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는 예고편이 다 했다는 말을 듣는다.
바카라도 그렇다.
어떤 바카라은 제목이 다 하고, 어떤 바카라은 목차가 다 한다. 특히 자기계발서는 제목만 읽어도 바카라의 절반쯤은 읽은 것 같은 경우가 있다.
그런데 또 제목에 넘어갔다.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온 바카라은 네 권이다.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
《꾸준함을 기르는 일》
《딱 1년만 미쳐라》
《도덕감정론》
나란히 놓고 보니 제법 비장하다.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고, 꾸준함을 기르고, 딱 1년만 미쳐본 다음 도덕적인 인간까지 되어야 할 것 같다.
물론 그런 결심을 하고 고른 것은 아니다.
헤세의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세상이 아름다워서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미친 것 같은 세상과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헤세라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인간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리고 판단하는지 궁금해서.
그런데 집에 와서도 자꾸 눈이 가는 것은 나머지 두 권이었다.
《딱 1년만 미쳐라》와 《꾸준함을 기르는 일》.
생각해보니 이유가 있었다.
요즘 나는 영어에 딱 1년만 미쳐볼 생각이다.
영어를 오래 공부했고 가르친 적도 있지만, 말하는 영어는 여전히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1년을 작정하고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1년 동안 무언가에 미친다는 것은 매일 열정적으로 달리는 일이 아닐 것이다.
하고 싶지 않은 날에도 하고, 별로 늘지 않는 것 같은 날에도 하는 것.
그러려면 결국 꾸준함이 필요하다.
한 권은 미치라고 하고, 한 권은 꾸준하라고 한다.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였는데 내게는 같은 이야기였다.
미치는 것은 결심이고,
꾸준함은 그 결심을 데리고 가는 일.
자기계발서를 고르는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일 것이다.
답을 몰라서라기보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말을 다시 듣고 싶어서.
읽은 바카라은 지나온 나이고,
읽지 않은 바카라은 앞으로의 나다.
그리고,
지금 고르는 바카라에는 현재의 내가 들어 있다.
오늘의 나는 딱 1년만 미쳐보고 싶고, 그 1년을 꾸준히 살아내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니 또 제목에 넘어간 것도 나쁘지 않다.
지금 내게 필요한 말을 골라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