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 비용 지불 역사의 시작

byMy Way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들은 학교생활 대부분을 알아서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는 기숙사 이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대부분 북측 기숙사를 돌아가며 배정을 받았던 터라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다 변수가 생겼습니다. 낡은 기숙사를 리모델링하면서 서측 기숙사로 배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서측에서 북측 혹은 동측에 있는 강의실로의 이동은 전동스쿠터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짐을 옮기는 건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할 수 없이 아들은 저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저희는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아들의 기숙사 이사에 엄마가 할 일은 없습니다. 운전도 아빠가, 짐 나르는 것도 아빠가, 짐 정리도 아빠가. 모두 아빠만이 도울 수 있는 것들이었죠. 이번에도 남편은 늙수그레한 대학생으로 오인받았는지 아무런 제지 없이 기숙사를 제집 드나들 듯 들어가 아들의 이사를 도왔고, 저는 그런 두 부자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그 이사의 하이라이트는 전동스쿠터를 타는 아들의 실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굳이 할 일도 없는데 따라갔던 이유였습니다. 검은색 헬멧을 쓰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전동스쿠터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귀여웠습니다. 전동스쿠터가 비에 약하다는 단점을 신경 쓰며 커버를 씌워두는 등 잘 관리 중인 것도 기특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대전에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장마 기간에 내리는 비가 아닌 말 그대로 바가지로 들이붓는 듯한 비였습니다. 그 비는 결국 전동스쿠터를 고장 내고 말았습니다.


“시동이 안 걸려요.”


1교시 수업을 받으러 나가던 아들의 당황스러움이 수화기 너머로까지 전달되었습니다. 아들은 서둘러 수업에 들어갔고, 저는 폭풍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전동스쿠터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 이유를 찾아 헤매다 충전기 문제일 수도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니, 충전기 문제여야 했습니다. 만약 배터리 문제라면 차라리 스쿠터를 새로 사는 게 나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충전기 문제라고 해도 해결 방법이 쉽게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전동스쿠터 종류에 따라 충전기 규격이 다르기도 하고, 해외 직구 제품이라 한국에서 맞는 충전기를 찾을 수 있는지도 알아봐야 했습니다. 대전에서 해결하면 좋은데, 움직일 수 없는 스쿠터를 끌고 아들이 어딘가로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제게 알고리즘이 대구의 한 업체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그 블로그가 눈에 딱 띄었는지 신기했습니다.


친절한 사장님은 제 사정 이야기를 듣고 아들로부터 스쿠터 사진과 충전기 사진을 전달받은 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충전기의 단자를 개조해 아들의 스쿠터에 맞춰주었습니다. 저는 집에서 1시간쯤 되는 거리의 그 가게에 직접 가서 충전기 값을 지불하고, 아들에게 우편으로 충전기를 급하게 보내주었죠. 요즘 폭우가 쏟아지니 각별히 조심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시동이 안 걸려요.”


똑같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니 이거 재방송도 아니고...

이번에도 충전기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원인은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비’가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아들의 실수였습니다. 충전 중인 것을 깜빡하고 서두르면서, 그냥 냅다 시동부터 걸고 출발을 해 버린 겁니다. 갑자기 꺼진 전동스쿠터 앞에서 아들은 또 망연자실했습니다.


저는 좀 어이가 없었지만, 같은 듯 다른 실수를 두고 자바카라하는 아들에게 따로 할 말이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사장님께 전화를 드려, 똑같은 상황임을 알리고 충전기 개조를 부탁드렸습니다.

충전기를 찾으러 이번에는 남편과 동행했습니다. 군소리 없이 운전을 해 주던 남편은 오가는 길이 만만찮자 결국 한마디를 뱉었습니다.


“빙구구먼.”


그렇게 두 번의 충전기 사건으로 저희에게 웃음을 준 아들은, 그 뒤에도 스쿠터를 잘 타고 다녔습니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결국 3년 만에 전동 스쿠터와는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동이 안 걸려요.”


비록 시간 차가 있긴 했지만, 같은 듯 다른 이유로 시동이 안 걸린다는 전화를 세 번이나 받고 나니 저는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이번엔 왜?”


하지만 마지막 전화는 충전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배터리 때문이었죠.

수명이 다한 건지,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소중하게 여기던 마음이 옅어져 관리를 소홀히 한 건지 알 순 없지만, 전동스쿠터의 심장이 나가버렸습니다.

결국 아들은 편안했지만,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았던 전동스쿠터와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 후 다른 이동 수단을 원할 줄 알았는데, 아들은 뚜벅이로 돌아갔습니다.


전동스쿠터 살 때, 아빠와 이야기하던 '중고 재판매 시 환수 비용'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0원이었습니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톡톡히 배운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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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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