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대학원은 학생을 국비, 카이스트, 일반으로 구분합니다. 장학금 제도와 맞물린 것으로 학부 졸업생들은 국비(이하 국장) 아니면 카이스트 장학생(이하 카장)으로 분류됩니다. 국장 TO가 사실상 많지 않기 때문에 카이스트생들은 교수 연구비에서 등록금과 인건비, 생활비 지원이 이루어지는 카장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해 ‘R&D 예산삭감’ 이슈가 터지며 카장을 뽑지 않는 연구실이 늘었습니다.
4년 만에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가고자 하는 아들 앞에 놓인 또 다른 장애물이었습니다.
교수님들께서는 직접 지도해 본 적 없는 제 아들의 ‘역량’을 시험해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연구비가 빠듯한 상황에서 카장을 뽑는 일은 교수님들께도 부담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내가 너를 뽑을 이유’를 찾고 싶으신 듯했습니다.
아들은 교수님 별로 부여된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곁에서 지켜본 바, 학부생이 해낼 수 있는지 의문인 과제들이었습니다.
논문이란 걸 본 적도 없는 아들은 교수님께서 주신 논문들을 읽고 리뷰를 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논문을 주며 발전된 아이디어를 갖고 오라는 과제를 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저는 논문 쓰는 법을 석사 입학 후 배운 것 같은데, 아들은 학부 4년 차에 접어드는 시점에 해내야 했습니다.
수준이 너무 높은 과제 앞에 포기할 만도 한데, 아들은 해보겠다고 나섰습니다. 저희는 논문 리뷰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발표 목차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 저희의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이디어를 원하시는 교수님의 과제는 아들에게서 논문을 공유받아 함께 읽어보며 머리를 맞댔습니다.
사실 저는 데이터 분석으로 가득한 논문 앞에서 두 손 두 발을 들고 슬그머니 빠져나왔습니다. 잘 모르는 전공 단어가 쏟아지고 숫자와 도식으로 가득한 논문은 제게 “흰 것은 바탕이요, 검은 것은 글씨요”로만 보였습니다. 까막눈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비록 AI 전공은 아니었지만 공대 출신답게 논문을 끝까지 읽고 아들과 대화를 나누며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는 것을 도왔습니다. 대부분 아들이 먼저 제안하면 남편이 그 제안의 문제점이나 확장 가능성을 설명해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세 교수님의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였으나 결국 모두 거절되었습니다. “올해는 아무래도 카장을 주기 어렵겠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뉴스에서 보던 R&D 예산 삭감 이슈를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들은 논문을 읽고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과정이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 눈에도 꽤 괜찮아 보이는 아이디어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교수님의 거절 메일이 오기 전까지 제법 발전된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는데, 그것을 말씀드리기도 전에 거절 메일을 받은 것이 아들 입장에서는 꽤 큰 타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지 뭐.”
저희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만큼은 바꿀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바꿀 수 있는 일이라 여기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무너진 자존감이 쉽게 올라오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아들은 툴툴 털고 일어났습니다. 잠시 대학원 고민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직접 증명해 보이겠다며, 지난 에피소드(27화)에서 언급했던 ‘서울행’을 감행했습니다.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아, 처음엔 무슨 일인지 몰랐지만 나중에 보니 카이스트 선배가 개인 돈 5000만 원을 들여 진행한 두뇌 서바이벌 ‘네 가지 소원’을 촬영하고 온 것이었습니다. 더 지니어스류의 두뇌 서바이벌을 좋아하긴 했지만 직접 참여한 것도 처음, 그런 촬영도 처음이라 미숙한 면도 많았을 텐데 2주간 총 4회에 걸친 촬영을 통해 아들은 바닥을 치던 자신의 자존감을 끌어올렸습니다. 1등으로 받은 상금 300만 원은 돈, 그 이상의 가치를 했던 겁니다.
아들은 스스로의 회복탄력성으로 다시금 도전할 의욕을 가졌습니다. 세 번이나 면담을 이어가며 아들에게 관심을 보이셨던 교수님께 마지막으로 한번 더 어필해 보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거절 메일을 주셨는데...”
저는 아들의 도전이 무모한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생각도 일리가 있다 싶었습니다.
“거절 메일을 받긴 했지만, 생각해 둔 아이디어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번엔 안된다 하더라도 다음엔 저에게 기회를 주시면 좋겠다는 말씀도 드리면서요.”
“그래, 좋은 생각이다. OO이 마음이 그렇다면 진행해!”
남편의 응원에 힘을 얻은 아들은 결국 교수님께 정중한 메일 보냈습니다. 자신이 확장시킨 아이디어까지 포함해서요.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요?
R&D 예산삭감 이슈로 망설이던 교수님께서 장문의 메일을 보내오셨습니다.
“내 생각을 계속 번복해서 미안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OO 씨를 선발하는 게 좋겠습니다. 제안해 주신 아이디어를 좀 더 들어보고 싶은데, 연구실 한번 방문해 줄래요?”
맞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아들의 아이디어를 채택하셨고, 논문으로 이어가자며 연락 주셨습니다. 아들이 원하는 대로 4년 졸업과 대학원 진학이 결정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저희 가족은 바꿀 수 없는 일에는 감정 소모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바꿀 수 없는 일’의 기준이 이번에는 저희와 아들이 달랐고, 아들이 옳았습니다.
부모가 늘 옳은 건 아니라는 걸, 이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