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상 위에 펼쳐진 2000년의 지면은 박제된 시간의 무덤이다. 사반세기의 먼지를 털어내자 그곳엔 ‘15도’라는 기하학적 숫자에 갇힌 육체들이 즐비하다. 누군가의 가슴은 상향으로 치켜 올라가야 했고, 누군가의 엉덩이는 탄력 있게 하늘을 향해야 했다. 숫자로 환산된 미학, 그 자로 잰 듯한 찬사들은 날카로운 메스가 되어 살아있는 사람의 형체를 조각내어 전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이 폭력이라는 사실을 거의 자각하지 못했다. 그저 탐욕스러운 시선의 공범으로 남아 있었을 뿐이다. 잉크 냄새 진하던 잡지를 넘기며, 우리는 살아 있는 타인을 부위별로 도려내어 소비했다. "신이 빚었다"는 극찬은 역설적으로 그들을 인간의 반열에서 지워버리는 낙인이었다. 각도가 완벽할수록 인격은 소거되었다. 탄력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의 고독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조용히 접혀 있었다. 15도의 각도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견뎌냈을 숨 가쁜 코르셋을, 우리는 미처 읽어내지 못했다.
문득 내 손바닥을 내려다본다. 잡지 속 여배우들의 팽팽한 시간 위를 더듬는 내 손등에는 어느새 갈색 검버섯이 검은 별처럼 돋아 있다. 그 별들은 한때 내가 부러워하던 화려한 별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빛을 낸다. 그것은 소멸을 받아들인 자들에게서만 나오는 빛이다. 종이는 누렇게 바래어 푸석거리고, 한때 ‘예술’이라 칭송받던 그들의 각도 역시 세월이라는 중력에 이끌려 땅을 향해 완만하게 눕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추락인가, 아니면 귀환인가.
중력은 정직하다. 높이 치켜들었던 것들을 낮은 곳으로 불러 모은다. 15도의 오만을 꺾고, 36 사이즈의 허영을 지워내며, 삶은 비로소 ‘각도’가 아닌 ‘밀도’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잡지 속 여배우들이 가졌던 그 찬란한 부위들은 이제 사라졌을지 모르나, 그들이 온몸으로 밀어낸 26년의 시간은 눈가의 주름 속에 깊은 골짜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 골짜기야말로 어떤 신도 함부로 빚어낼 수 없는, 오직 스스로 살아낸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훈장이다.
나는 이제 이 낡은 기사들을 비판하는 대신, 그 시절의 문장들이 놓친 것들을 애도하기로 한다. 문장은 "앞단추가 터질 듯하다"며 외형의 팽창만을 기록했지만, 그 단추를 채우며 그들이 삼켰을 비애와 적막의 무게는 적지 않았을 것이다. 수필은 지워진 행간을 메우고, 무너진 각도 위에 돋아나는 영혼의 높이를 발견하는 일이다.
잡지를 덮자 먼지 냄새가 비릿하게 코끝을 스친다. 15도의 계절은 갔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땅과 평행을 이루는 0도의 시선이다. 추켜올릴 것도, 과시할 것도 없는 평평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니, 부위별로 나뉘었던 인간들이 비로소 하나의 온전한 숲으로 보인다.
이 0도의 수평은 타인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시선이자, 나 자신을 더는 몰아붙이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이란 결코 박제될 수 없는 무엇이다. 그것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팽팽했던 시절을 지나 느슨하게 풀어지는 그 흐름 속에 비로소 깃든다. 낡은 잡지 한 권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소멸의 슬픔이 아니라, 무너짐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존재의 투명한 민낯이었다.
오늘 밤, 나는 내 늙은 육신의 무뎌진 각도들을 가만히 다독인다. 한때 15도를 꿈꿨던 모든 헛된 욕망들에게 작별을 고하며, 나는 비로소 중력의 품 안에서, 가장 안락한 수평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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