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4년 졸업을 밀어붙였습니다. 복수전공이지만 4년 졸업이 가능하도록 학점 정리를 끝낸 상태였고, 정확한 희망 분야가 있는 것이 아닌 만큼 ‘AI’를 연구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다는 것이 논리였습니다.
그때부터 때아닌 좌절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카이스트 응원단 활동이 사실상 마무리되어 시간적인 여유는 생겼는데, 마음이 바빠 보였습니다. 4학년이 되기 전 긴 겨울 방학이 짧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교수님을 뵙고, 미션을 수행하고, 거절을 당하고.
아들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큰 시련은 없었을 겁니다. 엄마 아빠가 보기에는 중3 때 겪은 그 일(22화 참조)에 비하면 이런 시련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점점 지쳐가던 아들은 급기야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듯했습니다.
방학 중 연례행사였던 친구들과의 여행도 부산한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나 봅니다. 아들은 그곳에서 밤늦게 제게 연락을 해왔고, 2시간 넘게 하소연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그저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는데도 마음이 힘든 밤이었습니다. 다 큰 아들의 마음을 어떻게 보듬어줘야 할지, 어떻게 하면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게 만들지 고민이 커져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주말에 서울에 간다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가끔 친구를 만나러 가기도 했던 터라, 마음이 어수선할 때이니 기분 전환 겸 잘 다녀오라고 했죠.
그런데 서울에 올라간다고 했던 하루 전날, 갑자기 병원이라며 연락이 왔습니다. 쇄골 쪽 통증 때문에 근처 정형외과에 왔는데 미세 골절이 의심된다며 MRI를 권했고, 비용이 비싸서 찍는 게 맞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겁니다.
뜻밖의 이야기라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며칠 전 큰 사고가 있었다고 그제야 털어놓았습니다.
공용 자전거를 타다 브레이크가 잡히지 않아 넘어졌고, 낙법으로 잘 구르긴 했지만 기둥에 머리를 부딪혀 응급실에 다녀왔다고. 응급실에서 다양한 검사를 했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해서 따로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오늘 쇄골 쪽 통증이 생겨 병원에 왔다고 말입니다.
당시 저는 러시아워 속 차 안에서 남편과 함께 블루투스로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걱정할까 봐 그냥 넘어가려 한 아들의 마음을 알면서도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매일 저희 가족 단톡방 아침 인사에는 “오늘 컨디션은 어때?”, “별일은 없니?”가 빠지지 않는데, 그때마다 “네, 넹, 넴, 넵”으로만 답하던 아들의 그 말이 괜찮다는 뜻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남편은 새로운 병원에서 과한 비용을 지불하며 MRI를 찍는 것보다는 사고 직후 치료를 받았던 병원에 문의해 보는 게 낫다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아들은 그리 큰 통증은 아니라며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사고 처리는 어떻게 했어?”
공용 자전거의 브레이크가 잡히지 않았다는 아들의 말에 근거해 업체 측에 관리 부실에 따른 사고 바카라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러니까 사고가 났을 때 바로 말을 했어야지.”
아들은 아빠의 짧고 단호한 그 한마디에 당황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미묘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아마도 저희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전화로 대화를 주고받는 상황이다 보니 연결도 매끄럽지 못했고 뉘앙스도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던 것이죠.
엄마 아빠를 배려한 아들의 하얀 거짓말은 뒤늦은 질바카라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은 서운했고, 아빠는 속상했고, 저는 안절부절못했습니다.
냉랭한 상태에서 끊어진 연락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저는, 집에 돌아온 뒤 아들과 따로 통화를 했습니다. 아들은 생각보다 마음이 많이 상해 있었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연락, 하지 말아야겠네요.”
“아니야, 그런 거. 아빠는 네 상태가 괜찮아 보이니까 사고 처리에 대해 물어보신 거고, 이젠 성인이니 이런 것도 챙기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야.”
속상함을 내비치는 아들을 겨우 달랜 저는, 거실에 있던 남편에게로 갔습니다. 평소 남편과 아들 사이의 일에 이렇게 직접 끼어든 적이 없었지만, 이 일만큼은 빠르게 해결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아까는 당신이 좀 너무 했어. 사고 처리가 아쉬운 건 맞지만 다그치기보다 조곤조곤 알려줘도 됐잖아. 얼마나 섭섭했겠어. 아픈 몸도 서러운데, 엄마 아빠한테 전화했더니 잔소리만 하고. 나 같으면 다음부터는 이런 연락 안 하고 싶을 것 같아.”
남편은 잠자코 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평소와 다른 제 반응이 어색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벌써 좀 너무했나 싶어 후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남편 반응을 살피며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당신이 먼저 사과해.”
남편은 한참을 망설이다 아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들, 아빠가 미안해.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부족한 면이 많다.”
“아니에요, 아빠. 저도 죄송해요.”
두 남자의 대화는 짧았지만,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저는 한시름 놓았습니다.
저희도 부모가 처음이다 보니, 아이를 키우는 동안 여러 가지 실수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어릴 때는 알려주고 가르치는 말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감정 문제로까지 번지지 않았죠.
아직 저희 눈에는 어려 보이지만 아들은 이미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슬롯를 배워나가는 어른이었습니다. 그 점을 놓친 채 가르치려고만 했던 겁니다. 다른 어른을 대하듯 대화를 이어갔다면 서로 서운할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죠.
그 뒤부터 저희는 성인이 된 아들을 대하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아들이 가장 먼저 전화하고 싶은 부모가 되고 싶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