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얼굴들의 저녁

by선비천사

축제가 빠져나간 거리는 얇아진다

보도블록 위에 찢겨 내린 얼굴들이

무심한 구두굽에 밟히며

마른 비명 대신 가을의 입자처럼 구른다


반쯤 뜯겨 나가 허공에 매달린 귀퉁이가

바람의 지문(指紋)을 읽는 동안,

벽에 남은 상반신들은 제 발치에 떨어진

제 얼굴의 파편들을 고요히 내려다본다

훼손되지 않는 미소만이 시선의 높은 곳에서 눈부시다


광장에서 불끈 쥔 주먹으로

저마다의 정의에 뜨겁게 취해 있던 손들,

골목으로 흩어져 돌아간 식탁 위

낮 동안의 맹세는 부글거리는 찌개 냄새 속에서

금세 가벼운 수다로 풀어진다


이긴 자의 신념이 거리를 독식하고

지워진 자의 이름이 먼지의 보폭으로 바래어 갈 때


아무도 남지 않은 골목길,

펄럭이는 종이 미소만이

끝내 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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