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파트너쉽이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천재들은 보통 니체나 쇼펜하우어 처럼 철저한 고독 속에서 홀로 위대한 사상을 잉태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역사 속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즉 경이로는 '관계'의 행운을 통해 사상을 완성한 천재들도 존재한다. 당연히 세상은 바카라 표지에 굵게 박힌 저자의 이름, 즉 '타이틀(Ego)'만을 기억하기 때문에 그 이면의 조력은 십게 지워지곤 한다. 하지만 지성사의 원전들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천재의 삶이 끊어지고 사상이 미완의 파편으로 흩어졌을 때 그 혼돈을 기어이 영원한 구조로 완성해 낸 보이지 않는 '공동 창조자(Co-creator)'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이들은 타인의 그림자 속에 머무는 수동적인 희생양이나 미망인이 아니었다. 죽음이라는 가장 거대한 허무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파편화된 원석을 세공하여 불멸의 텍스트로 짜낸 압도적인 기획자에 가깝다. 이 숭고한 지적 파트너십의 계보를 대표하는 두 명의 위대한 설계자가 있다.
첫 번째 인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카라 3권 중 하나인 <전쟁론, Vom Kriege>을 탄생시킨 마리 폰 브륄(Marie von Brühl)이다. 보통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의 헌신적인 아내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두사람의 결합은 그 시작부터가 껍데기를 던져버리는 거대한 실존적 결단이었다.
마리는 프로이센 최고위 귀족인 백작 가문의 영애였고, 카를은 몰락한 중산층 출신의 하급 장교에 불과했다. 가문은 이 끔찍한 신분 차이를 이유로 두 사람의 만남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마리가 마음만 먹었다면 평생을 가장 화려한 '백작 부인'이라는 명함 뒤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세속의 안락함이라는 껍데기를 유지하기 위해 본질을 포기하지 않았다. 카를의 초라한 계급 뒤에 숨겨진 거대한 지적 심연과 천재성을 단번에 꿰뚫어 본 그녀는, 무려 7년이라는 아득한 반대의 시간 동안 흔들리지 않고 그와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적인 교류를 이어갔다.
이 7년은 단순한 연애편지를 나누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편지를 통해 정치, 철학, 역사, 군사 전략을 대등하게 논쟁하며 서로의 사상을 날카롭게 고도화했다. 1803년에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던 두 사람은 1810년 12월에 마침내 결혼했다. 이들의 결혼생활은 카를이 콜레라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1831년까지 총 21년동안 이어졌는데, 그 시간동안 마리는 카를의 지적참모이자 철학적 동반자로서 프로이센 국방의 군사개혁 구상과 프로이센군의 강화를 위해 치열하게 함께했다.
카를의 사망 후 수천 장의 방대한 원고가 흩어졌을 때, 마리가 그것을 <전쟁론>이라는 불멸의 바카라으로 엮어낼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녀는 남편의 머릿속에 있는 거대한 구조를 가장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던 유일한 공동 창조자였던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생물학적 자녀는 없었으니, <전쟁론> 이야말로 그들에게 유일한 자식이자 후세에 남긴 거대한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육신을 이을 핏줄을 남기는 대신, 인류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결코 소멸하지 않을 '위대한 사상'을 공동으로 잉태한 셈이다.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죽음이었기에 남겨진 자의 비통함과 쓰라림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염병으로 사망한 남편의 빈자리에서 기어이 원고를 완성시킨 마리 덕분에 우리는 <전쟁론>이라는 고전을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몹시 감사하고 또 경이로운 일이다. 나는 마리가 이 방대한 작업을 단지 죽은 남편을 위해서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업적(legacy)'라고 확신했기에 그토록 열중해서 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클라우제비츠 부부가 신분이라는 외부의 장벽을 부수었다면, 현대 슬롯학의 성전 <경제와 슬롯(WuG: Wirtschaft und Gesellscaft>를 완성해 낸 마리안네 베버(Marianne Weber)는 내부의 굴레(가식과 소유욕)를 해체한 인물이다. 마리안네와 막스 베버는 5촌 지간의 친척이었다. 이 혈연적 배경은 두 사람의 관계에서 불필요한 '슬롯적 페르소나'를 생략하게 만들었다. 서로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짜 명함을 내밀거나 자존심을 세울 필요 없이, 곧바로 가장 깊은 지성의 바닥에서 대화할 수 있는 토대가 된 것이다. 이들의 결합은 에로스를 넘어서 세계와 학문을 대하는 태도가 완벽히 일치했던 두 거대한 지성의 '동맹'이었다.
