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착함에 지쳐 사람들을 멀리하게 된 어느 교사의 고백
새벽 다섯 시쯤이면 눈이 먼저 깬다.
나이가 들면 잠도 사람을 오래 붙들어 두지 못하는 모양이다.
베란다 문을 열면 소래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천천히 방 안으로 스며든다. 축축한 흙냄새와 나무 냄새가 섞인 그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으면, 세상이 아직 완전히 나를 밀어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아직 안방에서 자고 있고, 복도 끝에서는 신문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희미하게 지나간다. 그 시간의 아파트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사람들은 잠들어 있는데 냉장고 모터 소리와 보일러 물 흐르는 소리만 벽 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나는 커피포트에 물을 올려놓고 습관처럼 휴대전화를 뒤집어 둔다.
밤새 전화가 두 통 와 있었다.
한 사람은 퇴직한 동료 교사였고, 다른 한 사람은 오래전 담임을 맡았던 제자였다. 이름만 봐도 얼굴이 떠오르는 반가운 사람들이지만, 이상하게도 바로 전화를 걸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안부를 묻고, 상대 이야기를 듣고, 괜찮다는 말을 몇 번쯤 건네고 나면 하루의 기운이 절반쯤 빠져나갈 것을 나는 안다.
언젠가부터 나는 사람의 안부가 조금 버거워졌다.
삼십이 년 동안 교단에 있었다.
봄이면 아이들 체육복에서 햇볕 냄새가 났고, 장마철이면 교무실 창틀마다 눅눅한 비 냄새가 맴돌았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피는 교사였다. 젊은 교사들이 난처한 일을 만나면 “내가 하지 뭐” 하고 웃었고, 누가 부탁하면 웬만해서는 거절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두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 말을 꽤 좋아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감각. 함께 있으면 편안한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안도감. 어쩌면 나는 착한 사람 이어서라기보다,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애써왔는지도 모른다.
회식 자리에서도 늘 내가 먼저 계산대 쪽으로 걸어갔다.
“선생님 또 그러신다.”
사람들은 웃었고, 나도 웃으며 지갑을 열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속으로는 누가 한 번쯤 내 손목을 붙잡아주길 바랐던 것 같다. “오늘은 제가 내겠습니다” 하고 말해주길 기다렸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익숙해진다.
늘 베푸는 사람 곁에서는 받는 일이 점점 자연스러워진다.
한겨울 야간자율학습이 끝난 늦은 밤이었다.
한 학생이 교무실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부모님이 이혼한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는 울지 않았지만 손끝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자판기 커피를 두 개 뽑아 운동장 스탠드에 나란히 앉았다. 아이는 두 시간 가까이 자기 이야기를 쏟아냈고, 나는 별말도 못 한 채 듣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그 아이를 위해 그 자리에 있었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
그날 밤 나는 오래 잠들지 못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 마음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선의라고 믿었던 마음속에도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고, 희생이라 여겼던 행동 뒤에도 버려지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숨어 있다.
지금 와 돌아보면, 나는 남을 돕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착하다는 평가를 먹고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쉽게 지쳤는지도 모른다.
퇴직하던 날, 빈 교실에 혼자 남아 한참 앉아 있었다. 칠판에는 날짜가 덜 지워진 채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창틀 밑에는 누가 먹다 버린 초코우유 팩 하나가 구겨져 있었다.
교탁 위에 손을 올려보니 오래된 나무 표면이 손바닥처럼 미지근했다.
그 순간 이상하게 슬프지는 않았다.
다만 오래 입고 살던 옷을 벗는 기분이 들었다. 몸에 잘 맞지 않았는데도 끝내 벗지 못했던 옷.
퇴직 후 한동안은 사람들을 일부러 멀리했다.
전화벨이 울리면 바로 받지 못하고 한참 바라만 보았고,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 며칠씩 답을 미뤘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온 밤이면 이상하게 기진맥진했다. 상대는 가볍게 돌아갔겠지만, 나는 누군가 내 안의 물을 전부 퍼가버린 것처럼 소파에 기대어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서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저녁 무렵 소래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벤치마다 노인들이 앉아 있다. 어떤 이들은 병원 이야기를 하고, 어떤 이들은 자식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들 곁을 지나치면서도 좀처럼 가까이 앉지 못한다.
사람은 외로운데, 또 사람에게 지친다.
그 모순을 늙어서야 배운다.
오래 전 아내가 무심히 말했었다.
“당신은 평생 남 눈치 보며 살았어요.”
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괜히 창밖만 바라보았다. 베란다 유리창에 내 얼굴이 희미하게 비쳐 있었다. 순간 낯선 노인이 한 사람 서 있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한 번도 제대로 거절하며 살아본 적이 없다. 싫다는 말 대신 괜찮다는 말을 먼저 배웠고, 마음이 무너지는 날에도 상대 기분부터 살폈다.
그런데도 아직 완전히 달라지지는 못했다.
며칠 전에도 결국 부탁 하나를 또 거절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숨이 나왔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은 조금 따뜻했다. 누군가 아직도 나를 찾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는 그 순간 알았다.
사람은 상처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평생 붙들고 살아온 결핍으로도 살아간다는 것을.
창밖이 조금씩 밝아온다.
소래산 능선 위로 희미한 빛이 번지고, 화단의 철쭉 잎마다 새벽 물기가 매달려 있다.
나는 식어버린 커피를 천천히 마신다.
그리고 뒤집어 두었던 휴대전화를 다시 바로 세운다.
잠시 망설이다가, 밤새 걸려온 번호를 조용히 눌러본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완전히 단단한 사람은 되지 못할 것이다.
여전히 누군가의 부탁 앞에서 마음이 흔들릴 것이고, 가끔은 또 스스로를 소모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다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착하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 일이 아니라,
지쳐 있는 자기 자신을 끝내 버리지 않는 일에 더 가깝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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