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수술을 받고 투병을 시작하던 날부터 나는 세상의 스위치를 꺼버렸다. 친정 식구들과의 연도 내 손으로 직접 끊어냈다.
내게는 단 하나의 집착 어린 소망이 있었다.
'완벽하게 완치되고, 경제적으로도 크게 성공해서 당당하게 금의환향하리라.'
내 완벽하지 못한 몸과 초라한 처지를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를 스스로 고립시키는 것만이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패라고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완치는커녕 몸에는 장애가 남았다. 설상가상으로 시작했던 투자는 실패로 이어져 나락 끝까지 떨어질 뻔하다 겨우 구사일생으로 목숨만 건졌다. 뒤이어 찾아온 잇따른 소송과 법적 싸움, 그리고 온라인 게임에서 계속된 승진 탈락.
수술 후 2년이 지나서야 시댁에도 내 상태를 겨우 알릴 수 있을 만큼 나의 고립은 깊어졌다. 연락이 끊긴 어두운 방 안에서 나는 매일 다짐하듯 생각했다.
'세상도, 가족도, 결국 나를 다 버렸구나.'
사실은 나 스스로가 모든 문을 닫아걸고 열쇠를 던져버린 것이었음에도, 나는 세상에 버림받았다는 피해의식 뒤로 숨어버렸다.
그 절망의 터널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몸부림쳤다. 회사에서 버텨내기 위해 장애 등록을 했고, 피나는 싸움 끝에 공무상 재해(공상)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 처절했던 기록들을 하나씩 글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버텨내는 것이 곧 살아가는 것이었던 나날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의 부고 소식과 함께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몇 년 만에 만난 장례식장. 두려움과 미안함, 그리고 초라함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내 앞에 엄마와 언니, 오빠가 다가왔다. 차가운 비난이 돌아올 것이라 각오했던 나에게 그들이 내민 것은 거친 손과 눈물이었다.
"우리는 한 번도 너를 잊은 적이 없어."
그 한마디에 내 안의 단단했던 고립의 벽이 허물어졌다. 나만 홀로 버려진 채 싸우고 있다고 믿었던 그 길고 어두운 세월 동안, 가족들은 문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스스로 문을 잠그고 서성일 때도 그들은 그 자리에서 나를 잊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완치된 모습도, 성공한 금의환향도 아니었다. 상처 입고 장애를 안은 채 돌아온 나를 가족이라는 이름은 아무런 조건 없이 다시 안아주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겨준 가장 큰 선물은 어쩌면 이 재회였는지도 모른다. 홀로 외롭게 싸우던 나에게 "이제 그만 돌아와도 된다"라고,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해주기 위해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의 손을 다시 잡아주신 것이었다.
성공해야만 돌아갈 수 있는 곳은 집이 아니었다. 어떠한 모습으로 돌아와도 손을 잡아주는 것, 그것이 바로 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