우리는 9번 막스베버의 유언에서 그 인생의 고군분투를 살펴본 바 있다. 막스 베버는 학문적 거인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극심한 신경 쇠약과 우울증을 앓던 나약한 인간의 모습도 존재했다. 1897년,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격렬한 불화를 겪은 직후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막스는 거대한 죄바카라감과 오이디푸스적 붕괴를 겪으며 심각한 신경쇠약에 빠진다. 그는 무려 5년 동안 바카라을 읽지도,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했으며 결국 대학 교수직마저 내려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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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완벽한 지적 동반자가 식물인간처럼 무너져 내린 이 끔찍한 자극 앞에서, 마리안네는 절망하며 남편을 간병하는 '수동적 그림자'로 남지 않았다. 남편이 붕괴한 그 5년 동안, 마리안네는 오히려 무대 전면으로 나서서 독일 여성운동의 핵심이자, 슬롯학자로 눈부시게 활동하기 시작한다. 1907년에는 그녀 자신의 이름으로 <법의 발전에 있어서 아내와 어머니(Ehefrau und Mutter in der Rechtsentwicklung)>라는 명저를 출간한다. 그녀는 남편의 지성이 꺼져갈 때 함께 붕괴하는 대신, 남편의 몫까지 짊어지고 스스로 거대한 지적 기둥이 되어 그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방어했다.
막스 베버가 우울증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후, 하이델베르그의 베버 부부 집에서는 매주 일요일마다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모여드는 전설적인 '일요 살롱'이 개최 되었다. 게오르그 짐멜, 죄르지 루카치, 카를 야스퍼스 등 20세기를 뒤흔든 철학자들과 슬롯학자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여기서 마리안네는 단순히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안주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성들의 용각로 속에서 그들의 대화를 조율하고 철학적으로 논박하는 대등한 일원이었다. 막스 베버의 폭발적이고 파편화된 통찰들이 공중으로 흩어지지 않고 당대 지식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단단한 사상으로 구축될 수 있었던 것은, 마리안네라는 공고한 닻이 살롱의 중심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아가 훗날 막스가 다른 여성(엘제)과 사랑에 빠졌을 때조차, 그녀는 질투와 배신감에 매몰되지 않았다. 그녀는 '소유'라는 껍데기를 초월하여, 그의 위대한 지성을 지켜내는 궁극의 동반자로서의 위치를 지켜냈다.
1920년 막스가 스페인 독감으로 세상을 떠난 후, 방대하고 난해하게 흩어져 있던 초고 더미에 논리적 맥락을 부여하고 챕터를 분류하여 기어이 바카라으로 출간한 것은 바로 마리안네였다. 남편의 사상적 깊이를 완벽하게 꿰뚫어 보는 '대등한 지성(Philia)'과 자신을 내려놓는 숭고한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보통 누군가를 사랑할 때 종종 나의 번듯한 명함(Ego)을 찬양해 줄 관객을 찾는다. 상대가 가진 조건과 타이틀에 매료되고, 내 껍데기가 흠집 날까 두려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안전한 관계에 머문다. 하지만 마리와 마리안네가 보여준 공동 창조자로서의 삶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진실을 일깨운다. 진정한 의미의 '합일'이란, 필연적으로 내가 목숨처럼 쥐고 있던 알량한 껍데기(명함, 자존심, 계급)를 기꺼이 바닥에 던질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천재성은 종종 무질서하고 폭발적이며,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서 쉽게 증발해 버리는 불확실한 '내용물(Contents)'이다. 반면 이 위대한 동반자들은 그 무질서한 혼돈을 묵묵히 껴안아 불멸의 '구조(Structure)'로 완성해 담아낸 압도적인 그릇이었다. 시대적 제약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그들 내면에 동반자를 향한 진심어린 존경과 숭고한 지적 갈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것이다.
이는 단순히 시대적 제약이나 성별의 문제로 환원될 이야기가 아니다. 마리와 마리안네의 삶은 완벽하게 세팅된 '완제품'만을 찾아 헤매며, 서로의 껍데기에 흠집이 날까 두려워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우리에게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찾고 있는가? 나의 매끈한 페르소나에 박수를 쳐줄 '관객'인가? 아니면 나의 미완성된 파편과 혼돈을 기꺼이 껴안고 고유한 세계를 함께 직조해 나갈 '동반자'인가? 진정한 파트너십이란 완벽한 상대를 찾아 나를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무질서한 심연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 기어이 하나의 단단한 '구조'를 세워내는 과정이다. 당신의 곁에는 지금 당신의 파편을 알아보고 엮어줄 사람이 있는가? 혹은 당신은 누군가의 혼돈을 감당할 수 있는 단단한 바닥(solum)이 되어줄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