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 속의 침묵

by선비천사

기억은 때로 코끝에서 먼저 부화한다. 오십 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온 지금도, 그 시절 교정에서 나던 퀴퀴하고 시큼한 냄새가 선명하다. 보자기에 둘둘 말린 양은 도시락에서는 늘 김치 국물이 새어 나왔고, 그것은 소년들의 등 위에 붉은 지도를 그렸다. 그 냄새는 가난이 가르쳐준 최초의 체취였다. 가방이라는 단어조차 사치였던 시절, 우리는 저마다의 가난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사선으로 둘러메고 흙먼지 날리는 교실로 모여들었다. 그 척박한 교정에서 유독 이질적인 빛을 내뿜던 것이 있었다. 인천 사는 삼촌이 건네준, 매끄러운 플라스틱 뚜껑이 달린 필통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필기구를 담는 도구가 아니었다. 낡은 양철 필통들 사이에서 홀로 다른 빛을 내던 그 물건은, 어린 내가 세상에 내보일 수 있었던 가장 화려한 문명의 증명서였다.


사건은 그 찬란한 증명서가 자취를 감추면서 시작되었다. 수업을 준비하려 보자기를 풀었을 때, 손끝에 닿아야 할 차가운 감촉이 만져지지 않았다. 빈 보자기를 털어내던 내 손은 경련하듯 떨렸고, 입술에선 비명 같은 고발이 터져 나왔다. 순간 교실의 공기는 얼어붙었다. 칠판 앞 선생님의 눈빛은 서슬 퍼런 칼날이 되어 아이들의 보자기 속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쏟아진 몽당연필과 찌그러진 양철 조각들 사이에서 나의 자랑이던 그 필통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선생님은 예순 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모두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교실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고, 선생님은 엄한 목소리로 범인이 스스로 나서기를 재촉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의 얼굴에는 억울함과 불안이 짙어졌고, 범인을 찾지 못한 시선들은 하나둘 내게로 향했다. 나는 그 시선들이 무서워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면서도, 내 보물이 누군가의 비루한 보자기 속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 믿으며 스스로의 결백을 정당화했다.


해 질 녘, 친구들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열었을 때, 나는 그 자리에 화석처럼 굳어버렸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필통이 바카라상 한복판에서 나를 비웃듯 반짝이고 있었다. 아침의 망각이 빚어낸 그 참혹한 진실 앞에서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당장 학교로 달려가 용서를 구해야 했으나, 어린 나는 그 찬란했던 필통을 보자기에 싸서 골방 가장 깊숙한 어둠 속에 유폐시켰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마주해야 할 부끄러움보다, 예순 명 친구들의 그 원망 어린 시선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갈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필통은 내게 보물이 아닌, 열어서는 안 될 치욕의 상자가 되었다. 빛을 잃은 필통은 골방 구석에서 서서히 먼지를 뒤집어쓰며 노랗게 식어갔고, 나는 그 비겁한 침묵의 무게를 등에 지고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건너왔다.


이제 머리에 서리가 내려앉은 노인이 되어 문득 제 몸의 구석들을 만져본다. 비가 오거나 찬 바람이 부는 날이면 이유 없이 무릎이 시큰거리는 것은, 어쩌면 그날 영문도 모른 채 의심과 불안을 견뎌야 했던 친구들의 마음이 내 노년으로 전이된 것일지도 모른다. 끝내 누구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고, 담임 선생님도 이제는 지상의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매끄러운 플라스틱의 촉감을 마주할 때마다 목이 메는 부채감을 느낀다. 인간의 양심이란 얼마나 나약한 것인가. 오십여 년 전 그날, 차마 풀지 못하고 던져두었던 비겁한 보자기 꾸러미를 이제야 조심스럽게 풀어헤친다. 사라지지 않은 그 기억의 냄새 앞에서, 나는 이제야 그날의 긴 침묵을 받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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