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회화수업 #3 날씨가 미쳤으면 내가 반짝이면 돼


날씨가 미쳤으면 내가 반짝이면 된다



세 번째 영어회화 수업 날.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검은 카고 팬츠에 실버 반짝이 셔츠.

발에는 왕진주알 여섯 개가 달린 하이힐.


오늘도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자신의 반짝이는 셔츠를 가리키며 말했다.


“I need to be in glitter today.”


날씨가 너무 crazy해서 오늘은 반짝이는 옷을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덧붙였다.


“To lift my spirits.”


기분을 끌어올리려고.


나는 그 말이 재미있어서 선생님의 옷을 다시 한번 봤다.


날씨가 궂어서 기분이 가라앉는다면,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대신 자기가 반짝여버리는 사람.


생각해 보니 참 이 선생님다웠다.



선생님을 처음 본 것은 지난 학기였다.


그때는 이 수업을 들은 것도 아니었다.


교실을 잘못 찾아 들어갔다.


아무 생각 없이 자리에 앉았는데 바카라상 위에 영어 프린트물이 놓여 있었다.


어라?


그제야 교실을 잘못 찾아왔다는 걸 알았다.


엉거주춤 일어나는데 선생님이 나를 보고 영어로 뭐라고 말을 걸었다.


블라 블라.


나는 알아듣지도 못하고 당황해서


“Excuse me.”


였는지,


“I’m sorry.”


였는지 한마디를 남기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아주 잠깐 머물렀을 뿐인데 이상하게 선생님은 기억에 남았다.


교실에서는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선생님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던 영어회화 강사와는 사뭇 달랐다.


한번 보면 잊기 어렵고 어디에 있어도 눈에 확 들어오는 사람.


솔직히 첫인상은 이랬다.


압구정 날라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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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뒤, 나는 그 선생님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


첫 수업 날부터 역시 범상치 않았다.


청 뷔스티에에 청 플레어 미니스커트, 웨스턴 부츠.


옆에 앉은 짝꿍이 내게 슬쩍 속삭였다.


“선생님이 좀 특이하신 것 같아요.”


나는 웃었다.


“저는 지난 학기에 이미 경험했어요.”


선생님은 사람들이 종종 자신을 댄스 강사로 안다고 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말했다.


“I have two left feet.”


나는 몸치예요.


그 차림으로 그런 말을 하니 더 재미있다.



다음 시간에는 핫핑크 롱 팬츠를 입고 나타났다.


상의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바지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 수강생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선생님, 그런 옷은 어디서 사세요?”


선생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링크 보내드릴게요.”


교실에 웃음이 터졌다.


몇 번 수업을 듣고 나니 알게 된 것이 있다.


처음에는 그저 화려하고 조금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선생님,


가르치는 데 진심이었다.



수업 전날이면 어김없이 문자가 온다.


Don’t tell me you can’t make it.


못 온다는 말은 하지 말라는 선생님.


수업에서는 프린트물을 나눠주고 팝송을 틀고, 학생들이 영어를 한마디라도 더 입 밖으로 내게 하려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발음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말하고, 노래하고, 몸짓까지 동원한다.


숙제도 만만치 않다.


다이얼로그를 쉰 번씩 읽어오라고 한다.



처음에는 화려한 외모가 먼저 보였다.


그런데 수업을 들을수록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려한 것은 옷뿐만이 아니었다.


수업에 쏟는 에너지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다시 세 번째 수업 날.


실버 반짝이 셔츠에 왕진주알 여섯 개가 달린 하이힐을 신은 선생님이 말했다.


“To lift my spirits.”


나는 그날 영어 표현 하나를 제대로 기억했다.


Lift my spirits.


기분을 북돋우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기분이 좋아질 만한 일이 생기기를 기다릴 때가 많다.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고,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다리고,
누군가 나를 기분 좋게 해 주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선생님은 기다리지 않았다.


날씨가 엉망이면 반짝이는 셔츠를 입는다.


그것도 모자라 왕진주알 여섯 개쯤 달린 하이힐도 신는다.


기분은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내가 끌어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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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영어 표현 하나와 함께 꽤 괜찮은 방법 하나를 배웠다.


날씨가 미쳤으면
내가 반짝이면 된다.


To lift my spirits.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