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잠자는 왕자'가 낫겠다

byMy Way

대학 입학 당시 다소 마른 체형이었던 아들은 이후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 덕에 대학 3학년, 이제 만 19세 진짜 성인이 되었을 때는 아직 앳된 티가 나긴 했지만, 어깨도 벌어지고 팔에 근육도 생기며 조금씩 체형을 잡아갔습니다. 다만 몸무게는 웬만해선 늘지 않아 그게 좀 걱정이었습니다.


저는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체질인데, 남편을 닮아 날씬한 아들은 보고만 있어도 흡족했습니다. 정작 본인은 잘 늘지 않는 몸무게가 스트레스인지 전보다 더 왕성하게 챙겨 먹는 듯했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아들의 대학생활 중 가장 살이 빠지고 힘들었던 시기는 ‘카르페 디엠’을 실천했던 3학년 때였습니다.

응원단 일이 고되었는지, 아들은 점점 말라갔습니다. 턱선이 날카롭다 못해 베일 지경이었습니다. 3~4주에 한 번 꼴로 내려올 때마다 보약을 지어 먹여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일정이 있다며 조금 일찍 서두르는 아들과 밖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깨작깨작거리는 것이 뭔가 심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혹시 배가 아픈가, 입맛이 없나 별의별 걱정을 다하며 아들을 예의 주시하는데, 갑자기 숟가락을 놓더니 오후 일정을 모두 포기하겠다는 겁니다.


“지금 두통이 너무 심해서 병원을 가야 할 것 같아요.”


너무나 담담하게 말하는 아들을 보며, 저는 몇 년 전 아들이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라는 희귀 난치성 질환을 진단받았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다행히 기적적으로 짧은 기간 안에 자연 치유되는 행운이 저희에게 찾아왔지만, 치사율이 높은 병이라 하마터면 귀한 아들을 잃을 뻔했습니다. 그 당시 과학고를 목표로 마지막 시험공부를 하고 있던 터라, 아들은 피곤해도 참고, 힘들어도 참더니 결국 고열이 나도 참아 가며 공부를 한 거였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늦게 발견했다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참을성이 많은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병'에 관한 한 결코 득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저희는 서둘러 식사를 마무리하고 원래는 동대구역으로 아들을 데려다주려던 계획을 변경해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코로나 여파로 응급실엔 보호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아들과 남편만 들여보내고 저는 밖에서 결과를 기다렸죠.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하니 더 초조하고 답답했습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의 재발이면 어쩌나 괜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약 1시간 정도 흐른 뒤 아들이 창백해진 얼굴을 한 채 응급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뒤따라 나온 남편도 만만찮게 창백해 보였습니다.


“뭐래? 어디가 아픈 거래?”

“엑스레이도 찍고, 피검사도 했는데,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인대요. 두통은 부비동염일 수 있다고 약 먹어보라네요.”


생각보다 가벼운 질병이라 한시름 놓긴 했는데, 정확한 건 또 아니라고 하니 걱정이 되긴 했습니다.


“근데, 당신 얼굴은 왜 그래?”


알고 봤더니, 아들이 진료를 받으러 들어가서 대기 중에 쓰러졌다는 겁니다. 갑자기 어지럽고 힘이 빠진다고 하더니 식은땀을 흘리면서 ‘픽’ 쓰러져, 간호사들이 달려와 베드에 눕히고 심전도 검사를 하는 등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답니다. 평소 침착하던 남편도 아들의 그 모습은 충격이었는지 응급실 들어가기 전과 후가 많이 달랐습니다. 아마 제가 아들 곁에 있었다면 더 우왕좌왕했겠죠?


결국 원인은 찾지 못했지만 아들의 두통은 약으로 해결이 되었습니다. 다만 아주 드물게 피곤이 쌓이고 과로한 날엔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구토와 식은땀을 흘리는 증상이 나타나곤 했습니다. 누워서 잠시 안정을 취하면 괜찮아지는 것으로 봐서는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 듯했지만,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보약이라도 한 제 지어 먹여야겠다고 찾아간 한의원에서는 일시적인 ‘미주신경성 실신’일 수 있다고 하면서, 수면 부족과 과로를 그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할 일이 너무 많았던 시점이라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중3에 겪은 그 질환 이후 과학고를 다니면서도 수면을 챙겼던 아들은 건강해진 몸을 너무 과신했나 봅니다. 운동을 하며 체력을 키우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잠’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듯했습니다.

그 이후 아들은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릴 수면 패턴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몇 시에 자든 수면 시간만 확보하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올빼미처럼 새벽 늦게까지 일한 뒤, 오전 늦게 일어나는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날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방식으로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해 보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실험해 보며 자신에게 맞는 수면 시간과 패턴을 찾아갔습니다.


아들과 떨어져 사는 날이 많아지면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밥은 잘 챙겨 먹는지, 운동은 꾸준히 하는지, 잠은 잘 자는지 등을 물어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직접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스스로 잘 조절하길 바랄 수밖에요.

대신, 저희는 매일 아침 단톡방에 아들의 ‘잠’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잠은 좀 잤니?”

“어젠 몇 시에 잤니?”


많이 잤다고 하는 날엔 “아이고, 잘했네.”라며 칭찬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한때 ‘네가 잠자는 왕자여?!’라며 너무 깊게 자는 아들로 인해 마음 졸였던 것들은 까맣게 잊은 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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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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