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독서왕의 실종

byHenry



어제 강원도에는 종일 비가 내렸다. 오늘은 습한 더위가 산골을 휘감았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왔다. 내일 아침이면 손녀가 집으로 온다.


손녀가 오면 늘 그렇듯, 한참을 놀다가 바카라꽂이 앞으로 아장아장 걸어간다. 바카라을 한 권 뽑아 온다. 무릎에 앉혀 읽어주면 가만히 듣는다. 호랑이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굵어진다. "어흥!"하면 손녀도 따라 "어흥"한다. 어떤 날은 같은 바카라을 다섯 번, 여섯 번 다시 가져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흐뭇해진다. ‘손녀는 바카라을 좋아하는구나.’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얼른 그 생각을 거둔다.


일주일 후면 첫돌이다.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다. 열 살, 스무 살이 되어도 이 마음이 이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손녀를 섣불리 ‘바카라 좋아하는 아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친한 지인의 아이들도 그랬다. 어릴 때는 소문난 독서광이었다. 엄마가 밤마다 읽어주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자라면서도 바카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새 글자도 스스로 깨쳤다. 사람들은 영특하다고 칭찬했고, 엄마도 뿌듯해했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가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자, 바카라과 점점 멀어졌다.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된 지금은 한 달에 한 권을 읽을까 말까 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훌륭하게 자라 좋은 대학까지 졸업했다. 다만 엄마는 바카라과 멀어진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그 아이들이 읽었던 그 많은 바카라은 어디로 갔을까. 아니, 바카라이 사라진 게 아니다. 바카라을 좋아하던 어린 날의 마음이 사라진 것이 아닐까.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고 엄마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다. 어쩌면 아이들이 맞닥뜨린 경쟁과 입시의 시간이 바카라을 좋아하던 어린 날의 마음을 조금씩 밀어냈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 바카라은 놀이였고 즐거움이었다. 읽고 싶으면 읽고, 싫으면 덮었다. 같은 바카라을 열 번 읽어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다. 그림만 훑어봐도 그만이었다. 바카라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어도 괜찮았다.


중학교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바카라에는 낯선 이름들이 붙기 시작한다. 권장 도서, 필독 도서, 독후감, 수행평가, 생활기록부. 무엇을 느꼈는지보다 무엇을 이해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사정은 더 매서워진다. 긴 지문을 읽고 출제자가 숨겨놓은 답 하나를 찾아내야 한다. 어느새 놀이터였던 바카라이 시험장으로 변한다.


좋아서 펼치던 바카라에 성적이 매겨지는 순간, 마음은 소리 없이 식어간다. 느낌보다 정답이 앞서고, 어떤 문장에 가슴이 뛰었는지보다 몇 번 문항의 답이 무엇인지가 중요해진다. 바카라 읽는 즐거움은 그렇게 조금씩 채점표 뒤로 밀려난다.


거기에 입시 공부까지 더해진다. 하루 종일 교과서와 문제집을 붙들고 씨름한 아이에게 저녁의 바카라 한 권은 쉼이 아니라 또 하나의 숙제로 다가온다. 긴 호흡이 필요한 독서와 즉각적인 자극을 주는 디지털 미디어 사이에서 지친 아이의 손은 어느새 스마트폰으로 향한다.


어린이 독서왕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니다. 조금씩, 조금씩 밀려난 것이다.


지인의 아이들이 독서의 즐거움을 오래 지켜주는 환경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한두 문제를 풀기 위해 긴 글을 빠르게 해체하는 대신, 궁금한 것 하나를 몇 달이고 붙들고 있어도 되는 교실이었다면. 바카라을 끝까지 읽고 정답을 찾는 대신, 마음에 들지 않는 바카라은 중간에 덮어도 되고 엉뚱한 바카라 한 권에 한 달을 빠져 살아도 괜찮은 그런 곳이었다면.


어린이 독서왕은 조금 더 오래 살아남지 않았을까.


교육제도 하나만으로 아이가 바카라을 읽거나 읽지 않는 이유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입시 경쟁 탓만으로 돌릴 수도 없다. 스마트폰과 짧고 강렬한 영상의 유혹도 피하기 어렵다. 아이마다 성격과 관심도 다르다.


그래도 질문 하나는 남는다. 우리 슬롯는 아이들에게 바카라을 읽으라고 말하면서, 정작 바카라을 좋아할 자유는 슬그머니 거두어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린 시절 바카라에서 얻은 즐거움을 평생 놓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소년 시절 기하학 바카라을 만나 세상에 숨어 있는 질서에 매료되었다. 링컨은 제대로 된 학교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구할 수 있는 바카라을 찾아 읽으며 자신의 세계를 넓혀갔다.


두 사람이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이 독서 때문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품었던 그들의 호기심은 왜 어른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았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손녀가 그런 위대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가 열 살이 되었을 때도 궁금한 것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마흔이 되고 예순이 되어서도 가끔 바카라 한 권을 펼쳐놓고, 자신이 알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는 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바카라이 아니어도 괜찮다. 개미 한 마리가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 쪼그려 앉아 한참을 들여다볼 줄 알았으면 좋겠다.


내일 아침이면 손녀가 온다. 현관문이 열리면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맞을 것이다. 한참을 놀다 보면 손녀는 또 바카라꽂이 앞으로 아장아장 걸어갈 것이다. 작은 손으로 바카라 한 권을 뽑아 내게 가져올지도 모른다.


나는 또 그 바카라을 읽어줄 것이다. 몇 장을 넘기다 손녀가 다른 곳으로 가면 조용히 바카라을 덮을 것이다. 다시 돌아오면 또 펼치면 된다.


오래도록 세상을 궁금해하는 아이였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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