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캔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기억은 코끝에서부터 복원된다. 마트 진열대에 줄지어 선 함석 캔들 앞에 서면 50년 전 강화도 구리포 방죽의 노을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비릿한 꽁치 통조림의 향기. 반세기를 건너온 그 냄새는 여전히 내 의식의 예민한 층위에 빗금을 그으며 살아 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일곱 살의 나에게 세상은 온통 수렵과 어로의 무대였다. 아버지와 동네 어른들이 구리포로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는 소식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나는 기어코 어른들의 투박한 보폭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신작로를 따라 한 시간 반을 걷는 동안 발바닥이 달아올랐으나, 은빛 비늘의 축제를 생각하며 버텼다.
방죽에 도착한 어른들은 가차 없이 물속으로 하반신을 밀어 넣었다. 투망이 낙하할 때마다 붕어와 메기들이 뭍으로 끌려 올라왔다. 나는 둑 위에서 생동하는 비늘들을 지켜보며 어른들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축제가 길어질수록 일곱 살의 육체는 빠르게 방전되었다. 햇볕에 달궈진 습한 공기와 허기는 서서히 고통으로 변해갔다.
어른들의 노동이 끝난 곳은 방죽 어귀의 작은 슈퍼 앞이었다. 평상 위에 막걸리 주전자가 놓이고,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통조림 한 캔이 입을 벌렸다. 캔이 열리자마자 누런 기름이 번졌다. 그 냄새였다.
어른들은 막걸리 사발을 부딪치며 침묵 속에 안주를 씹었다. 붉은 양념이 밴 꽁치 살점이 어른들의 입속으로 사라질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끝내 내 입술에 닿는 온기는 없었다. 아이가 상전인 지금과는 대척점에 있던 시절이었다. 평상 위의 위계는 엄격했고 어른들의 피로는 아이의 갈증보다 우선이었다.
그날 나는 평상 밑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발끝만 내려다보며 고소한 증기만을 호흡할 뿐이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유난히 말이 없었다. 그 무거운 침묵이 어린 마음에는 서운함으로, 배고픈 육체에는 지독한 결핍으로 새겨졌다.
50년이 흘러 꽁치 통조림은 흔하디 흔한 식재료가 되었다. 이제는 안다. 그날 아버지가 건네지 못한 것은 꽁치 한 토막이 아니라, 당신의 고단한 생을 버티게 하던 최소한의 보상이었음을. 삶이라는 방죽에서 그물이 찢기도록 자맥질하던 사내들에게 통조림 한 캔은 음식이 아니라 내일을 견디게 하는 연료였다.
가끔 스스로 통조림을 따서 그릇에 담는다. 냄새는 여전하지만, 구리포의 그 절실했던 향기는 복원되지 않는다. 일곱 살의 내가 평상 밑에서 배웠던 것은 소외의 슬픔이 아니라, 간절히 원하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는 법이었다.
구리포의 노을은 여전히 내 곁에 붙어 있다. 텅 빈 캔 안에는 채워지지 않는 기억이 고여 있고, 나는 그 허기를 동력 삼아 오늘을 산다. 그날의 결핍은 아직도 그 캔 안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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