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공단에서 날아온 통지서를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병원 방문 일자만 빽빽하게 기재된 승인 목록이었다.
몸을 추스르고 재활하기 위해 내가 낸 질병휴직 기간은 총 3개월.
하지만 공단이 인정해 준 공무상 요양 기간과 나의 3개월 휴직 기간이 겹치는 '교집합'은 고작 4일에 불과했다.
3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는 매일 의사의 처방약을 복용하며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행정의 눈에는 내가 실제로 요양한 3개월의 시간표 대신, 처방전을 받거나 수술과 검사를 위해 직접 병원을 찾은 '단 4일'의 점들만 보였던 모양이다.
손에 쥔 승인 통지서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국가가 나의 고통과 상처를 공무상 재해로 인정해 주었다는 사실만큼은 고마운 일이다. 내가 겪은 시련이 한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공무를 수행하다 얻은 훈장 같은 아픔이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인정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약 처방을 통해 진료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버텨온 수많은 날들은 공단의 심사표 위에서 손쉽게 사라졌다. 눈에 보이는 병원 방문 일수만이 인정 대상이었고, 그 약을 먹으며 일상을 견뎌낸 나머지 수개월의 날들은 행정의 편의 뒤로 밀려났다.
이내 생각이 여기에 도달한다.
'행정이란 본래 그런 거지.'
개인이 겪은 삶의 무게와 고통의 깊이를 행정이라는 기계적인 시스템이 100% 온전하게 담아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제도는 정해진 서류와 눈에 보이는 규격으로만 세상을 재단하기 때문이다.
3개월 중 고작 4일이라는 쪼개기식 승인은 소속 기관의 복무 시스템에서도 매끄럽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인사담당자는 한숨을 쉬며 메일을 보내왔다.
"질병휴직 기간 중 드문드문 4일만 공무상 질병휴직으로 바꾸면 인사기록카드가 다소 복잡해집니다."
뒤늦게 제도의 부당함을 깨닫고 법적 구제 절차를 알아보았지만, 법이 정해둔 재심 청구 기한인 90일은 이미 아득히 지나쳐 있었다. 헌법소원도, 행정소송도 기한이라는 단단한 장벽 앞에 무력해졌다.
처음에는 억울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나는 이 불완전한 인정과 불합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록하기로 했다.
3개월 중 4일이라는 짧은 교집합의 기록이나마 인사기록카드에 공무상 질병휴직으로 정정해 달라고 담담히 요청하려 한다. 비록 시스템을 거쳐 나온 결과는 고작 4일에 불과하지만, 그 4일은 국가가 나에게 건넨 최소한의 악수이자 내가 삶을 지켜낸 깃발이다.
완벽한 승인도, 통쾌한 승소의 기록도 아니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인정일지라도, 그리고 행정의 한계로 인해 쪼개진 기록일지라도 내가 살아낸 시간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식 문서에 다 담기지 못한 진실을 나는 글에 담는다. 행정이 미처 다 인정해주지 못한 나머지 날들도 나는 분명히 살아냈고, 약을 먹으며 다시 일어서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렇게 내 삶은 행정의 테두리를 넘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