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멍석은 생각보다 거칠었다

by선비천사

고향 저수지의 둑방은 이제 시멘트로 매끄럽게 발라져 있다. 예전의 흙냄새를 기대하며 발을 디뎠으나 구두 굽이 부딪히는 건조한 타격음만이 들려올 뿐이다. 언덕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곳에는 한때 나의 유년이었던, 그러나 이제는 타인의 소유가 된 옥수수 밭이 검은 물결처럼 흔들리고 있다. 바람이 불면 옥수수 잎들은 서로의 몸을 할퀸다. ‘서석서석’하는 그 소리는 다정한 속삭임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마찰음에 가깝다. 그 소란 위로 붉은빛이 천천히 내려앉는다. 이제 그것은 더 이상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었다. 하루가 저무는 흔적이자, 내가 끝내 건너지 못할 시간의 벽처럼 느껴졌다.


기억 속의 마당에는 멍석이 깔려 있었다. 흔히들 그 시절을 부드럽게 기억하지만, 내 등에 닿았던 멍석의 첫 감촉은 늘 까칠하고 따가웠다. 짚풀 끝이 살갗을 찌를 때마다 나는 몸을 뒤척였고, 그때마다 할머니의 무릎은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할머니의 부채질은 단순히 모기를 쫓는 손길이 아니었다. 그것은 후텁지근한 여름밤의 공기를 억지로 갈라내어 어린 손자에게 한 뼘의 생존 공간을 만들어주려는 치열한 노동이었다. 할머니의 마른 무릎에서 느껴지던 뼈마디의 단단함. 나는 그 위에 머리를 얹고서야 비로소 안심하고 잠들 수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바가지에는 김이 오르는 감자와 옥수수가 담겨 있었다. 솥의 그을음 냄새가 밴 그것들을 우리는 말을 아낀 채 씹었다. 옥수수 알갱이가 이빨 사이에서 터질 때마다 가난은 잠시 유예되었다. 뜨거운 감자를 이 손 저 손으로 바쁘게 옮겨 잡으며 누군가 "아 뜨거워라" 하고 웃음을 터뜨리면, 팽팽하던 침묵의 줄이 조금 느슨해지기도 했다. 우리는 말없이 옥수수를 씹으며 어둠이 식구들 사이로 스며드는 일을 늦추고 있었다. 옥수수 대를 훑는 투박한 손길들이 오가던 그 멍석 위에서, 나는 인생이 결국 무언가를 씹어 삼키며 견디는 과정임을 본능적으로 배웠다.


밤이 깊으면 하늘에서는 별똥별이 떨어졌다. 할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누군가 한 생을 다 살고 가는 모양이다"라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셨다. 찰나의 빛이 어둠 속으로 처박히는 광경은 어린 나에게 경외심보다는 공포를 주었다. 빛나던 것이 사라진 자리에는 더 짙은 어둠이 고였고, 할아버지의 옛이야기는 그 어둠 속으로 침잠하듯 낮게 가라앉았다. 이제 그 별똥별처럼 내 삶의 증인들은 모두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멍석은 삭아 없어졌고, 옥수수를 담던 바가지는 어디론가 굴러가 깨졌을 것이다. 고향은 이제 지도 위의 좌표가 아니라, 내 기억의 퇴적층 속에 화석화된 채 남아 있다.


하늘이 둥글게 도는 것은 순리가 아니라 냉혹한 반복이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나는 그 시간을 이기지 못한 채 이만큼 건너왔다. 이제야 나는 저수지 언덕에 서서 조각난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본다. 할머니의 뼈마디와 담배 연기, 옥수수 잎이 서로를 긁던 소리까지. 오래전 사라진 것들은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 선명해진다. 저수지의 물은 여전히 검고 깊다. 나는 그 깊이를 끝내 헤아리지 못한 채, 다시 구두 굽 소리를 내며 시멘트 길을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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