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밑을 스치는 고양이의 굽은 등줄기
할퀴고 간 자국마다
비릿한 생의 냄새가 집요하게 고여든다
꽃이 핀다는 것은
입이 아니라
삼키기 위해 열리는 상처다
잉잉거리는 날개의 비명이
꽃의 검은 속으로 압사당한다
겹겹의 붉은 살점을 한 장씩 발라내면
손바닥 아래에서 끓어오르는
그늘이 만져진다
아파트의 사각들이 동시에 불을 밝히는 초저녁
꽃병에 박힌 빨간 얼굴은
글자판 위를 달아나는 손가락을 응시하고
전화기는 침묵을 끌어당긴다
꽃잎은 조용함의 가장자리를 물어뜯는다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온 선혈이
꽃병의 물을 갈아치우는 방
주사기 속에 맺힌 차가운 투명도가
복도의 소름 돋는 평화를 가로지른다
샛문 너머로 웃음소리를 흘리며
붉은 낙인을 머리에 단 여자가 사라진 뒤
찢어진 장미처럼
노을이 하늘을 밀어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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