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페 디엠을 실행하며 보낸 대학 생활도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카이스트 응원단 단장으로서의 마지막 행사인 카포전만 남겨둔 채 아들은 눈 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진로 고민도 시작되었습니다.
대학 3학년 때 하는 고민은 카이스트생이라고 다를 게 없었습니다. 취업을 할 것이냐, 진학을 할 것이냐. 아들 역시 그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 속에는 '군대' 문제도 얽혀 있었습니다.
어릴 적 아들은 자신이 어른이 될 때쯤엔 군대에 가지 않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는 또래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군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듯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는 정작 ‘가야 한다면 가야지’라는 조금은 오픈된 마음을 가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끔 카이스트에 다니면 군대를 안 가도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건 옛말입니다. 전문연구요원으로 차출될 수는 있으나 박사과정에 진입해야만 하는 조건이 있고, 그 또한 당해연도에 TO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물론 카이스트는 다른 대학들에 비해 제도가 상당히 잘 갖춰져 있는 편이긴 합니다.
그런데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서 박사과정까지 한다?' 학부생인 아들 입장에서는 그 또한 난제라고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 군대를 가는 것도 살면서 한 번은 해봄직한 경험이야."
남편은 고민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군대를 선택지에서 완전히 삭제하진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아들은 아빠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취업을 할지, 진학을 할지 결정하기 전에 일단 카투사 모집에 도전해 보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문제는 카투사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공인된 영어 성적이 필요하다는 것과 무작위 추첨방식이라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아들은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카이스트는 입학부터 졸업까지 늘 '영어'가 따라다닙니다. 신입생들은 필수적으로 영어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고, 통과하지 못하면 입학하기 전 영어 캠프를 다녀야 합니다. 게다가 학기 중에는 정해진 영어 과목들을 이수해야 하고 졸업을 위한 공인된 영어 시험 성적도 필요합니다. 다만 재학 기간 중에 딴 공인된 영어 성적은 기간과 상관없이 인정을 해준다는 편의성이 있긴 합니다. 아들은 카투사 지원서를 넣기 위해 치는 영어 시험으로 졸업 영어 인정까지 받아 볼 요량이었습니다.
토익, 토플, 텝스 등 다양한 유형의 시험들 중 아들은 토익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제 눈엔 아들이 토익 공부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고로 토익 공부를 한다고 하면 일단 교재부터 사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들은 교재는커녕 유튜브 토익 강의를 듣거나 어릴 때부터 해오던 막내 이모와의 짧은 프리토킹으로 공부를 대체하는 것 같았습니다. 주 1회 30분, 영어 전공자인 막내 이모와의 전화 영어는 문법 공부나 단어를 외우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하는 식이라 저는 '자연주의 영어'라 불렀습니다. 이를 통해 영어 실력이 늘었을 거라 믿지만, 실력 검증을 제대로 해 본 적은 없어 내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방학 동안 토익 시험을 4번 정도 칠 수 있다며 일정을 잡았습니다. 그해 카투사 지원이 9월이어서 방학 때 시험 결과로 지원을 해볼 생각인 것 같았습니다. 특히 첫 시험은 시험 유형도 구경할 겸 편안한 마음으로 쳐보겠다는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무산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응원단 일정이 생겨 취소한 것입니다. 한 번의 기회가 사라진 것이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부를 해서 두 번째부터 제대로 시험을 치면 된다고 생각했죠.
두 번째 시험 날, 아침부터 저희 가족 단톡방에는 불이 났습니다. 전날 늦게까지 응원단 일정이 또 있었다는 말에 불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들은 늦잠을 잤습니다. 이번에는 취소가 아니어서 환불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답답한 노릇이었지만 수면 부족으로 고생했던 일이 있던 터라 잠을 잤다는 데 할 말이 없었습니다.
세 번째 시험은 대구에서 쳤습니다. 전날 저녁 무렵 대구에 내려온 아들은 오랜만에 공부방 바카라상에 앉아 시험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벼락치기 같았지만 기출문제라도 푸니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시험 당일 아침은 가족 모두가 분주했습니다. 저는 아침 식사를 챙겼고, 남편은 아들을 시험장까지 데려다줬습니다. 아들은 담담한 듯 보이는데, 저는 두 번의 기회를 허무하게 날렸기 때문에 이 시험 결과가 나쁘면 기회가 한 번만 남는다는 것에 초조했습니다. 더군다나 영어로 수업하는 카이스트임에도 토익이나 토플 점수 기준 미달로 카투사에 지원조차 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아들이 시험을 치는 그 시간 동안 검증되지 않은 실력과 변수들 때문에 노심초사했습니다.
네 번째 시험을 며칠 앞둔 날, 세 번째 시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처음 쳐보는 토익이었음에도 카투사 지원 및 카이스트 졸업 인정 점수를 가뿐히 넘겼습니다. 그중에서 리스닝은 만점을 받았습니다. 결국 아들의 자연주의 영어가 옳았음이 검증되었습니다.
아들은 네 번째 시험을 취소하고 카투사에 도전했습니다. 아빠와 함께 나름 작년도 경쟁률을 보며 가장 덜 붐빌 것 같은 달을 선택해 지원서를 냈습니다.
그리고…
떨어졌습니다.
다들 저희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거겠죠.
하늘이 점지해 준다는 카투사에 떨어지고 난 후, 아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미련은 없어 보였습니다.
“어쩔 수 없지.”
늘 그렇듯 저희 가족은 바꿀 수 없는 일에는 감정 소모를 하지 않습니다. 대신 다음 스텝을 밟아 나가죠.
취업과 진학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더 큰 고민이 아들 앞에 놓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