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회화 수업에서는 매시간 액티비티(activity)를 한다.
선생님이 작은 쪽지를 하나씩 나눠준다.
쪽지에는 질문이 하나 적혀 있다.
한 사람을 찾아가 질문하고 대답을 들은 뒤 서로 쪽지를 바꾼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간다.
그날 내가 들고 있던 질문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Are you happy today?
오늘 행복하세요?
나는 교실에 있던 한 남성분에게 물었다.
예순은 훌쩍 넘어 보이는 분이었다.
그분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Yes, I am.”
그러고는 덧붙였다.
“Every day. Always.”
나는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Really?”
그분이 웃었다.
매일 행복하다는 게 그렇게 믿기지 않느냐는 표정이었다.
나 역시 평소에는 내가 꽤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그런데 누군가 눈앞에서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 매일 행복해요.”
라고 말하니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
정말 사람이 매일 행복할 수 있나?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는데도 그 짧은 대화가 자꾸 생각났다.
그분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나는 모른다. 많이 아팠던 적이 있는지, 큰일을 겪었는지, 아니면 원래 삶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분의 얼굴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의 가치를 이미 한 번쯤 제대로 알아버린 사람의 얼굴 같다고.
물론 순전히 내 상상이다.
어쩌면 내가 그런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몸이 아프거나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평소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하루가 갑자기 간절해진다.
아무도 아프지 않고,
별일 없이 밥을 먹고,
각자 자기 일을 하고,
무사히 하루가 끝나는 것.
평소에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저 아무 일 없는 하루라고 부른다.
그러다 무슨 일이 생기고 나서야 알게 된다.
아무 일 없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이었는지를.
요즘 나는 글을 많이 쓴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글을 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기보다, 죽을 때까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쓰고 싶다는 마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이 살고 싶다는 마음과 거의 동의어다.
아직 궁금한 것이 있고,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고, 오늘 본 것을 내 식대로 써보고 싶고, 내일도 또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은 아직 세상에 궁금한 것이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 역시 내가 원한다고 언제까지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몸이 아파 글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쓰고 싶은 의욕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더 가혹한 일도 있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리는 것.
내가 글을 좋아했다는 사실도,
문장 하나를 붙들고 오래 고민했다는 것도,
쓰고 싶어서 마음이 들뜨던 순간도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올 수 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지금이 갑자기 다르게 보였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문장으로 만들 정신이 있다.
키보드를 두드릴 손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가끔 조회수가 적다고 속상해한다.
왜 내 글은 사람들이 많이 읽지 않을까.
왜 팔로워는 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참 배부른 고민이다.
조회수를 걱정할 수 있다는 것은 우선 글을 썼다는 뜻이다. 팔로워를 아쉬워한다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쓰고 싶다는 뜻이다.
쓸 수 있으니까 하는 고민이고,
쓰고 싶으니까 생기는 욕심이다.
그날 영어회화 시간에 받은 질문은 아주 쉬웠다.
Are you happy today?
Yes나 No만 대답하면 되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뒤에도 나는 한참 동안 그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다.
다시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이번에는 조금 덜 망설일 것 같다.
Are you happy today?
Yes, I am.
아직 쓰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