 말도 싸우면서 하면 들리지 않는 법이다. 분노에 눈이 멀어 지성의 가드를 내린 대가는 스스로 쥔 황금 같은 우위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스스로 품격을 내던진 메신저를 믿어줄 대중은 없다.


이 비극의 또 다른 축은 철저한 '지식인의 반역'이다. 국가 안보의 근간이 흔들리는 이 중차대한 자리에 진짜 그 분야의 전문가급에 속하는 실력자는 정말 단 한 사람도 단상에 오르지 않았다. 권력이 고의로 배제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더라도,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지정석이 없다는 이유로 회피해선 안 된다. 방청석의 마이크를 쥐고서라도 저들의 기만을 학문적으로 분쇄하고 국가 안보의 도면을 대중 앞에 펼쳐 보였어야 마땅하다. 결국 그들이 비워둔 자리를 차지한 것은 정권의 입맛에 맞춰 도면을 위조해 주는 '폴리페서'들이었다. 심지어 생중계 현장에서 한 패널은 "처음엔 나도 반대했지만 정부의 뜻이니 받아들인다"는 식으로 말했다. 바람이 불기도 전에 먼저 누워버리는 이 알량한 지식의 용병들이야말로, 작금의 국가 시스템이 얼마나 기형적으로 오염되었는지를 증명하는 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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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란스러운 굉음 속에서 유일하게 빛난 것은 권력자도, 궤변가도, 예비역 장군도 아닌 1학년 생도의 담담한 목소리였다.


"장교는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워 아무리 잠자리가 불편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훈련을 받기 위해서 온 사람들입니다.

시설이 낙후됐다고 학교가 통합돼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이 청년이 보여준 고요한 멈춤이야말로, 진정한 군인이 딛고 서야 할 가장 깊고 단단한 바닥(Altus Solum)이다. 어른의 진짜 강인함은 생물학적 나이나 이력서의 줄 수, 혹은 단상 위에 놓인 학위증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자신이 짊어져야 할 '바카라임'을 기꺼이 끌어안는 묵직한 태도에서 비로소 증명된다. 국가 안보를 해체하면서도 아무도 바카라임지지 않으려 숨어버린 비겁한 어른들의 난장판 속에서, 바카라임의 숭고한 무게를 가장 정확히 이해하고 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막 제복을 입은 어린 생도였다.


단상 위의 어른들은 '낡은 시설'을 핑계로 국가의 척추를 허물며 바카라임을 회피했고, 단상 아래의 어른들은 통제하지 못한 분노에 휩싸여 스스로의 명분을 불태웠다. 이 얄팍한 궤변과 어리석은 감정싸움이 뒤엉킨 텅 빈 풍경은 국가의 성채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명백한 징후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를 지탱할 진짜 튼튼한 바닥이 저 어린 생도들의 발끝에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한 것은 그나마 희망적이었다.


우리는 결코 이 기만적인 권력과 무바카라임한 궤변가들, 그리고 통제력을 상실한 낡은 기득권에게 안보의 다음 도면을 맡길 수 없다. 이 어리석은 소란이 안보의 근간을 완전히 집어삼키기 전에, 우리는 흔들림 없이 가드를 바짝 올리고 두 눈을 부릅떠야 한다. 가짜 강인함을 연기하는 나약한 어른들의 시대를 끝내고, 기꺼이 바카라임을 감내하는 차갑고 단단한 이성의 바닥부터 다시 다져야 할 때다.




<국방부 자료>

<언론보도>

포털에 검색했을때 나오는 헤드라인을 한눈에 보아봤더니 이런 모습이다.



<1학년 생도의 언급을 확인할 수 있는 기사>

https://www.chosun.com/politics/diplomacy-defense/2026/08/27/GL42W3VQKFF6HAU5BFT6WJ5KUY/?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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