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이 결정된 아들의 4학년 생활은 제가 본 이래로 가장 편안했던 것 같습니다. 열정을 쏟아부었던 응원단 활동도 끝나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학점도 최소 요건만 챙기면 되었습니다.
다만 연구실이 정해졌다고 해서 대학원 입시가 끝난 건 아니었습니다. 입시는 절차대로 진행되었고, 합격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들 입장에서는 학점, 영어 성적, 지도 교수님 등이 이미 확정된 상황이라 마음이 편했을 겁니다.
아들은 4학년 1학기가 시작되자마자 학부생이지만 예비 대학원생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교수님께 제안한 아이디어를 확장하기 위해 개별 연구생으로서 연구실에 출근했고, 매주 미팅도 함께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임용된 지 얼마 안 된 젊은 분으로 연구와 학생 교육에 열정적이셨습니다. 덕분에 아들은 학부 졸업도 하기 전에 연구 방법을 차근차근 배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들이 안정되자 저희도 마음이 놓였습니다. 아들은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며 졸업 요건에 필요한 최소 학점만 채워도 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학점에 신경 썼습니다. 그러면서도 응원단 활동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학교 축제와 각종 행사를 찾아다녔습니다. 아들의 4학년은 그렇게 평온하게 흘러갈 줄 알았습니다.
4학년 여름방학은 대학생으로서 누리는 마지막 방학이었습니다. 겨울방학부터는 본격적인 대학원 생활이 시작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은 다시 못 올 시간인 것처럼 그 방학을 열정적으로 보냈습니다. 친구들과의 여행은 기본이었고, 핫한 장소를 누비며 이름난 축제에도 참여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싸이의 흠뻑쇼’였습니다.
실제로 가보진 못했지만, ‘싸이 흠뻑쇼’의 분위기는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영상으로도 봤고, 본의 아니게 지역 내 행사장 근처를 지나가면서 그 열기를 간접적으로 느꼈었죠. 여름이긴 하지만 물놀이인 만큼 감기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카톡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휴대폰이 아닌 PC에 깔아놓은 카지노톡을 사용해서 말이죠.
“휴대폰이 고장 났어요.”
아들 말로는 혹시나 싶어 방수 케이스까지 준비했는데, 너무 저렴한 것이었는지 무용지물이었다고 했습니다.
“불편해서 어쩌냐?”
저는 걱정하며 남편을 쳐다보았습니다. 저희 가족 휴대폰 구매는 남편의 몫이었으니까요. 가성비를 따지는 남편은 약정기간(2년)을 채워야만 새것으로 바꿔 주곤 했는데, 아들의 휴대폰 약정이 몇 달 남아 있었습니다.
“엄마가 쓰던 휴대폰으로 당분간 버티는 게 어때?”
남편은 아니나 다를까 ‘약정기간’을 언급하며 절충안을 제시했습니다. 아들은 당장 휴대폰을 새로 사고 싶었겠지만, 자신의 잘못인 만큼 수긍했습니다. 남편이 제 옛날 폰을 대체폰으로 제안한 건 집에서 가장 멀쩡 해서였습니다. 아들 폰은 화면이 작았고, 남편 폰은 액정이 깨져서 바꾼 것이었거든요.
아들은 그날부터 제가 쓰던 휴대폰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아들 폰의 데이터는 백업이 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빨리 닳는 배터리였는데, 불편한 기색이었지만 보조배터리를 챙겨 다니며 요령 있게 썼습니다.
아들의 여름방학 마무리는 ‘워터파크’였습니다. 휴대폰 사건이 있었던 만큼 이번엔 제대로 된 방수 케이스까지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 또 연락이 왔습니다.
"휴대폰이 고장 났어요.”
아니, 이건 “시동이 안 걸려요”의 휴대폰 버전인 건지...
“이번엔 왜?”
“비싼 케이스도 소용이 없네요. 케이스 안으로 물이 들어갔어요.”
‘조금 더 신경 쓰지 그랬냐’라는 말이 목구멍까치 차올랐습니다. 이번에도 남편을 쳐다봤지만, 남편은 ‘멍청 비용’을 지불해 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아들은 결국 크기는 작지만 아직 쓸 만한 자신의 옛 휴대폰으로 몇 달을 견뎌야 했습니다.
큰 화면을 쓰다 작은 화면으로 돌아가니 아무래도 불편했나 봅니다. 휴대폰 사용량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웬만한 건 태블릿과 노트북으로 해결하며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약정이 끝났습니다. 군소리 없이 낡은 폰을 사용한 아들에게 남편은 신형 휴대폰을 선물했습니다.
아들에게 대학 마지막 여름방학은 어떤 시간으로 기억되었을까요?
저희에게는 ‘휴대폰 2개 해먹은 방학’으로 기억되었습니다.
‘휴대폰 사건’을 겪으며 깨달은 것은, 제가 여전히 아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멍청 비용이 드는 사고를 또 친 건 아들인데, 제가 잘못한 것처럼 남편 눈치를 보고 있었으니까요.
아들은 대학 졸업반이 될 만큼 컸고, 남편은 아들을 차츰 성인으로 대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만 제자리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