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여전히,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너

byMy Way

“아들, 우리 영상통화할까?”


3~4주에 한번 집에 내려오는 아들이 그리웠던 남편은 단톡방에 영상통화를 하자고 올렸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거절이었습니다.


“아니오.”


단톡방 대화를 가만히 보고 있던 저는 실망한 남편을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까였구나!”


그 반대의 상황도 종종 일어났습니다. 제 요청에 아들이 거절하고 나면, 남편이 저를 놀렸습니다. 아들에게서 받은 퇴짜를 희화화하며 서운함을 감추는 거죠.


물론 압니다. 아들이 저희와의 영상통화를 거절하는 이유는 전화를 받을 상황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저희와 달리 바쁜 걸 즐기는 편이고 사람들과 어울려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희가 아들의 바쁜 슬롯생활에 끼어들 타이밍을 잘 못 맞춘 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아들로부터 영상통화가 걸려 왔습니다. 몇 번의 거절 뒤끝이라 얼마나 반가운지. 지금껏 속상했던 마음은 그 전화 한 통에 모두 사라졌습니다.


“아들 웬일이야?”


남편의 목소리가 한껏 올라갔고, 저도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그냥, 두 분 잘 계시나 해서요.”

“오~ 고맙게도, 우리 안부가 궁금했구나!”


매일 아침 단톡방 인사를 나누고 특별한 이슈가 있을 때면 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지만, 얼굴을 보고 하는 대화는 오랜만이라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었습니다. 아들은 기숙사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며 저희와 대화를 나눴죠.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냥 전화를 한 건 아니었습니다.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대요. 부고를 듣는데 갑자기 엄마 아빠가 생각났어요.”


아직은 젊은 엄마 아빠지만 ‘죽음’이란 단어 앞에 문득 저희 생각이 났나 봅니다.

저는 아들에게 저희 둘 다 건강관리 열심히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안심시켜 주면서도, 그런 순간에 엄마 아빠를 떠올렸다는 것에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남편도 저와 같은 생각인지, 전화를 끊고 나서 조용히 읊조렸습니다.


“짜식.”


솔직히 말해 제 아들이 늘 다정다감한 건 아닙니다. 어릴 때는 눈물이 많아서 감정이 풍부한 아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건 제 착각이었습니다. 자랄수록 공감보다는 해결바카라을 제시하는 것을 좋아하는 ‘T’ 성향의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츤데레’였죠.

남편이 성심당 망고 케이크를 보며 ‘맛있겠다’ 한마디 했는데, 그다음에 집에 내려올 때 서프라이즈로 망고 케이크를 사다 주는 아이였습니다. 현관 앞에서 커다란 케이크 상자를 내밀며 “오다 주웠어요”라던 귀여운 허세에 웃음이 났습니다.

제가 부산에서 제일 크다는 ‘찜질방’을 TV로 보며 “저기 한번 가보고 싶다”라고 무심결에 말했을 때도, 아들은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두뇌 서바이벌 <네 가지 소원>에서 받은 1등 상금으로 서프라이즈 부산 여행을 계획한 아이였습니다. 그날 찜질방의 북적임은 흐릿했지만 저희 세 식구의 행복했던 순간은 또렷하게 남았습니다.


돌아보면, 미성년자로 대학 생활을 시작한 아들은 열정으로, 노력으로 그 시간을 채웠습니다. 저희는 아들이 부모 품을 떠나 울타리 밖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때로는 진지하게 전공을 고르고, 졸업과 대학원 진학이라는 결정을 스스로 내리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갔습니다. 때로는 패션 유목민 시기를 거쳐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고, 멍청 비용을 쓰게 만들고, 길거리에서 주워 와야 했던 귀여운 일탈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여전히 존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멀리 있다 보니 아들이 아프면 속상하고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마음이 쓰립니다. 그래도 저희는 아들의 세상을 받아들이며 아들의 속도에 맞춰 조금씩 자리를 내어주는 중입니다. 아들의 선택을 응원하며 한 걸음씩 물러나고 있습니다. 아직도 아들이 없는 방이 어색하지만, 이젠 아들과 함께하던 시간 대신 서로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렇게 삶 속에서 스며들 듯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희도 아들과 함께 어른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영상 통화 요청은 거절당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아들의 ‘GREAT’ 한마디에 어깨춤을 추고 예상치 못한 전화에 입이 귀에 걸릴 준비는 되어 있으니까요.




조금 이르게 <박사 둘, 학사 하나>를 마무리합니다.

아들의 속도에 맞추는 저희의 연습은 이제 <박사 둘, 석사 하나>로 이어집니다.

잠시 쉬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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