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밟고 올라간다

- 담쟁이의 기록

by선비천사

내 등줄기엔 전지가위가 살지 않는다

어깨너머 접힌 도요새의 날개 한 짝

부러진 깃마다 무거운 저녁이 고일 뿐


흰 가운의 손길이

서늘한 깃털의 떨림을 빛으로 훑고 가면

잠들었던 정맥들은 푸른 비늘을 세우며 일어선다


이곳은 수직의 절벽

흩어진 신경의 가닥들을 그러모아

바람벽의 흔적을 필사하는 여윈 갈고리들


핏줄 속에 갇힌 검붉은 허기 위로

노린재 떼 달라붙어 생을 갉아대지만

뿌리는 제 몸을 태워 가장 먼 마디를 밀어 올린다


부식된 등뼈에서 뼛가루 날리는 저녁

나는 나를 딛고

허공을 향해 조용히 근육을 뻗는다




작가 메모

담쟁이는 늘 벽을 오르는 식물로만 보였다.

어느 날 문득, 그것이 벽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딛고 자라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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