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연휴가 지나고 맞이한 월요일 아침,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 도착했다.
돌아보면 며칠 전부터 신호 같은 잔상이 이어졌다. 밤마다 가위에 눌려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고, 새벽녘 화장실에 가던 딸아이는 거실 소파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라 눈을 비볐다고 했다. 다시 보았을 때 그 형태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 무렵 나는 생전 처음으로 집에서 직접 육개장을 끓였다. 주말 내내, 그리고 그다음 날까지 식구들과 육개장을 나눠 먹었다. 장례식장의 대표적인 음식인 육개장을 하필 그 타이밍에 직접 끓여 먹었다는 사실은, 부고를 접한 뒤에야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잔상으로 남았다.
아버지는 40대 중반에 당뇨 합병증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하셨다. 이후 오랜 세월 동안 투석을 받으며 수없이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드셨다. 힘겨운 투석을 포기하려 하셨다가도, 다시 삶의 의지를 다잡으며 "의족을 다시 맞추고 싶다"라고 말씀하시던 분이었다. 삶에 대한 아버지의 집착과 의지는 늘 위태로우면서도 강렬했다.
그러나 나와 아버지의 시간은 5년 전, 나의 뇌종양 수술과 함께 멈춰 버렸다.
나는 스스로에게 약속했었다. 완치 판정을 받고 건강한 모습이 되면 그때 아버지를 찾아뵙겠노라고. 완벽한 모습으로 서지 못한다면 만남을 유예하는 것이 맞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나는 완치에 도달하지 못한 채 장애 판정을 받았다.
결국 내가 다짐했던 '완치 후의 만남'은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조건이 되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장애를 얻은 나의 몸도, 수십 년간 병마와 싸우다 떠난 아버지의 삶도 모두 현실이었다. 미루어둔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고, 끝내 완치된 상태로 아버지를 만나겠다는 나의 다짐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남아버렸다.
아버지가 견뎌온 투석의 시간과, 내가 버텨온 병상의 시간.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병과 싸우던 우리는 결국 완벽한 모습이 아닌, 상처 입은 모습 그대로 장례식장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